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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본문 / 16:15-18

 

 

1. 믿음 없는 자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과 그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지난 주 본문인 11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16:11)고 하며, 13절에도 보면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16:13)고 합니다.

그래서 14절에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16:14)고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의 관계적인 문제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제자들보다 낫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는 절대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던 자들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을 목격하고 체험을 한 사람들이고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제자들이 직접 보고 경험했던 모든 기적의 사건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는 아무 효과가 없었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여전히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적을 믿음의 표적으로 말씀하고 있고, 믿음으로 살면 그런 표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기적을 보여주시고 경험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실패한 것이 제자들인데 또 다시 기적의 사건을 믿음의 표적으로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인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7-18)고 말씀합니다. 이 표적들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과 동일한 수준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뱀을 집거나 독을 마시는 기적을 행하지는 않으셨지만 특별히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과 다른 수준으로 구별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동일한 기적인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이런 표적이 따라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런 기적이 믿음의 표적으로 자신에게 따라준다면 자신의 믿음을 과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야 말로 참되다고 큰소리칠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은 또 그러한 믿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몸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을 믿음의 표적으로 말씀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믿는 사람에게는 본문에서 말씀한 기적이 표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뱀을 집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여 믿음의 표적을 보여주겠노라며 실제 독을 마신 일도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할 것입니다.

 

2. 표적이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표적은 기적과 동일한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기적은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일이 행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자를 고치거나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그 모든 일들이 기적이라는 말에 해당됩니다. 물론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을 표적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단순한 기적의 사건들이 아니라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일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표적은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표적은 겉으로 드러난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내포하고 있고 보여주고 있는 그 중심적인 내용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표적보다는 기적 그 자체만을 찾고 즐기려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도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려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6:26-27)고 합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사건은 표적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또 하늘 양식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들의 배부름은 오직 예수님으로 만족할 수 있음을 말씀하시려는 표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육신의 배를 채워줄 기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썩을 양식이고, 하늘의 양식은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는 결과와 사건 자체에 눈을 두지 말고, 그러한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그 중심을 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적이 아닌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이 들면 병들었다는 흔적이 몸에 나타나게 됩니다. 병이 깊어져서 그 흔적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병원을 찾게 됩니다. 속이 병들었음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여 의원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표적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죽을 자가 아닌 죽은 자로 말합니다. 인간이 죽었다면 그에 따른 표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표적으로 자신이 죽은 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죽은 자라는 표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로마서 1장과 2장에 보면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1:20-2:2)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죽었다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알지 못하고 땅엣 것에 모든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은 죽었다는 표적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을 죽은 자의 표적으로 보기는커녕 오히려 극히 정상적인 삶으로 간주합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보다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을 나약한 것으로 평가해 버립니다. 이것이 죽었다는 표적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살았다는 표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인간이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을 진정으로 죽은 자의 표적으로 인정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표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길 때 그것이 곧 살았다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이 오심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한 신자를 산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내게 살아있는 자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명이 함께 한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산자는 곧 그리스도를 믿는 자인데, 이 믿음이 있는 자들은 오늘 본문과 같은 표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한 표적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그러한 기적도 행하게 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뜻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모두 기적이 나타나야 할 것이고, 거기에는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믿는 자의 표적

그러면 예수님에 의해서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이 표적들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오심으로 살아난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믿음에 의해서 귀신이 쫓겨 나가는 표적은, 믿음이 신자를 귀신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와에게 나타난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원하심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 말씀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지 못하면 자신을 위해 선악과를 따먹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가치보다는 자신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욕심으로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귀신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내용을 출애굽기로 보면, 이스라엘은 몸은 홍해를 건너(세례를 받고) 출애굽은 하였지만 그래서 애굽의 다스림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여전히 애굽적 사고방식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만든 금송아지입니다.

이 금송아지는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32:1)고 하여 자신들을 위한 신입니다. 비록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32:4)라고 하며 또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32:5)고 선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금송아지는 우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비록 몸은 출애굽 했을지라도 결국 이스라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여전히 애굽적 사고방식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으로서,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그 예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귀신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신이 쫓겨 가는 것은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내가 존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더 존귀함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한 표적입니다.

새 방언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말을 뜻합니다. 방언은 아무나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천국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3:10)라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3:11)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의 대한 이야기는 다 듣고 싶다고 듣는 게 아닙니다. 듣는 것까지도 허락의 문제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자들에게만 들려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세상이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비밀을 듣게도 하고 말하게도 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천국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주어짐으로써 가능한 표적인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것도 믿음의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셨던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짊어지고 죽으실 분임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곧 병든 자, 즉 죄와 저주에 갇힌 자들이 고침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의 육신을 도와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죄와 저주에 갇힌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만을 증거 하게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표적입니다.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 것도 신자는 세상 그 무엇으로도 해를 입지 않을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은 인간의 육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신자는 이미 그 영혼이 생명에 속했습니다. 육신이 죽는다고 해도 죽는 자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즉 신자의 생명을 세상 그 무엇도 훼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합니다. 죽음조차도 신자를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이런 신자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립니다. 뱀을 집어 올립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러한 신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증거 되며 하나님의 잃어버린 백성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살아계심으로써 나타나는 표적들입니다.

때문에 믿음이 있는 신자는 항상 자기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증거 하는 증거물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따르는 표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허락 받은 자들로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나타납니다. 눈에 보이는 사역이 아닌 눈에 보이지는 아니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분명한 증거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부름 받았는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산 자로서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주의 표적으로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 드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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