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09,560
오늘 : 112
어제 : 277

페이지뷰

전체 : 78,731,401
오늘 : 544
어제 : 1,79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베드로의 장담과 우리의 실체

본문 / 14:27-31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14:27-31)

  

  

1. 인간의 결단과 의지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신앙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계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신앙 중심에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중심에 계신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종교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신앙 중심에 내가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계시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을 말씀해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14:27)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29절에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14:29)는 말로 반응을 합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베드로는 잠시 후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에게 잡혀가고 그들에게 뺨을 맞고 종들에게 손바닥으로 맞는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즉 앞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려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는 호언장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결단과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결단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형편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할 수밖에 없고 또 꺾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결단대로 실행하며 살아 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의 의지와 사람의 결단까지 지배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사랑인 것입니다. 자기 사랑은 자신에게 어떤 해가 되는 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고, 지키고자하는 자기 보호본능을 일으킵니다. 어떤 일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또 그 결단대로 실천하기 위해 굳은 의지를 가진다고 해도 그 일이 자신에게 해로움이 예상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결국 그 일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의지가 약한 것이 문제이지 자기가 의지가 강하면 자신이 결단하고 마음먹은 대로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착각인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베드로도 이러한 착각에 빠져서 호언장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무엇인가를 결단하고 장담을 한다면 그것은 현재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서 얼마든지 실행 가능하다고 하는 판단에 의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에 성경을 10장을 보겠다고 결단하고 반드시 그렇게 실행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면 그것은 당시의 형편과 상황이 하루에 성경 10장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도 건강하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이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경 10장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시간도 없는 형편에서는 그러한 결단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결국 자신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주어진 상황과 주어진 형편에 따라 생각과 판단이 수시로 변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자신이 결단하고 각오한 후에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결단한 대로 실행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주어질지 알 수 없는 인간들이 내가 하겠다또는 안 하겠다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중심에 계신 하나님

그렇게 보면 오늘날 교회에서 먼저 결단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외치는 것은 오늘 본문에 예수님 앞에서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큰소리치는 베드로만 양산할 뿐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또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자기가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자기 착각에 빠져 신앙이 아닌 종교인이 되게 할 뿐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이나 예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결단과 자신의 각오대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만큼은 주를 버리지 않겠다는 장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와 같은 자기 결단과 자기 의지가 강한 인간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또한 자기 결단과 자기 의지로 갈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결단과 자기의 의지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깨닫고 예수님의 능력만을 구하는 그가 천국에 해당되는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그 어떤 결단이나 각오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천국관은 인간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천국관은 인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자기 자신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자만을 원한다는 사실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높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인간은 자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이 믿음에서는 인간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는 인간이 낮아지고 무시되는 것을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만을 높이기 위한 증인으로 세움 받았음을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가 예수님이 아닌 교회에 관심을 둠으로써 인간의 결단과 인간의 의지를 가지고 교회 일에 매진하는 교인을 만들어 내고 또 그런 교인을 원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결단과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베드로의 부인을 의지가 약한 자의 실패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지가 약한 자 베드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자기 사랑으로 사는 인간의 실패를 보여 주는 것이며 또 그러한 모습이 우리 인간의 실체인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의 실패를 베드로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베드로와 같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 다시 보면 베드로만이 아니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14:31)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 모든 제자가 인간의 실패를 증거하고 있음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너희들은 제자들의 실패를 본받아서 너희는 실패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권고를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실패하지 말라고 권고하셔도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오직 자기 사랑으로 사는 인간은 이미 실패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찾아오심에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4:30)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가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나는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는 호언장담으로 반응하면 안 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주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마음이고 또 의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어지는 형편과 처지에 의해 변덕을 부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임을 우리가 안다면 그러한 우리의 장담은 인간의 약함을 알지 못한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안다면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맞습니다 주님. 나는 매일같이 주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악한 자일뿐입니다.’라는 자기 인정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주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나 같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그 은혜로 인한 것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중심에 주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주의 손길이 드리운 자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7절 뒷부분을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14:27 )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 스가랴서 13장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13:7)는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스가랴서의 이 구절은 인간이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 즉 아들을 칠 것을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 즉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쳤을 때 그 목자를 따르던 양들이 모두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목자를 따르며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14:31)라고 외치며 살다가도 자신들이 따르던 목자이신 예수님이 잡혀 죽게 되고 또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신들에게 어떠한 위기가 닥치게 되면 모두 도망을 쳐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목자로부터 도망을 친 양들에게 하나님이 그 손을 드리우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내 손을 드리우리라는 것은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침을 당하는 것을 보고 다 도망갔지만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1-32)고 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인데 여기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부활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칼에 침을 받고 양떼들이 흩어지지만 그 흩어진 양떼들을 다시 모으시는 것이 다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구약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지금 자기 몸으로 성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칼이 내 목자를 칠 것인데 그 목자가 침을 당하여 양떼들이 흩어지나 흩어진 그 작은 무리를 다시 모아내시겠다는 그 말씀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아진 그 양떼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배신하였다는 것이 들어 있는 양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도우시고 붙드시고 지켜주신 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목자로부터 도망을 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항상 나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부인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기에 천국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자기 유익을 위해 주를 배신한 자들임을 알기에 또 그런 자들인 우리가 그럼에도 천국 백성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와 그 은혜로만 되어진 줄로 알기에 유구무언으로 사는 자들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인간의 결단과 인간의 의지를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결단과 의지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결단과 인간의 의지가 무익함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성취되는 것임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중심에 주님이 계시는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다만 주님이 주신 믿음이 우리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갈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만을 찬송하고 그 사랑만을 높일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 믿음을 하나님께 선물 받았음을 안다면 우리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또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항상 감사가 넘치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신앙인지 아니면 종교인지는 무엇으로 분별이 된다고 합니까?

