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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난 중의 기도와 즐거움 중의 찬송

본문 / 5:13-18

 

오늘 말씀에 보면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할 것이며 즐거운 자는 찬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와 찬송은 성도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에 찬송이 되는가를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가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난당하면 기도해서 해결 받으면 되고, 즐거우면 찬송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보았듯이 우리에게 급한 일이 닥치고 꼭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면 하지 말라고 하는 맹세도 너무나 쉽게 하고 또 인간은 항상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들이기에 그렇다 하는 것을 그렇다 하고, 아니라하는 것을 아니라고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실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어느 구절 한 말씀이라도 쉽게 여길 말씀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1. 고난 중의 기도

먼저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단지 고난을 빨리 해결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문제의 초점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고난은 자기가 잘못하여 당하는 고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이기에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기록 목적도 흩어진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그것을 인내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에 내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돌아보아서 빨리 고쳐서 해결보자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1:5)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시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하게 되면 그 앞의 말씀처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2-3)고 합니다. ,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도 기쁘게 여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들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룸으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대로의 일하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하여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온전함이란 12절 말씀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는 말씀처럼, 그 시험들을 통하여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장에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2-14)고 합니다. 결국 성도가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에 기도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이기에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성도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짐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자기 앞에 있는 어려움을 빨리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의미를 더욱 알게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에게 닥친 고난만 해결하는 것이 기도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편함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대부분의 기도가 놀랍게도 다 그러합니다.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어려움이 왔는지를 돌아보면서 자기를 탓하거나 아니면 남을 탓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만 하게 되니 자기에게 그런 잘못이 없다고 여기게 되면 이웃에 대하여 원망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야고보는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 지혜로 그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알게 되면 그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즐거움 중에 찬송

그리고 두 번째로 살펴 볼 것은, 즐거울 때 찬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도 하나님의 뜻과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보면 무척이나 하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가 고난 받을 때의 기도가 고난의 뜻을 알기보다는 그 고난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하는 기도인 것처럼, 우리가 과연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느냐는 문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가운데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잘되면 자기 탓이고,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아담의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치면 전부 남이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핑계하고, 잘 된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길 때에 우리는 누구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됩니까? 물론 예수 믿는 사람은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은 해도 그래도 내가 그동안 노력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일어났겠느냐고 하면서 자기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즐거운 일이 일어났을 때에 그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라고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만 돌리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5:44)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이란 십자가의 영광이기에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암직하고 세상에서 영화로운 것만 구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영광은 배척하고 있으니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찬송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찬송이란 하나님께만 그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도리어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사람이 그 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큰 업적을 남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하면서 과연 자기를 부인하고 찬송을 돌리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즐거울 때 찬송하는 일이 얼마나 실천하기 힘든 내용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힘든 정도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보면 사도들이 즐거운 일이라고 여긴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즐거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즐거운 일을 즐거움으로 보고 있으니 이미 초점부터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양보하여 세상의 일을 즐거움이라고 하여도 과연 주님께 찬송을 돌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세방 살 때는 좁아도 자기 집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막상 집을 마련하여 일 년만 지나게 되면 자신은 의례히 그런 집에 살만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더 나아가 그 집이 좁다고 여기고 자신은 더 넓고 나은 집에 살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나라고 하는 사람이 이 정도에 이런 것도 누리지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과연 찬송이 나오겠는가 아니면 원망이 나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1:3-4)고 합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어진 믿음의 도를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어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의 속한 것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늘날 우리는 즐거움을 무엇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의 것으로 바꾸어 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면 홀로 하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아닌지 점검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난 받을 때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힘으로 되어지는 일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도 자신이 고난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찬송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서도 고난 가운데 기도하고, 즐거운 일에 찬송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는 귀하여서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3. 병들었을 때의 기도

오늘 마지막으로 살펴 볼 말씀은 병들었을 때에 기도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5:14-18)고 말씀합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다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고 하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함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하며 병 낫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아를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해석으로 수많은 문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말씀을 근거도 종부성사를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 의식이 없을지라도 신부가 그 죽어 가는 자의 눈, , , , 발에 바르면 그 신부의 기름 바름에 의하여 그 죽어 가는 자가 면죄를 받는다는 교리적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겠습니다만 그렇게 하여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느 목사님은 아픈 교인의 가정에 심방을 가서 기름을 찾는데 참기름이 없다고 하니 식용유라도 가지고 오라고 해서 그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렇게 병든 자를 위하여 기름을 바르고, 장로들이 기도하고, 서로 죄를 고하면 죄가 사함을 받고 병도 낫는다는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는 죄를 고백하라고 하니 공개적인 자리에게 온갖 추악한 죄를 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백하는 죄라는 것이 대부분 세상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이며, 돈을 사랑함이 죄이며,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죄이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시는데 이러한 죄에 대하여서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이런 것들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만약에 장로들의 믿음이라면 장로들이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사람의 죄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요청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문제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증거로 병에서도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바르기에 약용으로 사용하는 기름을 바르면서 그 기름 바름의 효과보다는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무엇을 하든지 주의 이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의 예로 엘리야를 듭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를 하면 하늘이 놋이 된다고 하셨기에 비가 오지 않아야 된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36개월이 지나고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하고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제물을 드리고서는 비가 오기를 간구하여 비가 오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도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씀하는 그 의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구약에서의 의인이란 모든 역경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의인도 역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가 의인입니다. 이런 자들은 고난 가운데 기도하며, 즐거울 때 찬송하고, 병든 자가 있으면 죄를 알게 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만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가 나눈 말씀은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내용입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고, 즐거움 중에 찬송하며, 병들었을 때에 기도하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지금 우리가 행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여길만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되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혜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이 가진 종교성을 따라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지 마시고, 조용히 주께 물으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선포된 말씀 가운데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분별하여 오직 주의 은혜로 사는 예원가족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야고보가 말하는 고난은 무엇이며, 성도들이 그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라는 의미를 바르게 알 때와 그렇게 않을 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즐거울 때에 찬송을 한다는 것이 주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을 유다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5. 죄를 고백하라는 말씀에 대해 우리의 잘못된 이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야고보서 514절부터 18절까지의 바른 이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야고보가 예를 든 엘리야의 기도와 의인의 기도는 어떤 내용으로 이해하여야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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