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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죄와 은혜

본문 / 10:15-18

 

새 언약과 성취

오늘 본문의 말씀은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새언약에 대한 내용은 예레미야에 있는 약속입니다.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고 합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합니다. 모세 언약은 돌 판에 기록이 되어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합니다. 마음에 기록한다고 하는 것은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은 오직 주의 성령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 언약을 이루실 날에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새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옛 언약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구약 전체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미 구약 성경에서 새 언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길은 새 언약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36:22-28)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대로 더럽혔음에도 다시 인도하여 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시는 일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예레미아 34절에 보면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4)고 합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에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새 언약 하에서는 그 죄를 사하여 주시고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옛 언약 하에서는 여호와를 알라고 계속하여 말해야 합니다. 율법이 주어졌기에 법을 상기시키면서 여호와를 알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낫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으로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호세아 6장은 잘 보여줍니다.

호세아 6장에 보면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6:1-11)고 합니다.

왜 새 언약, 즉 새 영과 새 마음으로만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구약 성경 전체가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13장에 보면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13:23)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새 언약을 예언한 것은 옛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 나아가서는 인간들의 실상이 이러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율법 지킴이나 의로운 행위로도 하나님의 생명에 이를 수가 없음을 보이며 새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이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이 되는 것이며 그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말씀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기에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2. 은혜의 가치

이처럼 인간의 노력과 열심으로 되지 않은 것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자신의 뜻과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부인하고 대신 믿음이 이끄는 길로 들어서라고 요구합니다. 이로 인해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인간들에게는 때로 믿음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으로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태어난 내 본성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삶을 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항상 옛 본성과의 충돌을 일으킵니다. 옛 본성은 나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예수님을 향하여 살아가도록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이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처럼 옛 본성과의 충돌 속에서 갈등하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어떠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은혜는 과거사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일어난 일이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지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신자는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신자는 그가 어떤 일을 겪는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겪는 일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기분에 따라 변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신자로서 은혜를 입었다면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신자는 어떤 일에서도 좌절과 낙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10:17)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죄와 불법이 우리의 본질이었습니다. 죄와 불법의 결과는 당연히 영원한 멸망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불법을 하나님은 다시 기억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으로 우리의 죄와 불법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 받은 놀라운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형수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형수에게는 하루하루가 연장된 삶이고 덤으로 주어진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루가 참으로 귀한 날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신자가 그런 사형수의 심정으로 산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하나님께서 덤으로 베푼 은혜의 시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은혜를 충분히 누리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절박한 심정들이 자취를 감추고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 있고 또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에 대한 고마움을 갖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와 불법에 있는 우리의 처지가 어떠함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하루를 연장받아야 할 가치도 또 이유도 없음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하루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형수는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하는 불안한 삶 속에서 하루를 바라보지만, 신자는 죄와 불법이 사면된 자로서 하루를 바라보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할 자가 오늘 살아있는 것에서 하나님이 베푼 하루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감사함이 있는 것입니다.

죄와 불법에 있던 자신의 위치를 보는 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불법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음을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불법으로 인해 어둠에 갇힌 나에게 한줄기 비취는 빛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죄와 불법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위치를 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자랑

이러한 신자에게 자랑은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집니다. 신자의 자랑은 자신의 잘남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의 잘남을 바라보며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는다면 그는 아직 죄와 불법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보지 못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자랑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어진 것에 있습니다. 죄와 불법에서 벗어나 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우리의 손과 발과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보지 못함으로서 세상을 기웃거리게 됩니다. 세상을 보니 세상의 힘으로 자신을 지탱하는 것이 더 확실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죄와 불법에 있던 우리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날 위해 구할 것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주어졌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알고 모든 소원을 하나님께 두며 오직 그것을 위해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10:18)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다시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제사로는 죄사함의 은총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총에 거하게 되었으니 예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가지고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뭔가를 할 것을 요구하시지 않고 다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은혜를 누리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왜 이것을 못 미더워 하는 것입니까? 왜 자꾸 자신의 행위에 신앙의 근거를 두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수를 말하나 예수님의 은총에서 벗어난 잘못된 믿음일 뿐입니다. 인간의 신념이나 의지일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는 우리의 신앙 행위로 말미암아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아무리 어려운 처지라 할지라도 죄와 불법에 매어 있던 처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죄와 불법이라는 처지가 우리의 육신에 큰 어려움과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기에 실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에 몰려오는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불법은 한시적인 육신이 아니라, 영원한 영혼의 고통으로 끝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미리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죄와 불법이라는 처지를 생각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한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처한 환경은 어려움과 고통이라고 해도, 신자된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어떠한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은혜는 우리에게서 불평과 원망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이란 자기의 열심이나 업적이 담겨지고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하나님의 하신 일이 담겨지고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길이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들 속에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계속하여 그래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고 싶을 것입니다. 자꾸 은혜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그저 놀기만 할 것이기에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을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없습니다. 혹 무엇인가 우리에게서 어떤 모습이 나온다면 오직 새 마음으로 되어지는 것 뿐입니다. 불평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나오게 됩니다. 편함과 이익을 추구하는 욕심으로 인해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더 좋은 것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불평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야 말로 스스로 은혜를 배격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자랑이 무엇이고 기쁨이 무엇이고 감사가 무엇인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 무엇도 부럽지가 않은 복된 존재로 굳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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