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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 나라와 회개와 복음

본문 / 1:14-15

 

 

1. 예수님의 복음 전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선포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해서 선포하신 예수님의 복음의 첫 내용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현실감이 없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구축한 자신의 세계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내용과 자신의 영광을 위한 세계로 구축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자신에게 기쁨이 되는 일과 슬픔과 고통이 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내 육신에 기쁨이 되는 일 아니면 슬픔과 고통이 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은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자신의 육신에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회개한다고 해서 기쁜 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픔과 고통스러운 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만약 회개하면 복이 주어져서 기쁜 일이 생기게 되고 반대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으로 되어있다면 누구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를 하든지 또는 하지 않든지 인간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문제에는 그 어떤 변동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 이후의 문제로만 밀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그러한 문제보다는 지금 당장 육신으로 접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급선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과 인간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회개한다고 해서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승진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평소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문제들이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 선포하신 말씀처럼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순종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인간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입니다. 현실을 다른 시각으로 보지 않고는 오늘 본문의 말씀뿐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자신의 현실과는 무관한, 즉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무관심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곡해하는 것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쳐지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연결하려다 보니 인간이 중심이 된 잘못된 해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우리의 주변에 신앙이라고 여기는 모든 일들 가운데서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2. 회개

그러면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는 회개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흔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의 윤리적이고 또는 종교적인 것을 가지고 회개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반응과 증상과 같은 것이기에 그 겉모습을 고친다고 해서 회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예레미야 3장에 보면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도 돌아올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우리가 주께로 돌이킬 수 있다면 이 돌이킴 자체가 우리의 의가 됩니다. , 회개라는 조건으로 구원을 주신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조차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3:14)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고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여주셨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성읍에서 한 사람과 족속에서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데리고 오시는 그 과정이 성도에게는 회개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여 돌아 온 자들에게 어떤 일이 나타납니까? 다시 예레미야 3장에 보면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3:22-25)라고 합니다. 이것이 주의 은혜로 돌아온 자들의 고백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임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다른 주를 찾아다닌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크고 작은 우상숭배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나라들을 의지한 것도 포함이 됩니다. 이들이 결코 구원을 줄 수 없음을 알고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다고 합니다. 셋째로 자기 죄를 압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한 그 우상들이 우리의 청년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이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치와 치욕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청년 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가 일어난 모습입니다.

 

 

3.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는 신자들에게 항상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갖고 있는 천국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생각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회의 상식임과 동시에 세상이 갖고 있는 상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현실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화하여 생각함으로써 현실은 현실대로 챙기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대로 챙기겠다는 종교적 욕망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조차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종교적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라고 하십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으니 빨리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자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러한 것과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물론 종말이 없다는 말도, 회개가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사람이 죽어서 들어가는 좋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회개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지난주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이 세상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생명도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믿음과 새로운 소망도 시작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의 오심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것의 시작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에 따른 회개란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전의 세상의 것이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개선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 시대란 시대의 본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새마을 운동처럼 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은 오직 생존을 위해 떡으로만 살아가는 세상이었고, 자신의 복을 구하고 세상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다른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고,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만 경배하는 세상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기존의 세상의 악함을 깨닫고 소망을 새로운 세상에 두는 회개한 신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복음을 믿는 신자의 삶

그래서 신자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 육체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것이고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있다가도 없는 것들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게 하시고 없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있어 참된 현실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하나님 오늘은 저를 세워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합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현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현실로 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현실로 바라보는 신자에게는 오늘 예수님의 하신 말씀은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현실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이 임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다른 세상이 임했다는 것은 기존의 세상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세상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때가 되면 영원히 멸망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구하시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축된 새로운 나라를 세상에 구축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세상을 믿지도 의지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0-12)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세상의 실상을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것으로 묘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끼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은 세상을 우리처럼 보지를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요한이 볼 때는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서 언제 뿌리가 찍혀 쓰러질지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으로 봤던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즉 영적인 사람만 볼 수 있는 참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바다 찍어 불에 던져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중요한 것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열매가 무엇인가 하면 회개입니다. 이 회개를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세상에 정해진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고, 이 현실을 참된 것으로 믿는 신자라면 자연히 알곡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고 쭉정이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자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삶만을 현실로 간주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악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보지 않기에 회개할 필요성을 갖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한다고 해서 신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과 다스림에 굴복하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에 마음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이 구축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악함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자에게서만 맺어지는 좋은 열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와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참된 현실이 존재함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현실을 바라보면서 기존의 세상에 자꾸 마음을 두려고 하는 자신의 악함을 회개하면서 오직 복음을 믿는 신자로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의 복음의 내용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현실감 없이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복음을 받을 수 있는 비결과 또 우리에게 발생하는 신앙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생각하는 회개와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는 어떻게 다릅니까?

4.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반응과 증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다릅니까?

6.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우리가 해야 하는 회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7.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과 성경은 어떻게 다르며 또 왜 그것이 현실이라고 합니까?

8.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과 세례 요한이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어떻게 다릅니까?

9.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 안의 신자에게 맺혀지는 좋은 열매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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