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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율법과 말씀의 차이

본문 / 7:26-28


1. 율법과 말씀

우리가 율법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고 또 말씀으로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율법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으로 사는 것과 말씀으로 사는 것을 사실 따로 구별하여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뜻에서 생각한다면 율법 역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계시하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율법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을 살핀 것이 아니라, 율법을 자신들이 지켜내야 할 항목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의도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율법으로 사는 삶을 구축해 버린 것입니다. 율법에 기록된 항복들을 하나하나 지키는 것만이 율법으로 사는 삶이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이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노력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과 뜻을 왜곡하고 벗어난 결과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왜곡된 삶은 오늘날의 교인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가 지켜야 할 항목으로 이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차원이 아닌, 단지 인간들이 지켜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법적인 차원으로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율법으로 사는 삶과 말씀으로 사는 삶을 구별하여 묻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사는 삶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무엇을 율법으로 사는 삶으로 인정하겠습니까? 우리도 잘 아는 것처럼 사람들은 율법의 중요성을 그 율법을 지키는 것, 즉 실천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율법을 알고 있고 암기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율법을 실천하지를 못한다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리고 그것은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 알고 있는 말씀으로 살지 않는다면, 즉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씀으로 살지 않는 것으로 여기며 그것은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는 믿음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에 대한 실천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실천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써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열매로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물론 성령이 신자의 마음과 의지를 다스리면서 열매를 맺어 가시는 것입니다. 신자의 마음과 열심이 말씀을 향하게 하시고, 말씀이 나타나고 증거되는 삶의 모습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서 말씀의 모습이 보여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실천이 아니라 성령이 일하시는 흔적임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신자가 말씀에 대해 열심이 있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좋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으로 사는 것을 인간이 행함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말씀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까? 과연 무엇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다시 율법의 문제로 돌아가서 무엇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율법이 요구한 바에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사는 것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의인으로 만들고자 하신 의도는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요구에 순종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인간의 한계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요구에 순응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순종한다는 정확한 의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처럼 이 부분에서 무지했던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사는 것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로 인한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미 죄에서 자유롭고 영원한 생명에 거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거듭해서 죄 문제를 언급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제는 생명을 얻었으니 죄 문제는 그만 말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 거북스러워합니다. 죄란 자신의 약점이고 부끄러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추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죄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가운데서만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쌓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죄 문제만큼은 덮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동시에 무능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죄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26절부터 보면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7:26-27)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는 제사장을 두 계통으로 언급합니다. 하나는 레위 계통이며, 다른 하나는 멜기세덱 계통입니다. 이 두 계통의 차이는 레위 계통은 율법으로 세워졌다는 것이고, 멜기세덱 계통은 율법과 상관없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러면 우리에게 합당한 제사장은 어떤 계통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입니다. 이유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그가 아무리 신실하고 착하고 훌륭한 인격을 지녔다 해도 백성을 의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자신 역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를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 즉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자신을 위한 제사가 필요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단번에 자기를 드려 제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이 모든 것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거나,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들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진 은총을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 때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지고자 했습니다. 제사장이 있고, 열심히 제물 바치고 제사 드리면 다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제사 드리는 행위가 자신들을 깨끗하게 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제사가 반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인간의 제사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사가 인간을 의롭게 할 능력이 있다면 한 번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율법으로 인한 제사는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반복되는 제사에서 자신들이 하는 제사까지도 자신들을 깨끗케 할 수 없음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자신들의 제사에 희망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는 제사에 마음을 두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습니다. 즉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제사로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버린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깨끗케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의 이러한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것은 너희의 어떤 행위로도 깨끗함을 입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를 믿지 않고, 그 행위에 그 어떤 가치도 두지 않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3. 율법과 말씀의 차이

교회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율법적인 것에 매달려 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주일이라는 규례에 매이고, 십일조라는 규례에 매이고, 작정 기도와 작정 헌금 등 이런 모든 것들까지 율법화 해서 지켜야지만 신자고, 지키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지키고 행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죄인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고 신앙이 큰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가 주일이면 예배당에 모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가 서로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고 은혜를 나누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고 말씀을 대하기를 힘쓰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신자의 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모의 마음이 그러한 모습이 있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율법화 해서 마치 신앙의 유일한 증표인 것처럼 전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늘 본문 28절에 보면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7:28)고 말합니다. 율법이 세운 제사장은 약점을 가진 인간일 뿐입니다. 결국 율법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행한다고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온전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말씀의 차이입니다.

율법에는 지켜야 하는 것이 있지만, 말씀에는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키시고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요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꾀하는 것은 인간의 약점을 보지 않고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에 대해 눈을 떠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 나와야만 합니다. 그럴 때 오직 예수님으로만 말미암아 온전케 되어진다고 하는 복음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만이 온전하신 예수님만이 나의 전부가 되시고, 유일하신 희망이라는 말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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