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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더라

본문 / 1:32-39

 

 

 

1. 주님이 오신 목적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목적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고 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다고 하며, 또한 요한일서 3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고 하여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1:38)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물론 대부분의 신자가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오셨다라고 말하고 또 그것이 분명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죽으심이 뭘 의미하는가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죽으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지 못하면서 나는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고 무조건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 때문에 바른 믿음에서 벗어나는 잘못됨을 많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도하러 오셨다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러 왔다는 것은 십자가 말고 전도라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까? 전도는 한자어로는 전할 에 길 라고 하여 길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인된 우리가 생명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전도는 장차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 세상에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심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전도와 오늘날의 교회의 전도를 비교하면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오늘날의 교회의 전도는 교세 확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기대와 오해

오늘 본문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의 실상은 마치 열병에 걸린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걸린 열병은 사람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헛소리를 하게 합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오로지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만 달려갑니다. 자신의 성공과 욕망의 성취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도 복음도 외면해 버립니다. 오로지 성공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 놓고도 말 그대로 헛소리로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도의 성도다움을 세상에서의 성공과 욕망의 성취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말씀하는 누가복음 4장에 보면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4:42-44)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이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합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무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 무리들은 귀신을 나가게 하시며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좋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러한 능력은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많은 기적을 베풀어서 더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야 말로 꿈에서라도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곳을 떠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예수님의 제자 된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그리고 같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신자이고 또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것이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즉 귀신이 나가고 열병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상태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정신을 차렸으니 무엇이 교회이며, 무엇이 선교이고, 무엇이 구원인지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전하는 일에 힘을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걸어가는 주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예수님의 이 일에 마음을 두고 또 그 일이 오늘 우리들의 일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며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전도가 무엇인가를 예수님의 전도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주를 찾는 자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도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전도는 교회 밖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9절을 보면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1:39)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서 전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곳입니다. 그런 회당에서 전도하셨다는 것은, 오늘날 소위 믿는 자들이 모인다는 교회에서 전도하신 것과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신자가 자신은 교회를 다니고 있고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전도를 오해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잘못된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의 생각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 때문에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교회에서의 설교는 과연 무엇입니까? 설교는 전도가 아닌 것입니까? 그러나 설교 역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즉 전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교회를 나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나올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즉 전도는 교회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고, 나는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연히 그 마음이 예수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인간이 왜 예수님께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적인 전도는 인간은 죄인이며 사망에 처한 존재임을 전해야 하고, 예수님이 그러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는 것만이 우리가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바른 도를 증거 하는 전도는 우리의 악함과 더러움을 보게 할 뿐만이 아니라 죄의 용서와 깨끗함을 입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나오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 뒤에 이어지는 40절에서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1:40)라고 하여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내용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전도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나병환자 말고도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6절부터 보면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1:36-37)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주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을 찾는 그들을 외면하시고 다른 데로 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자신의 악함을 보면서 깨끗함을 입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님의 능력이 좋아서 예수님을 찾을 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도 오병이어의 놀라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예수님은 “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6:26-27)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왜 찾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목적을 위해 찾는 그들을 외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38절을 보면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1:38)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회당에서만 전도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전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예수님의 전도를 들은 사람들은 그 전도로 인해서 자신의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만을 봤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마을에서 전도하셨을 때에는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는 단지 병을 고침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끗함을 입기 위해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의 결과인 것입니다.

 

4. 전도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들은 신자에게 있어야 할 성령의 역사는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깨끗케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함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의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잘 살게 해 줄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깨끗케 해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전도의 참된 열매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31.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고 말씀하신 것처럼, 전도는 인간은 의원이 필요 없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의원을 찾아가야 살 수 있는 병든 자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전도로 말미암아 자신이 병든 자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함과 질병을 대신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교회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찾는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도에 인간의 욕망이 개입됨으로 인해서 전도의 목적이 교회 학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기들 나름대로의 전도 목적과 목표를 정하고는 교인들에게 일 년에 한 사람씩 전도하라고 강조하는 것들이 과연 예수님이 하신 전도와 일치하는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단지 자신에게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전도 하셨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라면, 십자가의 도를 바르게 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나오게 할 만큼의 매력 있는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에 볼 때 미련할 수밖에 없는 십자가의 도로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아무나 믿을 수 없고 따를 수 없는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자신의 전 인생을 다해서 따르고자 하는 인간이 등장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백성과 백성 아닌 자를 구별하는 능력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도에서 십자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성장만을 바라봅니다. 교인들을 훈련을 잘 시켜서라도 전도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며,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교회를 부흥시키고야 말겠다고 하는 인간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구실을 붙여서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전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전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가 분명 신자의 사명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된 신자라면 그 은혜를 지체와 함께 나누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은혜를 함께 나눔으로써 형제자매 또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께 모든 소망을 두도록 돕는 것이 신자의 사명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결국 전도는 예수 믿으십시오라는 말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진리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곧 이웃에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하늘나라에서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복된 신분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주의 종들을 통해 선포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전도를 받으셔서, 주 안에서의 우리의 실체를 바르게 알아 오직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자라는 것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하여 어떤 내용들이 있습니까?

2. 우리가 마치 열병에 걸린 것과 같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는 자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4.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무엇이며 또 제자들이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우리가 기본적으로 아는 전도와 오늘 본문의 전도는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6. 오늘 말씀에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전도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나병환자가 주를 찾는 이유와 모든 사람이 주를 찾는 이유는 어떻게 다릅니까?

8. 전도(설교)의 참된 열매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성경에서 말씀하는 전도를 싫어하고. 미련하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신자들이 해야 할 바른 전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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