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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진리이신 예수님과 거짓 증거

본문 /  14:53-65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14:53-65)

 

1. 가치관의 충돌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는 시각은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간혹 악한 행동을 한다는 차원에서 악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6장에 보면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6:5-7)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어느 한순간 악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노아의 때에 홍수로서 악한 세상을 심판해 버리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러한 홍수 심판 이후에 악한 세상과 인간은 달라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결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홍수 후의 세상에 대해서도 항상 심판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홍수 이전과 홍수 이후의 사람들의 악함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의 인간 또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홍수로써 심판을 행하시면서 심판 받는 인간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악한 인간이 선하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체 , 인간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의 의만을 바라보고   의를 의지하고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그러한 뜻을 모르기에 자신의 악함 또한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오직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갈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해 하나님은 홍수 이전의 세상에 대해 평가하신 것처럼 지금도 인간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하다고 하시며 그리고  인간의 악함에 대하여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어떠한 반응을 보인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과 계획은 그대로 시행되고 성취될 것입니다. 세상과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농담으로 여기고, 가볍게 취급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담고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세상을 완전히 덮쳐서 끝장을 내고 심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일을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안에서 신자에게 가장 존귀한 것으로 부각되는 것은 예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나를 건져줄 방주는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인간의 가치관에 대한 변동을 가져오게 되는데 그것은 세상이 자신의 힘이고  전부로 여기며 살았던 인간이 예수님이  자신의 힘이고 전부라는 가치관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은 충돌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만을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묻혀 사는 방식과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늘의 방식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맞지 않는 새로운 가치관과 질서로 오신 예수님에게 대해 세상이 취한 것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자기들의 세계로부터 예수님과 하늘의 가치관과 질서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의 진리였고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말씀을 거부하고 오히려 죽여야  죄의 증거로 확보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하늘의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사형에 해당되는 죄의 증거로만 확보해 버리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의 일치점을 찾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하늘에 속한 진리의 말씀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지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 아니라 아예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씀이고 진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오히려 거짓된 말로 치부하면서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배척을 받아야  분이었을 뿐입니다.

 

2. 신앙과 종교생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와서 죽일 증거를 찾고자 하지만 찾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죄를 증거 하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증거가 서로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이 나온다는 것은 자연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집어넣어서 예수님을 죽어야만 하는 죄인으로 몰아가기 위한 거짓 증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증거를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자신들의 질서와 신앙세계를 무너뜨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신앙세계에서 유대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거룩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며  구원받은 민족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세우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신앙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하시는  하나하나는 그들의 굳건한 신앙세계와 질서를 흔들어 허물어뜨리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 세계를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일 죄인으로 규정하고 사형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외가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유대인들의 신앙세계,  종교 세계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의 종교 의식과 제도나 형식과는 다르다고 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한 사고방식과 일치한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인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유대인의 사고방식은 인간이 하나님의 규례를 실천하고 행하는 것으로 거룩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따라서  행함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금의 기독교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르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기독교도 진리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는 유대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반발할 것이고  분노하기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인간의 의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믿음으로 살고자 힘쓰고 있고  신자답게 되고, 교회답게 되기 위해서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고 자부하며 살아가는데, 그러한 지금의 교회를 오히려 진리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무리들과 일치시키는 말을 하고 있으니 그러한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세계에 갇혀서 전혀 다른 믿음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진리에 대해서는 유대인과 같은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의와 정당성을 순순히 내려놓고 포기하는 존재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라 부르되 자신의 왕좌를 순순히 내려놓고 그분을 왕으로 섬기며 살지 않는 자들이며  예수님을 주인이라 부르면서도  번도 주인의 뜻과 계획에 대하여서는 구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 우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구축되어 있는 인간의 종교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뜻합니다. 나를 위한 예수가 아니라, 나까지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지음 받아서 존재하고 있음을 믿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진리의 세계이고 생명을 소망하는 신앙세계인 것입니다.

 

3. 당연한 배척

오늘 본문 61절에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14:61)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14:62) 증거 하십니다.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면서 우리가 어찌  증인을 요구하리요”(14:63)라고 분노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말을 직접 들었으니 무슨 증인이  필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로 정죄해 버립니다. 자신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예수님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제사장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분노는 자신들의 소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원하고 꿈꾸는 메시아는 그들의 원대한 꿈과 소망을 이루어줄 영웅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세워서  옛날 자신들의 선조인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영광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아무 볼품없는 모습으로 끌려와 붙잡혀 있는 예수라는 인간이 자신을 유대인들이 갈망하며 기다리던 그리스도라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은  앞에서 말한 유대인들의 기대와 원대한 꿈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앞에 잡혀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들이 그렇게 원하고 기다리고 마음에 품고 있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잊지 말아야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인간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신의 생각이나 기대와 일치된 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기대나 생각에 일치되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달라도 너무 달라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로 인정할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도저히 예수님으로 인정할  없는 낯선 분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배척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며 무너뜨리면서  우리에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예수님의 세계를 심고 세워서 알게  것이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 복종하게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없는지를 우리에게 알게 하고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세상이  주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받음에 마땅한 존재임을 알아  심판 가운데서 유일한 구원의 통로가 되시는 우리 주만 바라보고 의지해야만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우리 주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8-29). 아멘!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날의 세상은 예수님에 대한 거짓증거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짓증거로 가득한 세상에 살면서도 그것이 거짓증거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거짓이다 보니 거짓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형편인 것입니다.  거짓은 하늘에 속한 진리가 와야지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런 거짓증거 속에서도 오직 진리는 빛을 발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 앞에서 내게 있는 거짓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되신 말씀만이 유일한  됨을 깨달음으로 우리들에게 오직 진리만이 참된 것으로 남을  있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는 시각과 그런 인간의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도 변하지 않을 인간을 아시면서도 심판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믿는 신자들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4. 유대인들이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오직 사형에 해당 되는 죄만 찾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거짓 증거가 일치 하지 않는 까닭과 그들이 거짓 증거를 찾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당시 유대인들과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사고방식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신자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무엇과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까?

9.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낯선 분으로 오셔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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