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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본문 / 11: 1- 3

 

1. 잘못된 이해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장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9)는 말을 하고 이어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으로 살았던 여러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서점에 가면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을 영웅시하고 그들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은 우리 생각처럼 어떤 인물들의 믿음을 칭송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어떤 인물을 위인화 시키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믿음에 대해 신자인 우리가 분명하게 가져야 할 중심적 사고는 믿음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믿음 스스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믿음을 갖기를 결정해서 믿음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살려는 의지가 있어서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 자체가 능력이기에 신자가 믿음에 의해 또 믿음에 붙들려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신자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 의지에 의해서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외치는 것이고, 부지런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도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32절부터 39절에서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이어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의인들을 말함으로써 믿음이 과연 신자를 어떤 삶으로 인도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한 것과 연결하여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히브리서 11장에서 인간에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즉 믿음이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이끄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오늘날의 교회가 말하고 있는 믿음이 어떤 면에서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믿음

지난주에 나누었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10:38)는 말씀은 히브리서 10장까지의 전체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대로 성경이 증거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5장의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는 말씀처럼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완성이 되시므로 그를 믿음으로 단번에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 히브리서 11장에서 그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그들이 믿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면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신 궁극적인 분을 계시하고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인간의 위대한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11장의 서론으로 믿음에 대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라고 말합니다. 믿음이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실제로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지만 이루어질 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믿음의 경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15:5-7)고 합니다.

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는 후손의 대한 약속을 합니다. 아브람은 자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신다고 하시니 이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었는데 아직 자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믿음의 약속을 받은 것이 이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갖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나의 손에 아무런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 우리도 끝까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믿고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자기의 소망이나 야망을 이루어 주신다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그 약속이란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인데 이 약속을 주실 때는 어느 것 하나 아브라함의 손에 들어온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믿기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인도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읽은 창세기 15장의 약속은 이미 창세기 12장에 보면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1-2)고 하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장과 창세기 15장 사이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다루어 가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인 사래를 누이라 속인 사건, 조카 롯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 그리고 그돌라오멜 동맹군에 잡혀간 조카 롯을 구하는 전쟁 등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겪게 하십니다. 그 모든 일들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하신 후에 후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다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으매 그것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이삭이 일차적인 바라는바 내용물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내용은 신약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후손이란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3:16)고 하여 수많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실상이요 증거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결론이 주어져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이 말씀을 마치 자신의 원하고 꿈꾸는 것을 얻고자 기도하면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로서의 기독교일 뿐입니다. 이런 아브람의 이야기가 나하고는 멀리 떨어진 이야기 같습니까? 그럼 여기서 말하는 바라는 것 또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신자가 바라지만 그럼에도 보지 못하는 천국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는 우리는 모두 천국을 소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의 실상을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무엇으로 천국의 증거로 삼겠느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로 천국의 실상이나 또는 증거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증거로 삼아 천국을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서 확인되어진 것만 믿고자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 역시 믿음입니다. 물론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차원이 아니라, 영으로써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은 증명되지 아니한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중심은 증명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과학적 증명이 없어도 얼마든지 믿게 되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믿음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2)고 말합니다. 선진(조상)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바라는 것,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증거를 얻었습니다. 선진들이 바라면서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선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서 약속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선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어떤 증거물이 있었습니까? 선진들이 무슨 증명을 얻은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있었을 뿐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어떤 증거물을 보이심으로써 믿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믿음이 선진들에게는 약속의 증거물이었고, 믿음에 의해 약속을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는 자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믿음에 의해서 말입니다.

마지막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3)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는 것을 목격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어떤 증거도 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증거인 것입니까?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지 않는 이유는 뻔합니다. 눈으로 본적이 없고,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살아 계시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종종 조롱하듯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디 한번 보여 봐라는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대해 난감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즉 믿음 자체가 증거로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고 확인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10장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9)는 말씀과 연결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 믿음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고 또 증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고, 증거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될 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남에게 보여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믿음은 나를 높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의 실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것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뜻합니다. 이 우주 만물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타난 것, 즉 세상에 존재하는 뭔가를 이용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직 말씀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입니다. 나타난 것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증거로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신자는 보이는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함이 부족하다고 해서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세상에 대해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갖 과학을 다 동원한 하나님의 창조설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아예 믿음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과 세상의 과학은 통할 수도 없고 또 과학으로도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믿음이 없는 세상은 믿음이 있는 세계와 단절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으로 증거되고,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믿음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증거하고 증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보이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말씀의 실상으로 또 증거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선물로 주신 믿음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위를 통해서 확신을 갖고자 하고, 어떤 신비한 사건들을 통해 확인을 하려고 합니다. 또한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오히려 보이는 나의 행동을 신뢰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 예수님이 하신 일만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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