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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별다른 한 제사장

본문 / 7:11-15

 

1. 진리의 일

율법의 세계에서는 오직 인간의 행함만이 진리로 유통될 뿐입니다. 만약에 율법의 세계에서 인간의 행함이 보이지 않을 때는 행함이 없는 그에게는 가차 없이 믿음 없음이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고, 반대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행함, 즉 착한 일, 기도, 헌금, 구제 등이 있을 때는 믿음 있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참된 신앙인으로 대우를 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참 진리는 그런 인간들에게는 축출의 대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참 진리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신앙인으로 구별되어 대우를 받던 모든 것들이 그 진리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높일 뿐, 그 어떤 인간도 높이지를 않습니다. 인간은 높임 받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빙자하여 행함을 앞세워 높임을 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분명 예수님에게나 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거부의 대상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함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이미도 사람들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그러한 생각이 신앙은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당연한 진리로 알고 있기에 결국 행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 행함에 열심을 두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은 행함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의 주장하심으로 말미암아 행하게 되는 것들이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행함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행함을 인정하는 신앙이라면 설사 자신에게서 어떤 행함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행함으로 끌어당겨서 자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행함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 다스리시고 간섭하신다는 증거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의 반응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도 지킬 것을 원해서 자신들에게 율법을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을 지킨 결과를 자신들의 구원에 두었던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킴으로 신앙에 거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것이 곧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이러한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이 수천 년의 세월을 따라 그대로 흘러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인간들 자신의 행함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한 자연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본성을 파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참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된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본성과 부딪히고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율법의 세계에서 볼 때는 복음은 이단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런 이야기는 설사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라며 비판을 한다 해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높여지고 증거되는 것으로 증거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만 그 마음을 둘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레위 제사장과 참 제사장

늘 본문 11절부터 보면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7:11-12 )라고 하여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다고 말합니다. 즉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이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 직분으로 바꾸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 직분이 바꾸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은 율법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반면에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다른 제사장 직분은 율법과 상관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결국 율법에 의한 제사 직분으로는 온전케 할 수 없으므로 율법과 상관이 없는 한 제사장이 세워짐으로 우리를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율법은 인간은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온전해진다거나, 거룩해진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에 하반절에 보면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7:12 )라고 말씀합니다. 제사 직분은 율법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한 제사 직분이 바뀐다면 그것은 율법이 바꾸어 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율법을 구약의 방식대로 지켜야 할 행함의 부분으로 인식을 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거룩을 얻으려고 하는 발상이야말로 복음을 말하면서도 거꾸로 복음을 밀쳐내는 것임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왕 바뀌어질 율법이라면, 즉 처음부터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없는 율법이고 또 그런 율법과 상관없는 제사장이 따로 준비되어 있던 것이라면 처음부터 율법으로서의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세우면 안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레위 계통을 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까? 그것은 복음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이 안고 있는 영원한 구원은 인간의 행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주어진 은혜임을 알게 하고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될 수 없음을 선포하기 위해 율법을 주시고, 율법에 의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옛 언약인 율법을 주신 것은 단지 그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은 로마서 3장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고 말씀하는 것처럼,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인간이 율법을 지켜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 언약대로 주의 은혜로만 되어진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부터 보면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7:13-15)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오셨는데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로 오셨습니다. 유다 지파는 율법상 제사장직과는 상관이 없는 지파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그러한 유다 지파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사장이면서도 율법과 상관이 없는 유다 지파로 오심으로써 율법은 지켜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레위 지파로 세워진 제사장에 속한 자가 아니라 유다 지파로 오신 예수님께 속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율법을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중요한 행위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깨끗이 씻김 받은 돼지가 다시 더러운 곳에 눕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며, 자신이 토해 놓은 것을 다시 먹는 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3. 신자 된 우리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인해 거룩함에 이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고 생명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서는 지켜야 하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베풀어지는 것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의 신자는 베풀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서는 다른 요구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말하면서 신자가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칙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내 입술로 고백하는 은혜를 뒤엎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어떤 율법 조항을 지킨다 할찌라도 온전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을 몇천 마리를 잡아 바친다고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인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는 그렇게 된 자들입니다. 있다면 죄 가운데서 뒹굴며 살았던 우리가 예수님이 제물 되심으로 온전케 되어진 것뿐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그가 바로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누리고 있는 신자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거저 주시는 은혜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임을 알기에 폐일언하고 높은 분에게서 낮은 자가 복 빎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요 기쁨이 되는 사람이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에 있어서 지켜야 한다는 것만큼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이 없음을 아시고 이미 주어진 은혜로 감사함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신자의 행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을 잃지 않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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