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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본문 / 8:14-17

 

 

1. 종교적 본능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8:1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도 라고 할 때 그 의미가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는 것입니까? 존경과 부러움으로 하는 말이겠느냐 아니면 아니 그런 동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인가 하는 의미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어느 대학교수 집안의 자녀가 서울대에 합격하였다고 하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아마도 그럴만하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옆집에 사는 어떤 자녀도 서울대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옆 집 교수와는 달리 매일 술이나 먹고 행패나 부리는 가장이고 또 그 자식도 별 특별하지도 않았는데 서울대에 합격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말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니 그 집 아이도 서울대에 들어갔느냐고 하며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예를 다시 오늘 본문 사마리아에 대입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이런 분위기인 것입니다. 아니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단 말인가. 아니 다시 한 번 철저하게 조사를 해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 온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빌립의 전도를 받아 이미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복음을 듣고서 그 복음을 믿었기에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은 사람에게 한 사람도 성령이 임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안수하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아직도 논란이 분분합니다. 예수 믿는 것과 성령이 임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는 자들과 예수 믿는 것이 성령이 아니고서는 믿지 못하는 것이니까 예수 믿는 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라고 주장하는 자들 사이의 논란입니다. 우리는 어느 입장입니까?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분명히 믿는 것과 성령의 세례를 달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은 초대교회 때의 과도기적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때만 그렇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다고 하는 고린도전서 12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믿는 것이 곧 성령의 세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요즈음은 이러한 논란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세상 살아가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이러한 논란을 통해 성령의 체험이 있으면 고급한 신자로, 반대로 그런 체험이 없으면 저급한 신자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신분적인 계급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고급한 신자와 저급한 신자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젖을 먹는 자가 있고,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가 있는 것처럼 말씀의 깊이가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기의 공로로 주님 앞에 설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모두가 은혜로 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자신을 남과 비교하여 우월적인 위치에 세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와는 다르다는 것이며, 나는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같이 신앙생활 하면서도 계급화 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밋밋하게 복음의 말씀을 듣고 무슨 뚜렷한 체험도 없이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을 때부터 가시적인 체험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신령하게 보이겠습니까? 우리는 종교적인 본능들이 다 있는 사람들이기에 후자에 점수를 더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복음을 듣고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자각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다는 사람들 까지도 또 다른 신비한 체험을 하기 위하여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안수를 받으라든가 아니면 기도를 어떻게 하라든가 또는 어느 기도원이 신령하니까 그곳으로 가라는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결국 돈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한 시몬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주어지는 은혜를 자꾸만 사람의 행위로 대체시키려고 하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만하여 받았다는 사람들이라 여기며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과 전통들을 그렇게 고수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향하여 너희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지 우리는 있다는 식의 자기자랑을 삼아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율법이요 성전이요 할례요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두었다고 하는 것들입니다.

 

 

2. 말씀의 성취

그런데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삼은 자랑거리를 보며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자신들이 자랑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성이 임하고 그리고 그 성령으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 받고 나서야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만 자기들이 구원받는 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심으로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이 우리 주님의 약속대로 때가 차매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처럼 성령이 임하기까지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성령이 임하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들을 제외하고서는 여러 곳으로 흩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가 사마리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의 모임에 이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가 하며 와서 확인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방인과 같은 사마리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반응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고, 성령이 임하셨는데도 그들이 넘을 수 없었던 벽은 바로 유대교의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와 요한이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하고 그들에게 안수를 하니 성령이 임하는 것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시는 것이겠습니까? 복음이 유대의 경계를 넘어간 것을 확인시키는 작업인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임하시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이 동일하게 사마리아인에게도 임하게 되자 그들이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스스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께서 먼저 빌립과 흩어진 주의 백성들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나서 제자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시 복음의 전파는 주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증인이란 말 그대로 듣고 본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무어라고 보고하였겠습니까? 사마리아에 가보니 그들도 동일하게 우리와 같은 성령이 임하였다고 보고하였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라고 하신 그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임하였음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사마리아가 아니라 완전히 이방인에게 복음이 어떻게 증거 되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 보면 로마의 군대 장교인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었는데도 경건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이 구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이 사람에게 나타나 베드로를 부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다음날 기도 중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그 안에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로서 음성이 나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하자 베드로는 부정한 음식을 이제까지 먹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상을 세 번이나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하고 있는데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갔더니 고넬료와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연결시켜서 또 확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신 것처럼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10:44-48)고 합니다. 이번에는 사마리아 때처럼 안수를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누가 놀라는 것입니까? 함께 동행 한 할례 받은 신자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할례 받은 신자들이란 유대인 신자들입니다. 이들의 생각에는 어떻게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에게도 확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이 어떻게 유대의 경계를 넘어서는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이 증거 되게 하시는 것에 놀라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야 자기들 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도하고야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심”(10:34)을 알겠다고 한 것입니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예루살렘에 그 소식이 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할례 자들이 비난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열심으로

베드로가 받는 비난은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11:1-3)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례도 받지 아니한 사람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의 대답이 있는데 15절부터 보면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11:15-17)고 합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수동적입니다. 내가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가 받은 성령이 동일하게 임하시는 것을 내가 감히 누구관대 하나님을 막을 수 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대답인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18절에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1:18)고 합니다. 이방인에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라고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유대인의 벽이 높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는 것은 사도들이 주님의 뜻을 헤아려서 그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복음을 증거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내신 결과입니다. 이것을 확인하고 증거 하는 것이 베드로의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은 증거 하는 사람들의 열심과 재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도 우리가 잘 나서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거나 물을 주는 자는 자기의 맡겨진 일을 감당할 뿐이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처럼 막을 수 없는 주님의 약속의 능력이 오늘 이곳까지 증거가 된 것입니다. 내가 똑똑하거나 잘나서 믿게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잘못하고 실수 한다고 해서 떠나실 성령도 아니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결국 누가 이기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9-11)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게 되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죽을 우리의 몸도 살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 약속되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내가 주님을 믿고, 내가 주님을 붙들고 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주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또한 붙들고 가시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를 항복시키시고 유대인의 벽을 넘어가게 하시는 그 열심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도 복음을 들었고,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도 복음을 받았고,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이 변함없으신 주님의 열심 앞에 우리의 고집을 내려놓으시기를 소원합니다. 헛된 일에 너무 힘쓰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알아 우리의 삶 가운데 오직 주의 은혜만 찬양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루살렘의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본문의 말씀이 논란의 되는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우리에게 생긴 논란으로 말미암은 부작용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사마리아의 소식을 듣고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5.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하게 하심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까?

6.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놀란 자들은 누구며 또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보이시려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7. 예루살렘의 베드로와 유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성도인 우리의 운명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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