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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자를 부르시는 뜻과 목적

본문 / 3:13-19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3:13-19)

 

1. 부르심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12제자가 등장합니다. 이 예수님의 12제자의 공통점은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작정하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3:13)고 말씀하는 것처럼 모든 제자는 동일하게 예수님의 원하심에 의해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원하여서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말은 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제자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신의 뜻과 소원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또 예수님의 부름 받은 제자들이라고 소리치지만 그들에게서 대개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것 챙기기입니다. 자기 뜻과 소원을 챙기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것이 대부분이지 나를 부르신 분의 뜻과 소원과 목적에 관심을 두고 나오는 사람은 극히 희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름 받은 제자들의 뜻과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그들을 부르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을 잘 알았기에 그의 서신서 곳곳에 보면 자신의 부름 받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고전1:1)이라거나,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1:1) 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1:1)이라고 하여 자신의 위치와 존재성을 확실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부름 받은 목적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라고 하여 부름 받은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내용도 말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자는 자신을 부르신 분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반면에 신자가 아닌 사람은 자신을 부르신 분이 없기 때문에 다만 자신의 뜻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예수님이 나를 불렀음을 믿는다고 해도 부르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은 나를 위해 부르신 부르심으로 곡해할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는 부르신 주의 뜻은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자신의 뜻과 욕망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제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만약 자신의 기쁨과 목적을 위해 살았다면 복음으로 인한 핍박과 고난을 견디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데 왜 이런 대우를 받게 합니까?’라는 불평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부르신 분의 뜻과 목적이 있음을 알았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도 주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순종한 것입니다.

 

2. 전도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4절부터 보면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3:14-15)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전도를 위해서 그리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부심에 있어서 분명한 뜻을 두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뜻 안에서 제자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전도도 하며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제자의 사명에는 전도가 들어 있습니다. 전도가 제자의 사명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의 전도와 우리가 생각하는 전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찾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전도의 내용인 십자가의 도는 들어도 깨달을 수 없고, 보아도 알 수 없는 비밀의 내용으로 굳게 잠겨 있는 것입니다. 그 전도의 내용을 듣고 깨달을 수 있고, 보고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령을 받은 주의 사람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에게 전혀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듣고 보는 누구에게든지 감동적인 내용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십자가에서 걸림돌을 제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내용에서 인간들이 듣기를 거부하고 싫어하여 걸려 넘어질 걸림돌은 모두 없애 버리고, 인간들이 추구하는 복과 윤리와 도덕에 부합되는 내용들로만 십자가의 도라고 전한다면 인간들이 이것을 거부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복음을 전하는 사도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험악했던 것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도 그리고 사도들도 오직 진리의 도만을 증거 했을 뿐입니다. 인간을 살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고집스럽게 증거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내용들에 대하여 듣기 싫다며 귀를 막고 돌을 들기가 일쑤이고 잡아 죽이려고 쫓아다니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세상이 이러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웃에게 어떠한 해를 끼쳤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들의 인간성이 다른 이들보다 더 나빴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반응의 원인은 오직 복음에 있습니다. 세상이 복음을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에는 타협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타협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거부하지 않는 도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타협은 곧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듣고 있고 또 나누고 있는 복음이 과연 세상과 타협되어진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확인해야만 할 것입니다.

 

3. 귀신 쫓는 권능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또 한 가지 이유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우리들에게 이러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주어진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권세를 받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신 것은 제자들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는 예수님에게 있는 권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행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후에도 제자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부르신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또 제자들을 세워 예수님의 일을 계속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음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하시며 예수님의 일에 위해 부름 받은 것으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오늘 본문의 12제자들에게만 주어진 권세인 것입니까? 그러면 지금은 아무도 귀신을 쫓아낼 수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것이 신자이기 때문에 능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발작을 하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것을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귀신은 신자로 하여금 오직 자기 이름을 위해 살게 하고 또 자기 영광과 자기 기쁨을 위해 살도록 합니다. 이것이 귀신 들려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고자 하게 된다면 그것이 곧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것이고, 귀신이 쫓겨 나간 것이 됩니다. 귀신이 쫓겨 나간다는 것은 복음에 의해 그 심령이 점령당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도가 장악한 심령이 곧 귀신이 아닌 성령에 다스림 받는 신자의 심령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예수님의 일이고 또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고 전도를 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4. 제자의 도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한 일,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이 무엇인가에게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자가 제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또 핍박과 고난이 되는 길이라고 해도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 제자인 것입니다.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뜻에 매어 있기에 그 뜻에 의해서 그러한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제자도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13)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아니면 우리는 이러한 영광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것을 영광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과 욕망대로 성공하는 것을 영광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바로 귀신들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주의 도를 전하게 하시는 것이 주의 뜻인 것입니다. 주의 도를 전함으로써 사망에서 건짐 받은 것이 무한한 영광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주의 도로 말미암아 귀신이 쫓겨 가고, 성령에 붙들린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제자들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세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병 고침이나 귀신이 쫓겨 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탄생되는 기적의 사람,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를 부르신 이유고 또한 인간의 전도와 다른 예수님의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권세를 말하지만 그 권세 앞에 세상이 굴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신자는 예수님께 부름 받았다는 것이 무한한 영광임을 아는 것입니다. 너무 영광된 것이어서 세상에서는 낮아지고 힘든 길을 간다고 해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것으로 기뻐하고 찬송하는 사람이 신자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주님께 부름 받은 우리가 이러한 제자도로 살아가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 오직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만 기쁨이 되는 제자의 길이 펼쳐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이들의 공통점과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신자가 자기를 부르신 이의 뜻과 목적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제자를 부름 받은 자들의 첫 번째 사명과 그 사명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십자가의 도를 들을 수 있는 자들은 누구며 그럼에도 세상이 거부감이 없다면 왜 그런 것 이라고 합니까?

5. 세상이 복음을 듣지 못하는 까닭과 복음에는 타협이 없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제자들이 부름 받은 두 번째 사명과 거기에 담긴 의미는 무엇입니까?

7.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8. 오늘 말씀에서 진정한 제자도란 어떤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9. 인간의 전도와 다른 예수님의 전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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