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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기원

본문 / 1:11-24

 

 

1. 주를 찾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우리를 절망케 해서 하나님을 찾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꼭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꼭 맞는 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였다고 해서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절망하여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살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면 바울은 자신에게 절망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자기 확신에 가득하였는지는 빌립보서에 보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6)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바울은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런 바울과 같이 자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서기관들이며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란 자신들만은 천국에 들어갈 정도로 완벽하게 율법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자신들의 탐심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이었음이 예수님 앞에서 드러났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16-30)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이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더 부족하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온전 하려고 하면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청년에게는 그에게 맡겨진 많은 재물이 주를 따르는 일에 근심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탐심이 그로 하여금 주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렇게 돌아서는 그를 보고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쉽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놀라서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느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즉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바울을 통하여 보려고 합니다.

 

2. 바울의 받은 은혜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 바울 앞에 갑자기 유대인들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를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이단들이 있을 수가 없다고 여겼기에 이런 사람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알고 이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아주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서도 주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메섹에 사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잡아오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사도행전 26(1-23)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사도 바울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합니다. 대낮에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자 놀라서 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같이 가던 자들은 천둥소리를 들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고 합니다. 이때 사울이 주여 당신이 누구시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울을 부르신 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눈이 멀게 되어 아나니아라는 선지자를 만나 안수를 받고 눈이 뜨여졌습니다. 이런 내용을 아주 간략하여 오늘 본문에서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부터 보면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12)고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로 바울을 폄하한 것에 대하여 자신의 복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많은 순회 전도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그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6절부터 보면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1:16-22)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바울 속에 예수님을 나타내셨을 때에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바울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왔는데 그 기간이 약 삼 년이 걸린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삼년의 기간 동안 바울은 이곳으로 전도하러 갔다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전도도 하였겠지만 이 기간은 바울이 받은 그 복음에 대한 확증의 기간이라고 여겨집니다. 모든 구약의 말씀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지를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배운 기간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삼년이 지나고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를 방문하고 십오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복음은 이런 사도들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만나고 삼년 동안 아라비아 등지에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그렇게 확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며 또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속에 나타내셨기에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정도로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없는지를 알게 하려 하여 사람들에게 배우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어느 정도로 자신이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사람인지를 이어지는 말씀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13절부터 보면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1:13-14)라고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사도행전 26장의 말씀처럼 자신은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멸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로 피로 값을 주고 구속하신 성도들을 말합니다. 얼마나 열심인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열심이었으나 그 열심으로 예수님을 박해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15절부터 보면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15-16)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였다고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창세전에 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이 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기에 자신에게 원인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살인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나타내신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바울은 이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일하심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있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어머니 태로부터 작정하셨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성령이 충만하게 태어나게 하시고 또 착하고 바르게 살다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전도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서 전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직업이 주로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의사나 판사 또는 변호사나 고위직 공무원, 기업체 사장이 되어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직업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얼마나 수없이 많은 경쟁을 하면서 남을 누르고 이겨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런 자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니 목사들이 이렇게 성공하였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자식들이 이렇게 복을 받는다고 하면 부모들이 목숨을 걸 정도입니다. 그런 간증들을 위하여 그 위치에 있는 자들을 간증이라는 미명 아래 강단위에 세웁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자녀들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우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이러한 세상의 행사들을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4절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1:4)라고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려고 하셨다는 하였습니다.

또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7:7)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어떻게 세상 사람과 똑같이 악한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신앙이라고 믿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렇기에 그것을 믿음이라고 신앙이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다시 바울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또 창세전에 택한 자인데 왜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까지 하도록 내버려두셨다가 이제 불러서 자신의 증인으로 삼으시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선하고 의롭다고 여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라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악임을 드러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바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결과가 결국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악의 실체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바울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에 보면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2-17)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으니 바울 같은 죄인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그런 죄인인 바울을 부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풍성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어떤 본이 되는 것입니까? 나 같은 죄인중의 괴수도 예수님은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피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런 죄인도 용서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7)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오늘 본문 23절부터 보면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1:23-24)고 하는 것입니다.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하니 이것은 결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바꾸어 놓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인하여 바꾸어 놓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교회로 모였는데 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이 아니라 교회 성장지상주의의 말을 듣거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세상의 복을 받는다는 그런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렇다고 복음을 듣는다고 자동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복음으로 말미암은 믿음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주의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께서 복음을 들을 귀를 주셔야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가 들은 살아 있는 말씀이, 그 능력이 들은 자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전하는 이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듣는 이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되어지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며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각자의 삶의 모습이 다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간섭하셔서 이곳까지 왔는지 다 모릅니다. 각자가 여러 모양으로 열심을 내다가 좌절하고 절망한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 것입니다.

또 인터넷으로만 설교를 듣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듣는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 할까를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이 교회에 와 보면 다른 곳이랑 별반 다를 것 없이 다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이곳도 절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절망하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만 뚜렷하게 보이는 죄인중의 괴수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지금도 일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아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일하심을 통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오직 주의 은혜만 크게 자리 잡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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