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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가 이른 곳

본문 / 12:18-24

 

1. 가치관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가치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의해 결정 되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그리고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로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관은 그가 어떤 일을 하고 또 그 일이 그 사회에 어떤 혜택을 주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얼마를 받는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소유하는 것으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켜서 대우받고자 하는 욕망이 소유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왜 사는가?’라든지 또는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과 생각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그런 생각은 소위 자본주의 사회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생산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유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물든 교회 역시 교인의 숫자나 헌금 그리고 건물의 크기 등으로 교회의 가치와 목사의 능력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를 키워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스스로도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소위 복음이라고 하는 것에다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것들을 첨가하여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것은 이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신자가 교회를 찾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다른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의 세계를 찾으며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는 자신을 붙들어서 어디로 이끌어 가는가를 교회를 찾아 말씀을 통해 배우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 안에 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뜻하기 때문에 세상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예수 안에 산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다른 가치관에 의해 다스림 받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 안이라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 것입니까?

 

2. 시내산과 시온산

오늘 본문 18절부터 보면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12:18-20)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신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은 한마디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시내산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워 더 말씀하지 않기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모든 죄를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내산의 하나님께로는 그 누구도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짐승도 산에 이르면 죽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세상의 모든 것은 악하고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산에 이른다는 것 자체가 소멸을 자초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도, 구원의 통로로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실체를 깨닫고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들은 하나같이 자기 사랑과 탐욕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지킬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19절에 보면 신자는 그러한 시내산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가 이른 곳은 어디인 것입니까?

오늘 본문 22절부터 보면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12:22-24)고 말합니다.

여기 보면 너희가 이른 곳은 시내산이 아닌 시온산이라고 말합니다. 시내산과 시온산의 다른 것은 시내산의 하나님은 그 무엇도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시온산의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초대하여 불러 모으는 하나님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이 시온산에 이른 자들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이며,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며 또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뿌린 피로 인해 거룩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나가게 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택하심과 불러냄을 받고 거룩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시온산에 이른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을 시온산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택하심과 불러내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 뿌림만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천국에 이른 자의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의 의로움과 행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기 것으로 자신이 평가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시내산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온산의 하나님은 인간의 행함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 흘림을 보시고 자기 백성을 거룩하다고 여겨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의 의와 행함을 가지고 시내산에 선다면 과연 그는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습니까? 만약에 사람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하실만한 행위가 있다면 그는 의로운 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의가 없다면 그는 결국 그 행위대로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종 자신의 행함에 대해 자신 있게 나의 이런 행함이라면 하나님이 분명 기뻐하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일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것과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윤리와 도덕적인 사람에 대해서 세상이 선하게 바라보기에 그런 자신이 선하다고 하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세상의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범이고 질서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선한 것은, 자기 사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선한 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직 자기 사랑으로 무장되어 살아갑니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악할 뿐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들 돌아오는 것은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심판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신자가 이른 곳은 우리의 행위로 판단하시는 시내산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를 가지고 판단하시는 시온산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가 우리를 살리는 곳에 이르러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시온산에 이른 신자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3. 신자가 할 일

신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이르렀고 또 천국이라는 복에 참여 되어 있는데 또 다시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행함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의의 행위를 모독하는 것이고, 거룩하신 피를 더럽히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예수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하며 살아가시면 됩니다. 다만 무엇을 하든 그것이 나에게 의가 되고 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시내산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무엇을 하든지에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봉사를 하든, 기도를 하든, 헌금을 하든, 전도를 하든, 그 무엇을 하든 내가 이것을 했으니까?’라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단의 생각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행한 일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미 예수 안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도달한 자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에 보면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14:7-9)고 합니다. 이것이 주의 은혜로 천국 백성된 자의 삶입니다/

그러니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도 자랑하지 마시고, 나를 천국에 있게 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피의 능력만 자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에게 최고의 기쁨이며 즐거움이라는 것을 예수 안에 살아가면서 맛보라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사람이 차 안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가?’로 고민하며 자기 할 일을 찾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운전기사를 믿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여행을 가는 사람이 할 일은 여행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신자는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즐기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른 곳은,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보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고 거룩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더럽고 무지한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덮고 있기에 구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치 타락한 아담의 수치를 가죽 옷을 입혀 가려 주신 하나님의 손길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 고마움을 마음에 두고 감사하며 그냥 살면 됩니다. 그것이 신자다운 것이며 또 그것이 그리스도 안의 세계인 것입니다.

자신의 의와 행위로 판단 받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하나님은 행한 대로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심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자가 이른 예수 안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복된 곳이고 은총의 세계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헛되다고 말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가 우리의 모든 악한 죄를 덮어주고 용서하는 세계에 이르게 된 복을 감사하며 은혜의 세계에서 기쁨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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