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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때가 차매 종에서 아들로

본문 / 4: 1- 7

 

율법과 십자가

오늘 본문의 설교제목을 두 가지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는 4절에 있는 때가 차매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세전의 언약의 때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7절에 있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입니다. 종에서 아들로는 3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세상의 초등학문인 율법아래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가지고 또 말하는 것이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4:1-3)고 합니다.

여기 1절에 보면 내가 또 말하노니라고 합니다. 중요하기에 또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잘 잊어버립니다.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늘 반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원수는 돌에 새겨두고 은혜는 물에 새기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인생들이라서 하나님의 은혜조차 늘 잊어먹어 버리고 자기의 행함만 챙겨내는 이런 육체의 죄 된 본성들이 있기에 바울은 지금 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듭 말하는 것이 안전하기에 바울은 거듭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1-3)고 합니다.

여기 몸을 상해하는 일을 예전 성경에는 손할례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그러니까 바울 사도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향하여 개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할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곧 할례파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에 보면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자기 아들이 자라기까지 후견인과 청지기에게 맡겨둡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성년이 되면 후견인과 청지기가 아들을 간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들이 된 자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모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약 1400년이 됩니다.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모세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 믿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서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언약이 430년 후에 받은 모세 율법이 무효화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왜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알게 하시고 보여주시는 기간이 1400년이 걸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받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은 이방인보다 더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신이 비록 우상이기는 하지만 배반하지 않았는데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항상 배반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율법으로 그들의 죄를 다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더한 죄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때가 다 찼습니다.

 

2. 때가 차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4:4)이라고 합니다. 때가 차매를 바로 앞에서 율법의 때로부터 1400년이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에 보면 또 하나의 때가 나옵니다.

다니엘서 2장을 보시면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2:1)고 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으로 말미암아 잠을 이루지 멋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꾼 꿈을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느부갓네살이 술사들을 불러서 잊어버린 자기의 꿈을 알게 하고 그 꿈도 해석하라고 합니다.

문제는 꿈을 꾼 사람이 이야기해야 꿈에 대해 해석을 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꿈을 알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술사들이 사람의 육체와 함께 살지 않는 신들 외에는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평소에 꿈을 꾸고 해석하는 것들이 가짜라고 하면서 술사들을 다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다니엘이 그 꿈을 알려주고 해석하면서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그 정한 때를 이야기합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2:32-35)고 합니다.

다니엘이 해석한 이 신상은 바벨론, 매데 바사, 헬라, 로마제국을 보여줍니다. 순금으로 된 우상의 머리는 느부갓네살이 다스리고 있는 바벨론 왕국(B.C. 605)이고, 은으로 된 가슴과 두 팔은 매대 바사라 불려지는 페르시아 제국(B.C. 539-331)을 의미하고,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세계를 다스리게 될 헬라 제국(B.C. 331- A.D. 476), 철로 된 다리는 철같이 강한 왕국인 로마 제국(B.C. 63 - A.D. 476)을 의미합니다.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으로 되어진 발은 왕국의 분열 즉, 로마 제국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나라들을(A.D. 476 현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아니한 돌이 신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리고 그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다는 그 때가 바로 로마시대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역사 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역사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또한 마감하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여자 아래에 나게 하셨다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와 동등한 영광의 자리를 버려두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자리고 오신 것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장에 보면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1:38)고 합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났다는 말씀을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1장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나옵니다. 여기서는 모세가 빠지는데 모세는 쌍방언약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과 다윗 언약도 일방적인 은혜언약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이들이 받은 은혜 언약으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묵시적인 인물이 역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에게서 나신 것은 창세기 315절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과 이사야 714절의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는 것도 다 포함을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있는 족보 속에서 나온 여인은 다말, 라합, , 우리야의 아내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어떤 여인들입니까? 시아버지와 며느리 다말입니다. 기생 라합입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계집종이라고 말한 처녀 마리아입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말씀은 완전히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모든 언약을 완성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율법을 제정하시고 율법을 주신 분이 율법 아래에 오신 것입니다. 율법 아래 오셨다는 것은 죄 아래 오셨다는 말입니다. 율법이 사람을 죄 아래 가두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아래 오셨기에 죄인이 받아야 하는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신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지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원래 뜻과 의미를 완벽하게 지켜내신 것입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셨기에 예수님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아래 오셔서 율법을 다 완성하신 분이 왜 저주 받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5)고 합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즉 죄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아래에 오신 것은 율법의 의로는 어느 누구도 의에 이를 수가 없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죄인의 자리에 오셔서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에게 죄를 담당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긴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내시기 위한 속량입니다. 속량이란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자기 피로 구속하여 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종에서 아들로 만들어내시기 위하여 때가 차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명분을 얻은 자들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만 보내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아들의 영을 또한 보내신 것입니다.

그 아들의 영, 즉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증거 하시면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모든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옮기셨고 그 영을 우리에게 보내어주심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4-17)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들의 특징이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우리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4:7)고 합니다. 우리가 종인지 아들인지 구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예수님만이 아빠 아버지로 불렀던 그 하나님을 우리도 부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 선교원에서 밥 먹기 전에 가르쳐준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과는 다릅니다. 선교원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이것은 성령으로 고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본인과 하나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형식이 아니라 정말 혼자 계실 때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십니까? 혼자 계실 때도 예수님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제부터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이기에 아들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3. 자녀 되어 종으로 살기

이렇게 종에서 아들이 된 자들은 다시는 사람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율법이나 세상의 초등학문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법에 종속되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아들로서 섬기게 됩니다. 종으로 섬기는 것은 벌이 무서워서 섬기는 것입니다. 때로는 종을 분발시키기 위하여 보상을 준다고 하면 그것을 바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11:20)라고 합니다. 이단의 집단에서만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선교단체와 교회라는 곳에서도 여러 가지 훈련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의 종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살면서도 본인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종에서 아들이 된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섬기는지를 성경을 통하여 알고 보아야만 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6:5-8)고 합니다. 세상의 종은 눈가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부름을 받은 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세상의 상전까지도 주께 하듯이 합니다. 이것이 종이 아니라 아들로서 섬기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이든 교회 일이든 눈가림만 하는 것은 아직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이 섬기는 사람이 아들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아들의 영을 받은 자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2)고 합니다. 여기 보면 죄에서 해방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전7:22)고 합니다. 주안에서 부름을 받는 자는 종이라도 자유자며, 자유자라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도 보면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고 합니다.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된 자로서 종처럼 섬기는 모습이 아들로 부름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 형제들의 종이 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 종에서 아들로 부름을 받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인만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워서 하는 자랑이 아니라 왜 그를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하는 자랑인 것입니다. 이 자랑이 우리에게도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가 전세로 살다가 집을 하나 장만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평소에는 자기 방도 청소도 하지 않던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걸레를 들고 기쁨으로 이곳저곳을 열심히 청소를 하더랍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자신이 외동딸이니 그 집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종에서 아들이 되었다면 종이 아니라 아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 아들에게 하신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15:31-32) 이제 자녀된 자로서의 마땅한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의 이 은혜가 우리에게 항상 가득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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