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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원한 은혜

본문 / 10:10-18

 

1. 하나님의 뜻

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인간이 그 어떤 율법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 율법으로 자기들의 거룩을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기 의만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1-5)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율법적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자기 의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남과 비교하여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게 된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보면 자기 의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율법적이냐 복음적이냐 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자랑이 나오느냐 아니면 감사가 나오느냐로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율법적이면 아무리 은혜를 말하고, 복음을 말한다고 해도 자기 자랑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그래도 이만하기에 은혜를 받았고, 복음을 안다고 하는 것이 자기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자기 자랑으로 귀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에 자기에게는 일체의 의가 없음을 알고서 주어지는 의로 인하여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 때때로 참으로 번거롭게 일하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생각하자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만큼 예수님을 굳이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지 않아도 우리를 얼마든지 구원하실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의문도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아들을 보내서 죽게 하시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입니까?

약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 말씀에 보면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10:8-9)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 것이란 제사와 예물 등 율법의 규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두를 폐했다는 것입니다. 일부가 아닌 전부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구약의 안식일을 주일로 연계하여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또 구약의 십일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십일조를 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명령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분명 하나님은 첫 것을 폐하신 것으로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하나님은 이왕 폐하실 것을 도대체 왜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와 제물 바치는 것이 철저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자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잘못해서 첫 것을 폐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철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것을 폐하신다는 것은 결국 애당초부터 하나님은 제사와 제물 등 율법을 통해 기쁨을 얻을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사 제물 등의 율법은 처음부터 폐지를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폐지하실 것인데 왜 번거롭게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둘째 것을 세우셔서 일하시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중심은 은혜입니다. 어떤 은혜인가 하면, 자기 몸을 드려 죽으신 분은 예수님인데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룩함을 입을만한 존재가 되지를 못하는데 자기 몸을 드려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거룩한 존재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상의 사고방식은 일한 만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 역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신앙이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복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며 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부당하다 여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들 생각처럼 받을만해서 받는 것이라면 너희가 받을만한 일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것을 먼저 주시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첫 것을 주심으로써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가능성을 무너뜨리시고, 둘째 것을 세우셔서 인간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렇게 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시고 그 은혜를 고백하게 하시는 것으로써 기쁨을 얻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번거롭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잘 아시기에 때문에 너무나 강퍅하고 완고한 고집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한 치의 빈틈도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가 무엇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셨습니다. 아들의 순종에서 기쁨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어떤 일이 그 아들의 죽음과 비교할 만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에 대해 의심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행하신 의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무슨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복을 얻겠다는 발상 자체가 은혜에서 멀어져 있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2. 누구를 위하여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10:11)라고 말합니다. 제사장이 매일 서서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제사가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행한 것에 가치를 두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제사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된 것이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 제사를 이스라엘에게 드리도록 하신 것은 장차 둘째 것을 세우셨을 때 둘째 것의 가치가 어떠한가를 보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0:13)라고 하여 하나님의 원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를 의미하겠습니까? 둘째 것의 가치를 보지 않고 첫째 것을 고집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만족을 위한 종교생활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사야 58장에 보면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58:1-9)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길 알기를 즐거워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1. "목청껏 소리질러라. 네 소리, 나팔처럼 높여라. 내 백성의 죄상을 밝혀주어라. 야곱 가문의 잘못을 드러내어라. 2.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다면서 3. 한다는 소리는, '당신께서 보아주시지 않는데 단식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데 고행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합니까?' 그러면서 단식일만 되면 돈벌이에 눈을 밝히고 일꾼들에게 마구 일을 시키는구나.”(58:1-3 / 공동번역)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면 마치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처럼 또 의로운 판단을 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처럼 금식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데 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는가 하고서 항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규례를 지키고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순전히 자기들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인데도 오히려 약한 자를 학대하면서 자기들의 종교적인 업적으로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죄악이 고쳐지지 않았기에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7장에도 보면 “1.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7.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7:1-7)고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서 포로 기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며 애통한 것을 계속할 것인지 하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오월의 금식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인한 것이고, 칠월의 금식은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의 마지막 방백으로 세운 그달리야가 암살당한 사건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바벨론 포로 70년 기간 동안 얼마나 금식하며 애통하였을까요? 그런데 그 금식마저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로 생활 중에 금식하며 애통하는 것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라면 평소에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결국 다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믿음이 있는 자에게 행함은 자연히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예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적 특정 행위를 신앙적 가치가 있는 행위로 규정하고 그런 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신앙을 판단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상이며 또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어떠한 율법과 규례와 금식과 제사도 그들의 죄를 해결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새 언약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새 언약에 대하여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에서 새 언약에 대하여 말씀하고서 또다시 여기서 새 언약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들과 맺을 언약

오늘 본문 15절부터 보면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10:15-16)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그들과 맺을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내 죄를 위하여 가지고 나와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세우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말하면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도 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알았기에 자연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7절부터 보면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10:17-18)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우신 언약입니다.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기에 다시 죄를 위해 제사 드릴 것이 없게 된 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에서 믿음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은혜를 보지 않는 하나님의 원수된 사고방식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 행하신 모든 행위가 우리의 의가 되어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올 의는 없음을 분명히 하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 자라면 특정한 종교적 행위에 매달리지도 마십시오. 신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특정한 행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은혜로 살기에 어떤 일에서도 주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할 자는 죄사함의 기쁨을 아는 자일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믿고 은혜에 감사하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신자는 세상에 부러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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