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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본문 / 4: 4-11

 

1. 신자의 삶

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포기되지 않고 그대로 성취 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신자는 말씀이 약속하고 있는 장차 성취 되어질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한 삶이라면 현재의 자기 사정과 입장을 앞세우지 않게 됩니다. 지금의 내 사정과 입장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모든 미래가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있어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못함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예로 들면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광야에서 죽은 자들과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이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이 3절 말씀에 보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4:3)고 하여 그 일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고, 말씀에 의해서 가나안으로 인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길을 그 누구도 막거나 포기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이 그들을 붙들어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어떤 사정과 형편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막을 세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고, 세상은 심판으로 멸망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은 이 말씀 그대로 되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말씀이 진정한 현실로서 세상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지금 우리의 사정과 형편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하고 비중 있는 것이겠습니까? 신자란 내 사정과 입장 형편을 따라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소리를 내는 자가 신자인 것입니다.

풍선에 물을 넣고 흔들면 물이 들어있기에 물이 내는 출렁출렁 소리가 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고 또 그리스도가 있다면 우리에게서는 말씀이 내는 소리와 그리스도의 소리가 나에게서 나와지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심으로 말씀을 속에 두고 또 그리스도를 속 깊이 두고 살아가는 신자인 것입니다.

 

2. 안식을 향해

오늘 본문 4절부터 보면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4:4-5)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다고 어디 일렀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2)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쉼과 안식에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들어가게 하시면 되실 텐데 아무나 들여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이렇게 조치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담의 범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치 아니함 때문입니다. 즉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너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로 인생이 참된 안식이 없이 수고로이 일하다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과 계획은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계속하여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녹이 죽지 아니하고 안식으로 들어갔으며 또 홍수 심판 가운데 구원받은 노아도 있습니다. 노아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안위’‘안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노아는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에게 안위를 주라는 이름입니다. 노아가 보여준 안식은 심판의 홍수 가운데서 방주를 타고서 살아남은 것이 안식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음으로안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실력과 열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을 이미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누가 이루어내시는가를 성경이 우리들에게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기 15장에 보면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15:13)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7절부터 보면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15:17-18)고 합니다.

거룩한 처소, 즉 가나안 땅에 구속하신 백성을 주의 인자하심과 힘으로 들여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게 들여놓으시면 되실 텐데 왜 광야로 향하게 하여 온갖 불평과 원망이 다 터져 나오게 하시고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쪼개지는 과정입니다. 인간의 죄의 실상을 다 드러내는 것입니다.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게 되는데 율법을 받는 그 두렵고 무시무시한 시내산 아래서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에 보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5:20)고 합니다. 율법은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죄를 다 드러내 놓고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야 이스라엘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9장에 보면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9:6)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언약을 갱신하는 내용입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목이 곧은 모습을 그대로 다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들어간 자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그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의 후계자로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에 들여놓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부터 보면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4:7-8)는 말을 합니다. 여기 여호수아 때의 안식은 가나안 정복을 뜻합니다.

러나 여호수아 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안식의 성취를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안식이 성취되었다고 말한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안식은 다만 이스라엘에게 성취된 안식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식을 향해 나아가는 입장은 되지 못할 것이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있다는 오늘 말씀 역시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안식이 여호수아 때에 이미 성취되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안식에 대한 말씀이 주어질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때 이미 성취된 안식이라면 다른 날에 대해 더 이상 말씀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취된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여호수아 때의 안식에 대한 말씀과 다른 새로운 말씀이 주어진 오늘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호수아 때 성취되고 끝난 안식이라면 다윗이 오늘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말씀은 여호수아 때에 성취된 것이 아니라, 다윗 때에도 계속 새로운 말씀으로 존재하셨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안식을 향해 나아가던 이스라엘이나 오늘날 안식을 향해 나아가는 신자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그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운명이 되어질 것임을 경계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무엇에서 실패하였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함으로써 그들과 같은 실패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4:9)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지난주 말씀 1절의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4:1)는 말씀으로 확실해집니다.

지금의 우리는 안식할 때가 남아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만 생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향하여 나아가는 신자로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했듯이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이미 창조 때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인 것처럼, 신자인 우리 또한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끌어 가는 참으로 든든한 삶이라는 의미에서의 약속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약속 아래 있는 우리는 든든한 삶이 되지를 못합니다. 항상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세상 것이 없는 것으로 불평하면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크게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세상에서 불려 나와서 안식을 향해 가는 신자에게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의 삶을 살필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3. 힘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사정과 형편과 입장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한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과 사정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때문에 어떤 형편에서도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은 우리가 힘을 써야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은 실패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신자란 안식의 약속이 주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안식이라는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것은 과거 안식에 들어가기를 실패한 이스라엘처럼 너희도 실패하면 지옥 간다는 엄포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확고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라는 권면을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그들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확고한 것을 붙들고 바라보는 일에 실패했으나 너희는 그러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확고한 것을 붙들고 살라는 것이고, 이것이 곧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쓰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관심과 정신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편안한 삶보다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이 문제를 더 크고 중대하게 여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 존재인가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이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며 기다리며 사는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중대한 것을 세상 때문에 소홀히 여기지 않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안식에 미치지 못한 자가 있었다는 말을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항상 상기하면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확고한 것을 붙들고 바라보며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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