오전 일과를 후다닥 끝내고 일행들이 기다리고있는 신림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밥이라도 한줄 먹고 갈까 하면서 시계를 보니 약속한 12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차에 오르니 친절하고 예쁜 선희,지영 두 자매가 반갑게 맞아 주면서
김밥을 건네주었다.
(이심전심은 이런 것을 이르는 말 아닐까요? ㅎㅎ)
경부,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여주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충주를 지나며 <생명의 숲은 후손의 유산>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은 이 간판을 세우느라 자연을 크게 훼손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하다.
충주휴게소에서 자매들이 떡볶이며 핫바,오징어등을 사왔다.
문경의 주흘산 자락이 덮고있는 하내리라는 마을의 한성 연수원에 여장을
풀고 나는 곧바로 산책을 하였다.
제법 긴 그림자가 내려 앉은 오후에 논길을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작고 이쁜
저수지가 보였다.
<사진은 저수지로 가는 길입니다>
저수지 뚝방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산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은 휴대폰으로 찰칵 찍은 다음 실하고 통통한 딸기 두 알을 따서 입에
넣었다.(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 엄마는 그랬지만 나는 안 믿어...)
하늘하늘 돌틈의 이름모를 진한 분홍꽃도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덤덤하고 감성이 무딘 사람이라도 어찌 그 향기에,그 빛깔에 빠지지
않을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이내 그 꽃송이에 코를 가까이 대보다가 젊은 날의 사랑을
떠올리고는 쑥스러러 졌다.
꽃은 사람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이는 매력도 있는 것 같다.
<사진의 꽃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저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꽃도 언젠가는 꽃잎을 떨구게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어느 순간 죽을 것 같이 아팠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젊은 날 나의 사랑이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어둠이 내리고 겹겹이 둘러싸인 주흘산 자락의 산들이 실루엣처럼 아름답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파란 잔디광장옆의 원두막에 누웠다.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있어준다는 말 이리라.
나는 내게 물어본다."너는 얼마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냐?"
우리는 다른사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종종 자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불편하거나,피곤하거나,바쁘다는 이유로 말이다.
주흘관 숙소에 돌아오니 룸메이트인 이항렬 집사님의 톱질이 시작되고 있었다.
"드르렁 드르렁 푸우~ "
나는 잠을 청하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연못가로 갔다.
나의 발소리에 놀란 물고기들이 푸드득 거리며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나는 나의 영혼과 다시 대화하기 시작하였다.
돌이켜보면 꼬불꼬불한 욕망의 미로에서 나는 길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 주느라 내 요구는 무시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토요일 오후에 문경새재를 찾았다.
문경(聞慶)은 한자의 뜻 그대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갔던 선비들의
장원급제의 경사를 묻던 곳 이었다.
영남 사람들에게 문경새재는 영주의 죽령과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사진은 영남 제1 관문 입니다.>
제1관문을 지나니 여름의 숲들이 관능적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장사를 위하여 또는 입신출세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갔을 선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드라마 촬영장을 지나고 맨발로 걷다보니 <발 씻는 곳>이 나타났다.
나는 발을 씻으며 무거웠던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옛날 부풀어오른 발바닥을 주물렀을 과객의 고단함이 내 옆에 다가와
함께 앉아있는듯 했다.
영남의 음식 묵밥이며 헛제사 밥(?) ,간고등어 그리고 특산물 오미자는
다음에 먹어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함께 포크댄스를 추었다.
우리는 기쁨을 억누르기위해 또는 자신의 감정을 알리기위해 춤을 춘다.
하지만 오늘 추는 춤은 아쉬움의 또다른 표현 같았다.
내려갈 때 함께 동행했던 선희 자매와 춤을 출 차례가 돌아오자 나는
갑자기 쑥스러워서(?) 슬쩍 자리를 피했다.
(아직도 부끄럼이 남아있는 내가 대견스럽다.ㅎㅎ)
귀경길에 이천 휴게소에서 초딩 친구를 우연히 만다.
휴가차 고향에 들러서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얼굴이 감자처럼 생겨서 이 친구의 어릴적 별명이'하지 감자 '였다. ㅎㅎ
모든것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추억이 그렇고 여행의 기억들이 그럴 것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새로운 일상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반갑지는 않지만 다시 일상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죽음을 떠올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