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09,812
오늘 : 78
어제 : 286

페이지뷰

전체 : 78,733,065
오늘 : 325
어제 : 1,883
조회 수 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주의 몸과 주의 피

본문 / 막14:22-26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막14:22-26)

  

  

1. 참된 믿음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의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아들이신 예수님께 대신 담당시키시고 우리는 죄 없다고 선언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 같은 방식의 구원은 없습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구원의 기준은 언제나 인간입니다. 인간이 잘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신 죽게 하시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만 구원하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전혀 생각하고 예상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선을 행한 자는 구원 받고, 악을 행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선악기준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나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방식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구원의 방식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그 어떠한 선함도 개입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방식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시면 예수님이 구원의 길로 오셨다고 하더라도 그 예수님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는다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마음만 먹고 또 결단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이 생각하는 믿음은 인간의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인간들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인 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믿음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선하고 또 그 피가 우리의 의가 됨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의로운 것으로 또 선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믿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방식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내용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라’(막14:22)고 하십니다. 그리고 잔을 나눠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4)고 말씀합니다. 이 본문을 근거로 하여 오늘날 교회가 성만찬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만찬 의식을 세우시기 위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성만찬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만찬이라는 의식 자체가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14:25)고 말씀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눠주신 포도주, 즉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그 잔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 지금의 이 잔 외에 다른 잔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구원의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은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 다른 길의 구원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제자들에게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성만찬 의식을 행한다면 단지 ‘우리는 한 몸이다’라는 의미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의가 되어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의 은혜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 된 교회가 되었다고 믿는다면 이제부터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목적이 내 목적인 것이고, 그리스도의 꿈이 내 꿈이 되어진 자로 존재해야 함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피에 동참된 믿는 자들의 삶이며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힘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님의 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의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드리는 믿음은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자기 선행에서 확인하려고만 합니다. 선을 행하고 인격적으로 나아지는 소위 성화라는 것을 통해서 자기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선행이 없으면 참된 믿음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피가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선을 믿음의 내용으로 삼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선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믿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서는 믿음에 의한 선이 나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은 분명하게 다른 것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선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적인 행함을 말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요한복음 6장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선과 하나님의 일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선을 행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에 내리신 홍수 심판에서 오직 노아의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살아난 이유는 그들의 선함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세기 6장의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라는 내용 때문에 마치 노아가 의인으로 선하게 살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성경은 처음부터 인간의 행함에 구원의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이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의인이고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 없는 자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당시 죄악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들에 비해서 노아는 완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그런 삶도 노아의 인격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 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로 하여금 당시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도록 했던 것입니다. 노아는 구원의 근거가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주에서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받은 구원의 근거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홍수 심판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여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노아가족은 착한 사람으로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한 나머지는 악한 사람으로 여겨서 구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와 입지 못한 자로 구별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애굽의 장자 재앙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애굽의 장자 재앙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난 것은 어린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어린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지 않고는 하나님의 장자 재앙에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냥 악한 자일뿐임을 뜻합니다. 이 세상의 모두가 악한 자일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생각처럼 인간을 착하다 또는 악하다는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분은 선악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적 세상 방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구별은 어린양의 피가 기준입니다. 누구든 어린양의 피를 믿는 그가 생명을 얻을 자이고, 피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죽음을 받을 자라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분명한 원칙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어린양의 피를 믿는다는 것은 곧 생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교회를 출입하고 예배드리는 차원의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3. 신자의 믿음의 삶

그렇게 어린양의 피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인간이 죄를 범한 직후부터 세상에 선포됩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3장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로 여자의 후손을 세상에 나게 하실 것이고 또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은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으로 오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 하나하나가 인간의 선행을 밀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선행을 앞세워서 자신의 구원을 확고히 하려고 하지만 천국은 인간의 선행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우심만을 허락하는 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신자는 다만 예수님의 피를 믿을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할 뿐이기에 결국 인간은 이 믿음을 기준으로 하여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 또는 하지 않았는가를 떠나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 피만으로도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을 갖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의심은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심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자기 행함으로 믿음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이라면 항상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확인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항상 의심하고 또 그 의심을 지우려고 하는 자기 행함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렇기에 믿음은 항상 예수님의 몸과 피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나의 선과 나의 의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신자는 무엇을 해도 나는 무익한 종일뿐임을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이 은혜가 나를 살게 한다는 생각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믿는 것임을 알아 항상 주안에서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무엇이며 또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시려는 것입니까?

3.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4.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 하리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우리가 성만찬 때 반드시 가져야 할 믿음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사람들이 참 된 믿음의 내용을 거부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까?

7. 노아의 구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성경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8.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구별 방식에 대하여 우리와 성경의 시각 차이는 무엇입니까?

9. 믿는다고 하면서도 육으로 사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2 2023 6월 4일 / 요한계시록 14. (계4:5-9) 하늘 보좌 관리자 2023.06.04 8
651 2023 5월 28일 / 요한계시록 13. (계4:1-4) 열린 하늘문 관리자 2023.05.28 14
650 2023 5월 21일 / 요한복음 4. (요 1:14-18) 말씀이 육신 되어 관리자 2023.05.21 8
649 2023 5월 21일 / 요한계시록 12. (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관리자 2023.05.21 9
648 2023 5월 14일 / 요한계시록 11 (계3:7-13) 빌라델비아 교회 관리자 2023.05.14 13
647 2023 5월 7일 / 요한복음 3. (요 1: 9-13)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 관리자 2023.05.07 11
646 2023 5월 7일 / 요한계시록 10. (계 3:1-6) 사데 교회 관리자 2023.05.07 8
645 2023 4월 30일 / 요한계시록 9. (계2:18-29) 두아디라 교회 관리자 2023.05.07 10
644 2023 4월 23일 / 요한복음 2. (요 1: 6- 8) 증거하러 온 자 관리자 2023.04.23 13
643 2023 4월 23일 / 요한계시록 8. (계 2:12-17) 버가모 교회 관리자 2023.04.23 10
642 2023 4월 16일 / 요한복음 1. (요 1:1-5)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관리자 2023.04.16 14
641 2023 4월 16일 / 요한계시록 7. (계 2:8-11) 서머나 교회 관리자 2023.04.16 10
640 2023 4월 9일 / 부활주일 / (눅 24:1-12) 빈 무덤을 찾는 사람들 관리자 2023.04.09 9
639 2023 4월 2일 / 요한계시록 6. (계 2:1-7) 에베소 교회 관리자 2023.04.02 70
638 2023 3월 26일 / 요한계시록 5. (계 1:11-20)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관리자 2023.03.26 38
637 2023 3월 19일 / 요한계시록 4. (계 1:9-10) 주를 만나는 날(주의 날) 관리자 2023.03.19 120
636 2023 3월 12일 / 요한계시록 3. (계1:4-8) 교회다운 교회 관리자 2023.03.12 129
635 2023 3월 5일 / 요한계시록 1. (계 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관리자 2023.03.05 150
634 2023 2월 26일 / (딤전 3:9)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관리자 2023.02.26 144
633 2023 2월 19일 / (살후 2:13-15) 진리로 구원받게 하심 관리자 2023.02.22 8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