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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경고

본문 / 10:26-31

 

1. 신자의 실체

신자가 비록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를 못한다고 하는 것이 그 실체입니다. 신자가 비록 죄가 무엇이고 또 선이 무엇인가를 알았다고 해서 죄를 거부하고 선을 택하며 살아가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것은 아직 살아있는 인간의 옛 본성이 여전히 죄를 좋아하고 원하기 때문입니다. 간이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죄가 제시하는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옛 본성이 원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선을 원하지만 결국 몸은 악을 따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 보면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15-25)고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내용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입니다. 18.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19.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20.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내 마음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23.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25.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7:15-25 / 공동번역)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고민과 근심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26절부터 보면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6-27)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는 것은 진리가 무엇인가를 아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알았으면서도 짐짓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가 무엇인가를 알았으면서도 죄를 범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참으로 심각한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자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을 것을 말합니다.

리에게 이것이 무슨 뜻으로 들리십니까? 진리를 알았으면서도 죄를 범한다면 다시 속죄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을 뿐이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속죄의 자리에서 쫓겨난 채 심판을 기다리는 불쌍한 처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곧 진리를 알면서 짐짓 죄를 범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영원한 속죄의 은총을 누릴 사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결국 우리 모두는 소망이 없는 자라는 뜻인 것입니까? 그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러면 오늘 본문은 어떤 뜻이겠습니까? 먼저 진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참된 도리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사라져도 변하지 않을 영원한 진리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알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았음을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속죄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속죄의 은혜는 죄를 범할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속죄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드려진 속죄의 제사는 한 번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죄는 반복된다고 해도 속죄의 제사는 반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2. 믿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믿음의 의미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신자에게 믿음이 있고 성령이 오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죄를 이기고 죄를 짓지 않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나를 책망하시고 속죄의 자리에서 나의 모든 죄를 덮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이해를 가지고 오늘 본문을 대하면 오늘 본문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내가 진리를 안다고 해도 여전히 그런 내가 죄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의 속죄의 은혜가 나를 덮고 있음을 발견하고 깊은 감사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는 말은 속죄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죄를 범한다고 해도 신자는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피의 용서가 그의 죄를 덮고 있는 것이지 또 다시 주님의 속죄의 제사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러면 짐짓 죄를 범해도 여전히 예수님의 용서 안에 있으니 마음껏 죄를 범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죄에 대해 하나님이 하실 일까지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 일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우리의 용서와 구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심판의 의지까지 담겨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기어코 심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의지인 것입니다. 이처럼 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본다면, 우리는 자신의 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것이고 그 모든 심판을 예수님이 담당하셨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죄에 대해 그냥 담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읽은 로마서 7장의 바울처럼 죄에 대해 깊은 애통과 탄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믿기 때문에 있게 되는 탄식이며 애통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진리를 아는 신자인 것입니다.

에 대해 맹렬한 불로 소멸하시겠다는 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남겨 두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남을 것은 거룩하시고 깨끗한 분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몸 밖에 없습니다. 그런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인해 모두가 거룩된 존재로 여김받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를 믿는 신자들인 것입니다.

 

3. 원수와 심판

늘 본문 30절을 보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10:3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원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나타내신 아름다운 은혜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자입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되겠습니까? 것은 은혜를 말하면서도 정작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원수로 말씀하시고 반드시 원수를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원수인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이 나타내신 은혜,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행함이 심판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함을 말하면서 행함에 의해 심판을 받고 상을 받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알지 못한 무지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입술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30절의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 하리라는 것은 무슨 뜻인 것입니까? 이것은 그의 백성을 심판하셔서 지옥으로 가게 하신다는 의미로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살피며 살아갈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으로 날마다 나를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믿는가를 자신에게 물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 많이 했는가?’ ‘성경 많이 보는가?’ ‘전도 많이 했는가?’라는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함으로써 쓸데없는 심판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기준을 바라보고 믿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신자는 오직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래서 오늘 본문 28절부터 보면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10:28-29)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보면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이라고 말합니다. 민수기 35장에 보면 “30.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35:30-31)라고 합니다.

즉 고의로 살인한 자의 죄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인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전 제도는 이런 자의 생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자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성령이 임하여야만 제대로 알게 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예수 믿는 것이 은혜임을 알고 또 믿고 나서 사는 것도 다 예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는 증거는 은혜를 아는가 모르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여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로 주신 것들이 무엇입니까?

신자는 그 아들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고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았고 또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장차 망할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썩지도 더렵혀지지도 아니하는 나라를 소망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모든 것이 다 은혜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 은혜의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해도 또 무슨 봉사를 하여도 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나오지 아니하고 법이 나오고, 도덕이 나오고, 육신을 묶는 법으로 교회를 움직여 나가려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가시적인 효과가 없어 보이고 일이 더딜지라도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은혜로 모든 일들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의 아들과 그 언약의 피와 그리고 은혜의 성령에 대하여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대하는가를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그 아들을 밟고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할 자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바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십시오. 모든 심판을 홀로 담당하신 예수님의 은혜보다 귀하고 값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은혜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며, 은혜는 나의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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