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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으로 사라는

본문 / 11:11-12

 

1. 믿음의 주체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세상과 우리들의 이해는 그 출발부터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신을 향한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즉 내가 신을 믿기로 작정했으면 그때부터 믿음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믿음의 주체는 인간인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믿음의 주체를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주체로서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인간은 스스로 고민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제 믿음을 가졌으니 믿음을 가진 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치면서도 선물을 받은 자의 모습으로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믿음의 주체를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임이 분명하지만, 선물을 받았으니 받은 선물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포기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믿음의 행위로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일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지되지 않고 성취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우리들에게는 아마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믿음을 내가 소유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을 소유했기에 믿음을 소유한 자로서 어떤 증거가 있어야만 하고 또 그 증거는 믿음의 행위로 드러난다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나 우리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고질적인 생각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말씀을 통해 바르게 믿음이 정립 되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도저히 꺾을 수 없는 인간의 고집을 꺾으시고 기어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이 내포된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사라를 통해 보는 믿음

오늘 본문을 보면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11:11-12)고 말합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여성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라가 나이 들어 단산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잉태하는 힘을 얻게 된 것이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기 때문인 것으로 말씀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 사라가 잉태한 것을, 마치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 때문인 것으로 말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믿음이 바로 이런 내용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적이 이루어지고 또 원하는 일이 되어졌다는 이것을 믿음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좋은 믿음을 갖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그 좋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는 속셈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연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15장에 보면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4-6)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믿음의 일이란 죽은 자와 방불한, 즉 죽은 자와 같은 몸에서 후손이 나와서 하늘과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진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부르심 안에 들어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신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이를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7장을 보면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17:15-17)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 말씀하시고,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이 웃었다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믿어서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는데, 창세기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나서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자식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라의 상태를 생각하고 불가능한 일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창세기 18장에 보면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8:10-12)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보면 하나님이 자녀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하심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웃었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이기에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라에게는 약속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자신들의 시각으로 자신들의 상태를 보니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사라가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기에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말씀하기에 이상한 것입니다.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다는 것은 약속하신 분의 신실하심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라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신실한 분임을 믿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2절도 보면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11:12)고 말합니다. 이 구절 역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 즉 사라로 말미암아 많은 후손이 있게 된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분명 사라는 창세기를 보면 믿음이 없었던 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보면 마치 사라의 믿음으로 인해 아이를 낳게 된 것처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의 사라에 대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음에 대한 우리의 오해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믿음을 가졌으면 그 믿음으로 살아야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을 말할 때의 기준이 과연 무엇입니까? 복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을 말할 때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인간의 행위에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으로 살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의 경우는 다릅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후손에 대한 약속에 대하여 분명히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무엇을 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하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1장에 보면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21:1-7)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십니다. 인간의 불신앙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대로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21:1-2)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라로 하여금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 자기에게 일어난 것을 보게 하여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신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히브리서는 부르심을 입고 그 부르심에 순종한 믿음의 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열심을 근거로 해서 복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복은 결국 경쟁과 비교를 양산할 뿐인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을 신앙이 좋은 증거물로 여기기에 결국 믿음의 목적과 이유를 복에 집중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은 나 자신의 실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나 자신의 실체를 바라본다는 것은 나 자신이 여호와의 복에 거할 자격이 없는 나를 알게 하고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하신 복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굴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붙드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약속 또한 신뢰하지 않고 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결국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선물로 받은 그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는 그런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나은 아들의 이름을 웃음이라는 의미의 이삭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 웃음의 의미는 기쁨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앙의 내용이 담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둘 다 믿지 못하고 웃었음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 이삭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들의 실체를 절대로 놓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약하신 하나님을 자신들의 환경을 바라봄으로 믿지 못한 불신앙의 실체를 아마도 이삭의 이름을 부르는 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열심히 믿었다라고 말하고 싶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우리 스스로를 생각할 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의 삶이 과연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삶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 중 누구도 라고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일 뿐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이러한 고백으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세계

사라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라를 믿음의 세계로 불러들이셨기 때문에 믿지 못한 사라가 잉태하는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라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 안에 있다는 것 때문에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이 제대로 안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신자가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의 이야기는 그러한 말을 부정합니다. 사라가 믿음이 없어서 아이가 잉태되지 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이를 잉태하게 하실 뜻을 세우셨습니다. 그 뜻은 사라의 믿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사라의 반응과 관계없이 오직 그 약속과 뜻대로 계획하신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신자는 바로 이런 믿음의 세계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의 세계에 있는 신자라면 믿음으로 살면 복 받겠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믿음이 있다면 열심을 내야지라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열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자신의 행위에 구분을 두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라의 잉태는 하나님의 약속과 뜻에 의해 복을 누리는 세계로 부름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복을 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네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선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적이 없는 자에게 그러한 말씀을 하시니 은혜와 사랑에 부끄럽고 고마울 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무익한 종인 신자의 복인 것입니다. 오늘도 이 복을 누리며 범사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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