2. 베드로의 호언장담은 무엇이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호언장담한 베드로가 생각하는 인간과 또 그가 알지 못한 인간은 어떻게 다릅니까?

4.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 합니까?

5.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관은 무엇이며 또 그에 따른 반발은 무엇입니까?

6. 호언장담하는 베드로의 실패를 보는 우리의 시각과 말씀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7.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의 말씀 앞에서의 우리의 반응 은 무엇이어야만 한다고 하며 또 그런 자에게서 드러나는 반응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제자들의 배신을 무엇을 말하며 또 배신한 제자들의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9. 오늘의 말씀을 통해 보는 우리가 유구무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2 2023 6월 4일 / 요한계시록 14. (계4:5-9) 하늘 보좌 관리자 2023.06.04 8
651 2023 5월 28일 / 요한계시록 13. (계4:1-4) 열린 하늘문 관리자 2023.05.28 14
650 2023 5월 21일 / 요한복음 4. (요 1:14-18) 말씀이 육신 되어 관리자 2023.05.21 8
649 2023 5월 21일 / 요한계시록 12. (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관리자 2023.05.21 9
648 2023 5월 14일 / 요한계시록 11 (계3:7-13) 빌라델비아 교회 관리자 2023.05.14 13
647 2023 5월 7일 / 요한복음 3. (요 1: 9-13)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 관리자 2023.05.07 11
646 2023 5월 7일 / 요한계시록 10. (계 3:1-6) 사데 교회 관리자 2023.05.07 8
645 2023 4월 30일 / 요한계시록 9. (계2:18-29) 두아디라 교회 관리자 2023.05.07 8
644 2023 4월 23일 / 요한복음 2. (요 1: 6- 8) 증거하러 온 자 관리자 2023.04.23 13
643 2023 4월 23일 / 요한계시록 8. (계 2:12-17) 버가모 교회 관리자 2023.04.23 10
642 2023 4월 16일 / 요한복음 1. (요 1:1-5)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관리자 2023.04.16 14
641 2023 4월 16일 / 요한계시록 7. (계 2:8-11) 서머나 교회 관리자 2023.04.16 10
640 2023 4월 9일 / 부활주일 / (눅 24:1-12) 빈 무덤을 찾는 사람들 관리자 2023.04.09 9
639 2023 4월 2일 / 요한계시록 6. (계 2:1-7) 에베소 교회 관리자 2023.04.02 70
638 2023 3월 26일 / 요한계시록 5. (계 1:11-20)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관리자 2023.03.26 38
637 2023 3월 19일 / 요한계시록 4. (계 1:9-10) 주를 만나는 날(주의 날) 관리자 2023.03.19 120
636 2023 3월 12일 / 요한계시록 3. (계1:4-8) 교회다운 교회 관리자 2023.03.12 129
635 2023 3월 5일 / 요한계시록 1. (계 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관리자 2023.03.05 150
634 2023 2월 26일 / (딤전 3:9)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관리자 2023.02.26 143
633 2023 2월 19일 / (살후 2:13-15) 진리로 구원받게 하심 관리자 2023.02.22 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