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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함께 세워져 가느니라

본문 / 15:12-14

 

1. 율법 속의 의미

오늘 본문 앞에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식사를 할 때 그들의 전통에 따라 손을 씻지 않는 것 때문에 공격을 받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마음을 씻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손을 씻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가 아니라고 답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같이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힐 것이고 그리고 너희는 소경이라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대화는 유대인 전통에 관한 것이지만 좀 더 포괄적으로 이야기해서는 율법의 의의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도덕과 윤리 규정 정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하나님만이 법을 세우실 수 있다는 뜻을 가장 큰 의미로 가집니다. 법은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세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15:9)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법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의로움과 선함과 진리와 질서에 대하여 유일한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떤 도덕과 윤리를 주셨다 할 때 우리 인간이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이런 거룩한 일에 유일한 창조주요 그런 것을 제정하시고 요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뜻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는데 거기에 이 율법을 주시는 기본적인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 있습니다. 1절부터 보면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0:1-2)고 말씀합니다.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을 지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구원하셨다고 말씀하며 그 뒤에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시는 것은, 나는 너희가 무질서나 혼돈이나 무지나 더러움에 버려져 있는 것을 원치 않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에게 정결함과 질서와 자유와 선과 의와 복을 주기를 원하는 하나님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주시는 기본 개념입니다.

그중에 8절 이하에 보시면 안식일에 관한 규례 속에 이런 설명이 등장합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8-11)고 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엿새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식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십계명과 율법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시는 권위와 그 능력을 기준하여 제정된 것이며,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할 때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가지는 의미나 목적 그리고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어떤 물건을 만들 때도 물건을 만든 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는 것이랑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그 모든 것들의 가치와 목적을 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만들면서 그것의 목적을 정하고 또 그것의 가치를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 피조물 된 인간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시는 내용 속에 포함된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되는 뜻입니다.

 

2. 율법의 부수적인 결과

이런 율법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구원자 되심 속에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이해가 부수적인 결과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로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율법의 요구 속에서 우리는 확인 합니다.

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우리 안에 선한 것과 거룩한 것을 만들어 낼 생각도 없으며 실력도 없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로마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에 보면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10-20)고 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는 것은, 율법이 특별히 죄를 정죄하기 위해 만들어졌거나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관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자족할 수 없는 존재며,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음과 또 선하고 의로운 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알게 하는 부수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만물을 지으신 것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우리를 위하여 은혜와 자비와 구원을 베푸신 것을 압니다. 그 속에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존재와 상태에 있는가를 아는 일들이 부산물로 결과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또 알게 됩니다. 혹 그런 선하거나 양심적인 생각을 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일이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살리라고 다짐을 하고 세상에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적으로 살아도 이 세상에서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몇 번만 하다가 그만두게 되고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만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그렇게 신앙적으로 살려고 하는 믿음의 후배들에게도 한다는 말이 나도 다 해 봤었다고 하며 도리어 방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은 할까 봐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끼리도 방해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말들조차도 그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말을 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생각과 선한 의지와 선한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율법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또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쯤 되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율법 아래 있지도 아니하고 십자가 아래 있다고 쉽게 핑계를 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율법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지 율법과 십자가가 적대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만 합니다.

 

3. 율법과 십자가

그래서 다시 로마서 3장을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부터 보면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1-24)고 합니다.

