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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거라사 지방의 더러운 귀신 들린 자

본문 /  막 5: 1- 8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5:1-8)

 

1. 귀신들림

오늘 본문은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내용입니다이 내용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귀신 들림’이란 말의 의미일 것입니다‘귀신 들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5:5)고 말하는데이것은 분명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아닙니다흔히 말하는 정신이상자와 같은 증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그러면 귀신 들림과 오늘날의 정신병은 같은 것입니까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귀신 들리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이처럼 ‘귀신 들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질문과 의문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귀신 들림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령학자정신과 의사무당이나 신학자 또는 다른 종교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하지만 귀신에 대한 문제는 성령이나 생명 문제처럼 세상의 상식과 이론 그리고 우리의 인식을 뛰어 넘은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접근할 문제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먼저 귀신 들림에 대해 크게 착각하는 것은귀신 들림의 증상을 정신이상자와 같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자해를 하고 날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그러면 그러한 증상이 없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행동을 한다면 귀신이 들리지 않는 것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고 해도 정신이 멀쩡하다면 그는 귀신 들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이러한 귀신 들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무엘상 19장에 나오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사무엘상 19장에 보면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삼상19:9-10)고 말씀합니다이 사건은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이 단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고자 했던 일에 대한 내용입니다그런데 성경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행동을 악령이 사울에게 들어와서 행한 것이라고 말합니다악령이 사울에게 들어왔다는 것은사울에게 악령이 들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악령에 들린 사울의 행동은 본문처럼 소리를 지르고 자해하는 정신이상자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시기와 미움으로 인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그 당시의 배경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 인해서 백성들 사이에서 왕인 사울보다 인기가 더 높아졌습니다그래서 심지어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는 말을 할 정도로 다윗은 이스라엘 안에서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사울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행여 백성들이 반역을 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고 시기할 수밖에 없고 죽이려는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악령이 사울에게 임한 것으로 말합니다미움과 시기는 우리와 상관없는 말이 아닙니다우리 속에도 미움과 시기는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나보다 잘된 사람에 대해서는 시기를 드러내게 되고 미움을 품게 됩니다그리고 때로는 ‘저 사람이 좀 무너지고 망가졌으면’ 하는 악한 생각을 하는 대상도 있게 됩니다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모습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성경이 이러한 모습이 바로 사울처럼 악령이 임해있는 증상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결국 우리 모두 귀신 들린 상태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세상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지만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습니다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사람은 죄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미움이나 시기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이것은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그러한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게 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을 선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 인간이 아닙니다한마디로 정상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것이 인간이고 오늘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실상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사실 신자로서 귀신들려 산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그런데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자신을 정상적인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어떻습니까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십니까아니면 사울처럼 악령이 접한 자로 보십니까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을 깊이 생각하셔서 무엇이 우리의 실상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무지함과 어리석음

오늘 본문 앞에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 이야기가 있습니다제자들은 풍랑으로 인해서 죽게 된 것을 무서워하며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 깨웠습니다제자들이 죽는 것을 무서워했다는 것은 비록 몸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를 알지 못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제자들은 그 위기에서 건져주기 위함이 아닙니다제자들을 지금 죽어도 괜찮은 그런 운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또한 그 운명의 능력이 되시는 분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문제가 생기면 달려가서 도움을 청하는 대상으로만 여긴 것입니다이것을 두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물론 함께 하신 예수님은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입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자로서 힘들고 어려운 상태를 다만 환경적인 문제로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환경적으로 편안하면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예수님께 도움을 청할 일도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우리에게는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습니다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시기도 아무리 우리가 힘을 써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이것은 곧 우리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인 악령에 붙들려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실상에 대해 전혀 한탄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습니다신앙인으로 별 문제없이 예수님을 믿는 자로 살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도 영적인 문제로는 예수님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3절부터 보면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5:3-4)고 말씀합니다여기 이 말씀을 보면 귀신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그 사람을 장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것이 귀신 들린 자 또 악령에 붙들려 있는 자들의 실상인 것입니다그럼에도 누구든 자신에게 환경적 어려움이 없으니 자신은 평온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자기 내면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풍랑이라는 외부적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귀신이라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입니다이러한 영적인 심각함을 아는 신자라면 환경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그리고 자신을 악한 영으로부터 건져 달라고 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우리들에게는 여전히 세상의 영광을 향한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또한 누군가에 대한 시기와 미움도 있을 것이고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비판하는 모습도 보일 것입니다즉 육으로 행하는 모습들이 우리들에게서 수시로 보이는 것입니다그러한 것이 과연 악한 영과 관계가 없다고 보십니까우리에게서 비춰지는 이러한 육의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심령이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흔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그런데도 만약 자신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는 풍랑과 같은 외부적인 문제에만 반응할 뿐 악한 영에게 붙들려 살아가는 내면의 문제에 대해서는 깨닫지를 못한 채 살아가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그러한 우리의 어리석음과 영적 무지가 풍랑과 같은 위기에서만 주님을 찾을 뿐악한 영에 붙들려 살아가는 자신을 구출해 달라는 기도와 함께 주님을 찾지는 않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풍랑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실상인 것입니다우리는 그런 우리의 실체와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안타까울 뿐인 것입니다.

 

3. 은혜로 사는 우리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귀신은 우리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단단히 결심한다고 해도 욕망을 벗어버리지 못하고시기와 미움 등에서 떠나지 못하는 실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그래서 그러한 자신의 실체를 아는 신자는 오직 주님에게로 나아갈 뿐입니다사탄에게 승리하신 주님이 아니면 악한 영으로부터 구출 받을 길은 아무 곳에도 없기 때문입니다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고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이러한 악한 영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어떻습니까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귀신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그렇다면 우리들에게서는 성령의 열매만 보일 뿐육체의 열매는 전혀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그런데 과연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악령이 접한 증거물이 없습니까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의 정신이상자처럼 미쳐 날뛰는 증상이 없을 뿐이지 사실 우리 모두 세상에 미쳐 살아가고 있습니다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복음으로 인해 오직 천국만을 소망하면서 세상에 대해서는 새처럼 자유로운 존재로 가볍게 살아가지를 못합니다세상의 것이 짐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그러다가 말씀을 만나서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인생의 헛됨을 깨달으며 천국을 소망하는 그 순간만 자유와 가벼움을 조금 맛볼 뿐입니다그러나 그 마음은 다시 세상을 향하게 됩니다그러므로 신자가 이러한 실상을 깨닫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그럴 때 풍랑이 일어날 때만 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주를 의지하고 주께 매인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신자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풍랑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만이 우리를 악한 영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입니다예수님이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만으로도 신자는 이미 승리한 자입니다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삶 가운데서 신자인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리는 자로 살아갑니다혹 악을 행하여도 주의 말씀 앞에서 그것이 악임을 깨닫고 속히 회개하여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이것이 우리가 주 앞에 설 때까지의 신앙생활이며 찬양과 영광의 삶인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이러한 주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귀신 들림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착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까닭과 그 이유를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까닭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릅니까?

6. 늘 본문에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7. 영적 무지가 만든 간구와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 실체를 알게 된 간구는 어떻게 다릅니까?

8. 우리가 악한 영에 의해 붙들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까?

9. 귀신 들린 자들이 미쳐 날 뛰듯이 오늘날 우리는 무엇에 미쳐 날 뛴다고 합니까?

10.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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