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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자들을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본문 / 21:1-17

 

1. 되돌아간 베드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는 하나님이 신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 인간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으로 나름대로 판단해 버릴 뿐,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그 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답을 알기 위해 성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가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음을 기억하시고 오늘 본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본문의 나타나심이 세 번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확인시키기 위한 차원이라면 한 번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제자들에게 거듭 나타나시는 것은 부활에 대한 확인을 떠나 무엇인가 다른 의도가 있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두는 내용은 아마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나 되는 고기를 잡았다는 내용일 것입니다. 흔히 이것을 축복으로 비유하면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은 넘치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즉 말씀에 대한 순종을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국 교회 일에 대한 열심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할 것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고기 잡는 내용은 복 받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처럼 무엇인가가 주어지고 받는 것을 무조건 복과 연관 지어 생각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나 뜻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온통 자기 자신의 복에 마음을 기울이는 불신앙의 모습일 뿐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21:3)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베드로는 무엇 때문에 옛날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부는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베드로가 가졌던 직업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로서 다시 옛 직업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신앙이 타락된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앙의 타락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자신의 행위를 깨닫고 심히 통곡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이런 사람이 신앙이 타락해서 다시 옛날 직업으로 되돌아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읽은 15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신앙이 타락한 자에게 이런 질문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어부로 되돌아간 것을 신앙의 타락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어부로 왜 되돌아갔느냐 하는 것을 밝히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이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뒤의 내용을 살피면서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 추측도 할 수 있습니다.

한복음 20장에 보면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20:21-23)고 말씀합니다. 여기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신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죄사함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은 죄사함을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죄사함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제자들에게 맡기신 일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생각하시겠습니까?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가서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고 설득함으로써 교회 다니게 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중 대다수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에 열심을 내라고 말합니다. 결국 전도, 즉 그리스도를 전하고 믿게 되고 죄사함을 받는 모든 일에 있어서 중심은 인간의 열심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열심을 내야 한다 생각합니다. 열심이 곧 신앙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열심에 있어서 한번 실패를 해 본 사람이라면 다를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철저하게 자기 열심의 실패를 맛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를 따르겠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자기 열심도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의 일에 있어서 스스로 열심을 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일에 대해 인간의 열심이 쓸모가 없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혼란입니다. 그럼 뭘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자기 열심에 실패한 사람으로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자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 혼란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맡은 일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21:6)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의 직업은 어부였기에 베드로는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는 기술이 있고 노하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 등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이제는 고기를 잡는 일에서조차 자기 열심과 재주가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까지 자기 재주가 힘을 발휘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문제에서 자기 열심에 실패한 사람이, 이제는 생계 문제에서까지 자기 열심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결국 생계까지 예수님이 책임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에서까지 인간의 열심이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재주나 기술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먹고 살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열심을 철저히 포기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곧 신자의 신자다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를 세상에 보내서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시지만 믿게 하는 것은 제자들의 능력이나 열심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건지시고 믿게 하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냄받은 자는 아무리 전해도 안 믿는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냄받은 자는 전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지 믿게 하는 책임까지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지만 예수님이 어부인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대개는 예수님이 능력을 줘서 많은 사람을 믿게 하는 자로 부르신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배경으로 생각한다면 베드로에게는 믿게 하고 건지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어부는 어부인데 자신의 재주로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어부인 것입니다. 어부로서 베드로가 할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는 것 뿐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힘으로 사람을 낚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전도 자체를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전도인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 재주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했다 해도 그것은 주님이 하게 하신 것임을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다만 보냄받은 그 자리에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라 했으면 사랑하는 자로 살면 되고, 용서하라 했으면 용서하는 자로 살아가면 됩니다.

신자는 예수 믿기 전에는 내 힘으로 살았고, 내 생계를 위해 내 재주를 발휘했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내 힘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내 생계를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도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신자의 모습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의 신자 됨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사는 것에 있습니다.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내 열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바라보면서 주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신자다운 모습니다. 이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기 바랍니다.

 

3. 사랑함으로

그러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번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이러한 물음을 하시는 것입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인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원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열심이나 실력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그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기분 따라 주위 환경과 형편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는 변덕 많고 믿을 수 없는 우리의 열심을 과연 예수님이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예수님의 일에 있어서 우리의 열심이 진심으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항상 내 유익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그래서 우리 역시 베드로와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우리가 여전히 열심을 주장한다면 아직까지 자기 실패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랑을 원하십니다. 왜 사랑을 원하십니까? 그 이유가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양을 치라는 것이나 양을 먹이라는 것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에게 양을 치는 일이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양은 베드로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양이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에게 양을 맡긴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예수님의 양을 치는 자로 세운 것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이 점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목사에게 양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양을 치는 자로 세우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양으로 하여금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사랑하는 양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할 일은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예수님의 양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음성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양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이고 우리가 신자로 부르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는 신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을 사랑할 때 그것을 잘라 버리시기 위해서 사랑하는 세상 것을 내게서 끊어 버리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만드시는 것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양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할 일은 내가 머무는 그 자리에서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열심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열심을 믿지 않는 일에 열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다움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신자의 큰 병은 자신의 힘과 열심을 앞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큰 병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기도 많이 하는가 전도 많이 하는가?’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음을 하셨음을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물로 기도나 전도 등등의 행위 자체를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를 사랑함으로 하느냐 아니면 주를 사랑함으로 하느냐인 것입니다. 나를 사랑함으로 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된 종교생활이지만, 주를 사랑함으로 하는 일은 주님이 주체가 되어 되어지는 신앙인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나와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어서 복을 얻으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에 감사하고 더욱 주님만 사랑하는 자로 살고 싶어서 기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그렇기에 신자의 신자다움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확인하시고 알게 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전에는 오직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 주를 따랐던 제자들이라면 이제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주를 사랑함으로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그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잃지 마십시오. 항상 점검하고 확인하여 주님께 받은 그 사랑에 점령당하셔서 오직 주를 사랑함으로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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