기에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는 십자가를 말씀합니다. 이 십자가는 21절에 있는 바와 같이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율법의 첫 번째 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하는 것이며 또 그에 따른 부산물로 인간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율법이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율법은 초등선생이 되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높으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낮으며 또 그 앞에 죄를 범하여 죽었던 우리를 그 높으신 하나님이 그냥 힘으로만 높으신 것이 아니고 또 물질적으로만 창조주가 아니라, 의로움과 선함과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과 구원의 손길을 펴사 하나님의 높으심을 우리에게 결실케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된 27절에 보면 율법으로나 십자가로나 우리는 항상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3:27)로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한 요소와 우리 신앙 점검의 제일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리고 이 문제는 31절의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는 말씀처럼 이 십자가가 율법과 같은 선상에 놓여졌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런 확인이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지는 커다란 이상 중에 하나가 멋진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멋진 신앙인이라는 것을 아무 죄도 안 짓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늘 쓸모 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항상 어떤 기능적이나 능력적인 차원에서만 신앙을 점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십자가의 뜻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용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며 또 그 은혜가 나에게 허락된 것 같이 모두에게 허락되기 위하여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멋진 교회는 가정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군대나 학교처럼 어떤 일을 잘 해내는 기관과는 다른 것입니다. 가정은 생명이 태어나며 생명이 자라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생명이 태어나는 일과 생명이 자라나고 세워지기 위한 일들이 있고 또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애는 뱃속에 넣고 다닐 때가 제일 편하다고들 합니다. 태어나면 그다음부터는 편할 날이 없습니다. 대학만 가면 편할 것 같고, 시집 장가만 가면 편할 것 같지만 아니라는 것을 겪어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자녀들이 나중에 다 갚겠다고도 합니다. 효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있어 효도는 자녀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고 잘 살면 그것이 효도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이 들어 무슨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그냥 너나 잘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훌륭한 부모는 남들 볼 때 사회적 지위나 유명세를 타는 것이 훌륭한 부모가 아니라, 그 못난 자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인 것입니다. 진정한 가정도 아이들이 바르게 크도록 기다려 주는 가정이 훌륭한 가정이며 행복한 가정인 것입니다.

고민 없고 근심 없는 가정과 집은 없습니다. 우리 집만 제일 고단한 것 같지만, 남의 집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낳는 것도 어렵지만 바르게 세워지는 것은 그 이상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을 다루는 것하고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고집과 주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런 우리가 포기되지 않고 다듬어져 세워지는 것은, 부모들이 자식에 대하여 갖는 본성적인 모성애와 부성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신자가 되면 모든 인간에 대하여 동일한 마음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식에게만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런 시선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도 보면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4:14-16)고 합니다.

스승이 되지 말고 아비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식만 건네주는 스승이 아닌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바르게 잘 자랄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는 아비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판권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찾아오신 것 같이 모든 사람에게도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를 기다리며 따뜻한 주의 마음으로 맞아주고 지켜보고 있어야 됩니다. 신자인 우리에게는 화목케 하는 일과 남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일만 요구되어 있지 심판권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란 누가 얼마나 더 오래 또 많이 참아주는 사람이 많은가 하는 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누가 더 오래 참고 기다리느냐 하는 싸움이 신앙의 싸움입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신앙인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신앙인은 능력과 기능의 개념이 아니고 인격과 안목의 개념에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기다리시며 용서하시며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5장에 보면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5-7)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으로 권위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높이심을 보이시고 자랑하십니다. 우리도 누구에게든지 잘못된 흠을 잡는 것으로 우리 신앙을 점검하려 하시지 마시고 우리가 얼마나 더 참는가로 가셔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는 자리까지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가장 고귀한 경지이며, 제일 중요한 본질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에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14:1)고 합니다. 한마디로 기다려 주라는 것입니다.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품어주고 기다려 주어야만 합니다. 또 로마서 15장에 보면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1-2)고 합니다.

우리가 강한 자라면 못난 자를 지적하여 우리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존재가 이익이 되고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 혜택을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자가 아닌 이웃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또 이것이 율법의 정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정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2022년에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뭐 이래 또는 저 집사는 왜 저 모양이야하는 것이 보이신다면, 우리는 바로 거기서 그런 교회가 또 그런 집사가 우리 때문에 혜택을 보고 더 나아지고 자라날 수 있도록 존재하며 기다려 주어야만 합니다. 혹 그들이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고, 방패가 되어 주고, 그늘이 되어 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의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는 말씀처럼 우리는 같이 가셔야 하며, 같이 자라가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요,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또 그것이 좋은 신앙이요, 좋은 신앙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로 또 존귀한 성도로 예원의 모든 가족들이 더욱더 세우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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