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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찌하여 그때로 가느냐

본문 / 갈 4: 8-11

 

1. 그 때와 이제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갈4:8-9)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때’‘이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8절의 말씀을 보면 그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습니다. 이런 우상숭배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로마서 1장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모든 창조물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만 범죄 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인간들의 지혜가 기껏 신이라고 떠받드는 것들이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의 형상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세상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 로마서 1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라고 합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을 신으로 섬기고 있으니 이런 세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은 당연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대로 내버려 두시면 끝까지 우상만 쫓다가 함께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4-6)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예수님을 괜히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 세상의 신이 복음을 받아들여지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으로 하면 ‘그때’에 해당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 중에 “어두운 데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심으로” 복음을 듣고 보게 해주신 이들을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으로 하면 ‘이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들은 결코 ‘내가 믿었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표현을 에베소서 2장에서 보면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1-8)고 합니다.

여기도 보면 2절에 ‘그 때에’라고 또 3절에 ‘전에는’이라고 표현함으로 4절부터 있는 ‘지금’과는 아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곧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때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로 가면서도 전혀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더욱 나은 사람이 되기만을 위하여 달려갔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본질상 진노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인 이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자기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인 양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과연 ‘그때’‘지금’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교회로 다니고 있지만 과연 우리 안에 ‘그때’‘지금’이 구별이 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여전히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면 과연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보내셨고 또한 성령까지 보내셨는데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때’‘지금’이 분명히 다릅니다. 전에는 초등학문에 종노릇 하였지만 이제는 참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아신바 된 자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4:9)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아십니까? 물론 대부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도 있으니 이런 말씀도 알고서 믿는다고 시인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아신바 된 것입니까? 아니면 학습된 지식인 것입니까?

마태복음 7장에 보면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15-27)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오지만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합니다. 그들의 열매를 보면 그들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입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누가 보아도 능력 있는 주의 종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런 자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하신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을 주님께서 모르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근거는 바로 반석이신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이 능력을 주어도 얼마든지 표적과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율법지킴과 자신의 신비체험과 자신의 영적인 지식들로 무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능력 있는 주의 종이나 된 것처럼 행사하는 이들이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분이심을 믿지 않는 자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신 자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는 자들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누구인지 누가복음 7장에 보면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36-50)고 합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합니다. 이 때 동네사람들이 다 아는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이 곳으로 말합니다.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더러운 죄인일 줄 알았을 것이고 그러면 여자가 만지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묻습니다. 500데나리온 빚진 자와 50데나리온 빚진 자가 둘 다 갚은 능력이 없어서 둘 다 탕감을 받았다면 누가 더 탕감해 준 자를 사랑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당연히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죄인인 여인을 비교하면서 말씀합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은 의인이지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이 죄 많은 여인임을 알고 또 그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에 자신의 그 많은 죄를 용서하신 주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핵심 단어는 죄, 용서, 사랑입니다. 정말 죄를 알고 용서받은 사람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까닭인 것입니다. 그것이 용서 받은 우리이어야만 하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4:9)고 책망을 합니다. 죄와 용서와 사랑을 알고 받은 자가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나타난 것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는 행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8-29)고 합니다.

새 언약이 완성되고 나서는 모세의 법으로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임을 믿지 않는 모든 율법주의, 금욕주의, 신비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가 다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3. 우리의 남은 사역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갈4:10)라고 합니다.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종노릇 하는 모습이 할례만이 아니라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입니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란 율법에서 지키라고 한 모든 날짜에 대한 것들입니다. 안식일과 월삭과 삼대절기 등을 지키는 것을 초등학문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제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에 그림자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것이 할례와 여러 가지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이런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절기가 바로 12월 25일로 지키는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또 초대교회 때 성탄절이라는 것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성경에도 없고 초대교회 때도 없는 성탄절을 왜 12월 25일로 지키는 것입니까?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가 로마에서 공인을 하고 국교를 삼았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는 다 기독교로 개종시켜나갑니다. 속은 바뀌지 않았는데 껍데기라도 바꾸기 위하여 온갖 이방의 종교들을 적당하게 색칠만하여 기독교화 한 것입니다. 그런 일들 중의 하나가 로마시대당시의 가장 큰 축제의 날인 태양신을 섬기는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한 날로 정하여 함께 섞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지키라고 하지도 않았고 어떤 사도들도 지키라고 하지 않았던 성탄절을 지키면서 온갖 이교문화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성탄 트리와 장식들이 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이교풍습들입니다.

이런 가톨릭의 온갖 미신적인 것들을 타파하고 개혁한 것이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는 오직 성경이 개혁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없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타협하여 수용하여 들어와 있는지 우리가 놀랄 정도로 많습니다.

성탄절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교회의 절기들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송구영신, 여기다가 온갖 주일을 다 지키라고 합니다. 총회주일, 장애인주일, 총 전도주일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주일지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날과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그림자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 실체가 왔으니 그림자는 사라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날과 달과 절기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로마서 14장에 보면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5-8)라고 합니다.

모든 모임에 참여 할지 안할지의 또 무엇을 할지 안 할지는 누가 결정을 합니까?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하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주를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또 골로새서 2장에 보면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골2:13-23)고 합니.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절기와 초하루와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사 숭배,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는 이런 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십시오. 사람의 가르침과 명에서 돌이키십시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와 결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몸을 괴롭게 하는 일에 지혜롭게 보이지만 그것 자체가 육이기에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데도 조금도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전하여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3-26)고 합니다.

바로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전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 아닌 다른 모든 것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이것인 단지 성찬식을 행하라는 의미이기 보다는 성찬식 때의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세운 새 언약을 잊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으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몸과 피로 세운 새 언약을 주 오시는 그날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주어진 사역인 것입니다. 오늘도 충성 되이 여겨 그 사역자로 우리 모두가 부름 받았고 보냄 받았으니 은혜로 구원 받기 전의 그때가 아닌 은혜로 구원 받은 지금의 삶을 주안에서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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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 2023 6월 18일 / 요한계시록 16. (계 5:1-5)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 관리자 2023.06.18 3
655 2023 6월 11일 / 요한복음 6. (요1:29-34) 하나님의 어린양 관리자 2023.06.11 5
654 2023 11월 6일 / 요한계시록 15. (계4:10-11)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림 관리자 2023.06.11 3
653 2023 6월 4일 / 요한복음 5. (요 1:19-28) 세례 요한의 증언 관리자 2023.06.04 9
652 2023 6월 4일 / 요한계시록 14. (계4:5-9) 하늘 보좌 관리자 2023.06.04 3
651 2023 5월 28일 / 요한계시록 13. (계4:1-4) 열린 하늘문 관리자 2023.05.28 11
650 2023 5월 21일 / 요한복음 4. (요 1:14-18) 말씀이 육신 되어 관리자 2023.05.21 5
649 2023 5월 21일 / 요한계시록 12. (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관리자 2023.05.21 6
648 2023 5월 14일 / 요한계시록 11 (계3:7-13) 빌라델비아 교회 관리자 2023.05.14 10
647 2023 5월 7일 / 요한복음 3. (요 1: 9-13)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 관리자 2023.05.07 8
646 2023 5월 7일 / 요한계시록 10. (계 3:1-6) 사데 교회 관리자 2023.05.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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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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