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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큰 핍박 그리고 큰 기쁨

본문 / 8: 1- 8

 

 

1. 하나님 나라와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십니까? 그래도 이만하면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하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학력과 직업 그리고 회사 일에 대해 공헌도에 따라 그 임금을 달리 지급하고 있습니다. 2002년도 월드컵 때도 우리나라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4강도 이루어냈는데 그때 선수들에게 잘 싸워 이겼다고 돈을 수억 원씩이나 지급하였습니다. 그때도 공헌도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형편이고 또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다윗이 망명생활을 할 때 600명의 군대가 있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성읍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인들이 시글락을 공격하여 성읍에 남아 있던 다윗과 그의 군사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 잡아가게 됩니다. 그때 돌아온 다윗이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적을 추격했는데 200명이 쳐져서 따라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은 400명이 추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돌아올 때 4백 명 가운데 일부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저들에게는 처자식만 주어서 쫓아내어 버리자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모든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승리케 하신 싸움인데 어떻게 자기들의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품꾼 비유에서도 하루 열두 시간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일당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과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겨야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스포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전부의 모습입니다. 양보를 하고, 손해를 보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 살아 갈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그저 남을 밟아야 하고, 이겨야 하고, 죽여야만 내가 살고, 내가 이기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니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였는데 그런 사람을 돌로 쳐 죽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사람에게 날아오던 돌이 180도 방향을 바꾸어서 던진 자에게 다시 날아가 맞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맞아 죽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의 죽음을 이 세상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 세상의 현실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2. 하나님의 일하심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8:1)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울은 훗날에 사도 바울로 알려진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입니다. 그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면서 할례와 율법과 성전을 공격한 것입니다. 할례와 율법과 성전을 자기들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스데반 집사는 자신의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손에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에 사용한 것입니다. 할례를 가지고 남을 정죄한 것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판단만 하였습니다. 자기들을 옳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 자기를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기 자랑과 자기 정당성을 고발하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수님을 죽이고, 스데반을 죽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건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는지를 돌아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손해보고 억울한 일 당함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모든 지식과 사건과 경험들을 다 동원하여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성경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다 끌어들여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안 되면 나중에는 하나님은 아시겠지 하는 것입니다. 정작 제삼자들이 쌍방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둘 다 옳은 것 같습니다. 모두 다 자기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오직 자기만 옳고 또 자기 잘남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배려할 만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여유로움과 주의 마음이 전혀 없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한 알의 썩는 밀알로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보고 예수쟁이들은 말만 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까? 어찌 보면 세상보다 더 세상다워져 버린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도리어 참 신앙을 가지고 진정으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사도 시대에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방인들보다 유대인들에게서 더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스데반을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이는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8:1)고 하고 또 4절에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8:4)라고 합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집니다. 핍박을 피하여 도망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핍박을 피하여 도망을 갔는데 간 곳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핍박이 오자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인 자들이라고 상종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까지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역시 주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하셨습니다. 증인이 되자고 훈련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증인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벽인지를 사도행전에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주의 말씀처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서 증인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주의 말씀처럼 흩어지지 않으니 핍박을 통하여 흩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흩어진 자들은 사도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핍박의 주된 대상은 헬라파 유대인들로 보는 것입니다. 특히 일곱 집사의 이름들이 모두 헬라식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일곱 집사 중 오직 빌립의 이름만 나오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흩어진 사람들이라고만 나옵니다. 무명의 사람들입니다. 핍박이 오자 피하여 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서 바로 주의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모습을 다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영웅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인물이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일함으로 그 사람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방식은 영웅을 원하지만, 성경은 영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죽어가는 자들을 통해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들에게 자랑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열심과 재능으로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께서 이루어 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이 죽고, 핍박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으로 교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8:3)고 합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한다고 하는데, 잔멸이란 씨도 없이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를 핍박하고 죽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단도 지혜로워서 교회를 핍박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잘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핍박이 없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정확한 진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주님은 주님의 일을 묵묵히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장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26-31)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 안에서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자기 자랑의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랑 할 것이 없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사도들 보다 집사였고, 집사 보다 이름 없이 흩어진 자들로 인하여 복음이 증거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그리고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자기 자랑과 자기 치장 그리고 자기 자존심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만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지혜도 없고, 의도 없고, 거룩함도 없기에 구속을 받을 만한 것이 전혀 없음을 알게 하여 오직 주님만이 나의 지혜와 의과 거룩과 구속이 되시기에 이제는 사나 죽으나 주님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 나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그 수많은 말들 중에 과연 예수님을 자랑하는 말과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랑에서 해방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복음을 증거 하실 때, 자랑스러운 인물을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자랑스럽기는커녕 죄인 중의 괴수이며, 스데반이 죽을 때에 마땅히 여긴 사울 같은 자를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평생에 자기 자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3. 자유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나고 멋있어서 복음을 잘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사람들이 볼 때에 아무런 자랑 거리가 없는 평범한 사람 아니 오히려 부족하게 보여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아도 되고, 성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도 몰라주어도 되고, 져도 되고, 죽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자유하게 하며 넉넉하게 사는 자세입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여유가 있고 넉넉하게 사는가를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그런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하면 됩니까?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8-18)고 합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복을 빌라고 합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로 인하여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소동하는 것으로는 소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니 두려워하고 소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가운데 평소에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그래서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벌벌 떨고 소동을 하는 그런 상황에서 참으로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물어 올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때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바로 위의 말씀에 다 나와 있습니다.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로운 자가 죽으심으로 속죄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이 부활하시고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스데반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 본 것입니다. 그에게 천사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위대하심을 증거 하는 사람은 위대하거나 유명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흩어진 그 사람들이 자기들도 두려워서 피하였지만 그러나 복음을 두루 다니며 증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큰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졌지만 그러나 주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어 오늘 우리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큰 핍박이 도리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큰 기쁨의 소식이 증거 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소동하는 것들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소동하지 말고 오히려 큰 기쁨의 소식을 인하여 나의 환경에 상관없이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복음의 소식이 전하여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더라”(8:8)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큰 기쁨의 소식이 증거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싸우지 않은 자에게도 또 적게 일한 자에게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3.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통하여 나타나는 두 가지 놀라운 주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5. 흩어진 무명의 초대 교회 사람들을 통해 일하심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6. 오늘날 우리가 가운데 일하는 사탄의 일하는 방식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사용하시고 또 그런 자들을 사용하시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우리들이 세상에서의 유명함과 성공이 없어도 하나님 안에서는 상관이 없다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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