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나 냉장고의 문이 제대로 닫혀있지 않으면 동작을 멈추고 삑삑하는 경고음을 낸다.
우리몸에 상처가 났을 때에도 통증으로 인해서 치료를 미룰 수 없게된다.
그런면에서 통증은 몸에 난 상처의 경고일 수도 있고 또한 그 통증으로인해 치료를 서두르게
되니 역설적으로 통증은 고마운 것이다.
삶 가운데 고난과 시련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물론 고난이나 시련도 오늘에 이르기 전에
여러 번 내게 경고를 했을것이다.다만 그 경고를 듣지 못했거나 무시해버린 결과로 오늘에
닥쳐 온 것일 수 도 있다.
나병(문둥병)의 비극은 살이 썩어서 잘려나가도 그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병이 몸에 퍼지면 고통의 신호를 전달하는 말초신경이 활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죄를 문둥병에 비유하고 있는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대부분의 운동 경기도 과격하게 되어 아주 위험할 것이다.
복싱 경기에서 언제 수건을 던져야 할지 알 수 도 없을 것이고,레스링이나 유도 경기에서
바닥을 치며 기권을 선언하지도 않을 것이며,야구 선수가 인대가 파열된것도 모른 채 홈을
향해 질주할테니 말이다.
암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말기에 이르러 발견된 경우가 가장 불행하지 않은가?
몇 년 전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최장로님께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불과 몇달도 못사시고
돌아가신 것을 나는 종종 떠올린다.
고난을 말할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성경속의 인물은 욥이다.
그는 악창으로 고통을 당하여 아내와 친구로부터 버림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소망가운데 인내
했던 사람이다.
지금 내게 닥쳐 왔거나 언젠가 닥쳐 올 수도 있는 고난도 상처의 통증과 마찬가지로 내가 치료
되고 새롭게 변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글을 읽고있는 우리 사랑하고 용서하고님들 가운데 고난중에 있는 분이 계신가요?
치료되고 새롭게 되시기를 간구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