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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이 오기 전과 믿음이 온 후

본문 /  갈 3:23-29

 

1. 믿음에 대한 오해

믿음이 있다는 것과 믿음이 없는 것의 차이에 대해 우리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믿음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인간의 행함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교회는 행함을 강조하며 그 대표적 말씀이 야고보서 2장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신자들에게 있어 행함은 믿음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런 신앙의 현실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행함에 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그런데 과연 야고보서의 이 말씀의 의미가 그런 뜻인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14절부터 보면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2:14-16)라고 합니다.

즉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자매에게 쓸 것을 주지 않으면서 마치 그들을 걱정하는 듯한 말만 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살아있는 믿음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쓸 것을 주는 것이겠습니까그런데 야고보는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행함에 대해 또 다른 예를 들고 있습니다.

20절부터 보면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20-21)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24절에서는 자기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준 라합의 예를 들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세 가지의 행함즉 독자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돕는 라합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에게 쓸 것을 주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해 말합니다야고보가 언급한 이 세 가지 행함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죽은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의 서두를 보면 가난한 자와 부자를 차별하여 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을 죄를 범하는 것으로 말합니다그리고 13절에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2:13)는 말을 합니다.

야고보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후에 긍휼을 말하는 것은 사람의 차별이 곧 긍휼과 연관된 것임을 의미합니다그리고 긍휼에 대해 말한 뒤에 세 가지 행함을 이야기한 것 역시 세 가지의 행함이 긍휼과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그러나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단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성경은 윤리와 도덕의 문제로 전락되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긍휼이 없는 것입니다이것이 복음의 시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외적인 조건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신자라면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믿음의 행함은 예수님의 긍휼로 형제를 대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알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긍휼이 없는 그 어떤 행함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행함이 아니며 또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일 뿐이라는 것이 야고보의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인간적 동정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긍휼로 대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긍휼은 자기의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어 놓게 합니다그래서 헐벗은 자에게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쓸 것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동정이 아니라 긍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로 인해 드러난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경외였습니다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수양을 준비하셨고이를 통해 하나님은 죽어야 할 우리 대신 제물을 준비하셨음을 보여주십니다그 제물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인 것입니다이처럼 신자가 경외하고 존귀하게 여겨 할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긍휼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도와준 것도 인간적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셨고 그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릴 것을 믿은 믿음의 행동입니다그 라합의 믿음이 여호수아 2장에 12.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2:12-13)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이처럼 야고보가 말한 세 가지 행함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야고보가 말한 행함은 긍휼을 의미하며 따라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 믿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신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면 그로부터는 긍휼의 모습이 증거될 것입니다그래서 야고보서의 말씀으로 행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죽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같은 불신앙인 것입니다.

 

2. 믿음이 오기 전

오늘 말씀은 믿음이 오기 전과 믿음이 온 후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믿음이 오기 전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승천과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기 이전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도 믿음은 있었습니다그 믿음이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은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인데 그 후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구약에서는 아직 그림자로 주어졌기에 분명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이 오기 전이란 구약 전체를 율법이라는 틀에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오늘 본문 앞의 22절 다시 한 번 보면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3:22)고 합니다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다고 합니다죄 아래에 가두는 그 역할을 율법이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두어 두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더욱 확실한 이해를 위하여 로마서 11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11:32)라고 합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와 불순종아래 가두는 역할입니다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자신이 죄 아래 갇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서 받게 되었기에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고 해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그 의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오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왜 교회로 나오는 것입니까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찾아오는 것입니까아니면 세상살이가 힘이 들어서 생존의 조건들을 충족시키거나 위로받고 사랑받기 위하여 오는 것입니까그것도 아니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3:23)고 합니다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즉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 있는 22절의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3:22)고 하는 말씀과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22절에는 ‘죄 아래 두었다’고 하는데, 23절에서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3절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는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3:23/표준새번역)라고 합니다결국 율법은 사람들을 매어버리고 가두어 두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24절에서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3:24)고 하여 ‘초등교사’라고 말씀합니다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초등교사가 아니라 초등학교에 데리고 가고 또 데려 오고하는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학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수백 년 전에 그리스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이들의 글에서 초등(몽학)선생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이중에 플라톤의 법률들이라는 글에서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양이나 다른 변통성 없는 피조물이 목자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이 아이들은 파이다고곤(초등선생들없이 살수 없으며노예는 주인 없이 살수 없다모든 길들여지지 않은 피조물들 중에 아이가 가장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들보다 아이가 아직 억제되지 않는 이성이라는 원천을 소유하는 한배은망덕하고교활하며무례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아이에게는 말하자면 여러 가지 파이다고고이서(초등선생들)에 메여져야한다.고 합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몽학선생들은 아직 길들여지지 아니한 이성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맡아서 다루는 자를 초등(몽학)선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쓴 바울은 이러한 철학의 배경에서 성장한 사람입니다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초등(몽학)선생을 율법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3:24)고 합니다율법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

그러므로 율법이란 우리를 다 가두어 두고 매어두는 것입니다그리스도가 오실 때 까지 묶어두는 것입니다어느 인간도 스스로의 율법을 벗어나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다 이 법아래 갇혀있습니다유대인들은 구체적인 율법이 주어졌지만이방인들은 양심이 율법의 기능을 대신합니다.

법이나 양심은 스스로 자신을 고소하고 스스로 변호하는 역할을 합니다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의 모든 인간이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이런 모습이 죄인 줄도 모르고 율법을 주면 율법으로 스스로 죄냐 아니냐를 따지게 됩니다이방인은 양심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 보면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2:12-16)고 합니다.

율법이나 양심이나 그 하는 역할은 서로 고발하고 변명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결국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다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한 해를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행위를 점검해 봅니다예배에 빠진 것헌금하지 않은 것전도 하지 않는 것봉사 하지 않은 것이런 식으로 하면 얼마든지 나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변명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복음이니은혜니 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다 도망을 칩니다그것이 바로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부분에 찝찝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을 합니까송구영신 예배 때 한꺼번에 모아서 해결함으로 때우려 하는 것입니다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송구영신 예배도 그런 자신의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시간이 됩니다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런 모습이라면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 좀 넉넉하게 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습니다그러면 과연 교회 다니나 다니지 않으나 무엇이 다른 것이겠습니까?

그러니 율법아래 있든지 아니면 율법이 없이 양심으로 살든지 간에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고발하고 또 스스로 변호하는 선악과를 따 먹은 죄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의 법으로 선과 악을 조율하면서 살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은 아직 믿음이 오기 전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믿음이 오기 전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알 것입니다.

 

3. 믿음이 온 후에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3:25)라고 합니다그런데 믿음이 온 후로는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도 보았지만 초등교사의 역할을 그 집안의 종이 그 일을 담당합니다그런데 믿음이 오고 나면 이제 종에게 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었든지양심의 법으로 살았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온 후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율법이라는 초등선생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 보면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20-23)고 합니다.

여기 보면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아직 세상의 초등학문에 있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음이 친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에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앞에서 보았던 골로새서 2장의 앞부분을 보면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2:1-19)고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다 들어있습니다그러므로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이런 것은 사람의 전통이나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그렇기에 구약의 율법 안에서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다 그림자로서 그 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제 믿음이 온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3:26)라고 합니다믿음이 온 후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이제는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4. 신자의 삶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된 것입니까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3:27)고 합니다여기서 말하는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것을 말합니다이러한 세례가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로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마치 지금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수용소에 갇히고 총살을 당하기까지 합니다.이런 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예수 믿는 그 순간 세례를 주어도 됩니다그런데 남한에서는 이런 핍박이 없습니다그래서 세례를 받는다고 누가 핍박하지 않으니 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는지를 말씀으로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이 정말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게 되며 동시에 예수님이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그런 자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마음으로 믿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게 됩니다사람들 앞에서도 시인을 하게 됩니다또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이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3장에 보면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1-14)고 합니다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은 이런 말씀에 아멘하게 됩니다이런 말씀이 성도에게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고 합니다.

믿음이 온 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일체의 차별이 없습니다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합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처럼 여깁니다애완용개가 아니라 부정하게 취급되는 더러운 개와 같이 여기는 이방인을 형제라고 하게 됩니다종은 말하는 짐승으로 여기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런 종이 주인과 하나라고 합니다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다고 하는 이런 혁명적인 발언이 복음 안에 들어있습니다유대인 남자의 감사목록 중에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할 정도로 여자가 천대받았습니다그러므로 복음은 모든 인간관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것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차이를 즐기면서 살아갑니다특히 여자들은 자기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들 합니다자기만의 개성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이러합니다이런 자들이 교회로 모인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내가 너보다 예수 잘 믿는 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입니다그래서 온갖 경쟁이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성경읽기성경퀴즈암송대회찬양대회기도오래하기,금식 오래하기 등등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초등학문입니다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지혜롭게 보이지만 이런 모습이 육의 모습인 것입니다그런데 육을 입고 사는 인생은 이런 육체 쫓는 것을 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3:29)고 합니다이제 믿음이 온 후로는 나의 것이라는 것이 없어졌습니다.물론 아직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가지만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고 깨어지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다 무너져 내려야만 합니다그리고 그 텅 빈 자리아무 것도 없는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없는 데서 있게 되고 죽은 데서 살아나는 방식으로 세워집니다이것이 바로 믿음이 온 후에 예수 믿는 자의 모습이며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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