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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의 일하심을 누가 금하리요

본문 / 행전10:34-48

 

 

1. 베드로

지난주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것은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서 기적을 행한 것은 주님의 일하심을 증거한 것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가이사랴에서의 일입니다.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는 도시로서, 그 당시에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관장하는 총독의 주재지이며 동시에 로마군 수비대의 주둔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와 이번 주의 설교 내용을 한마디로 묶어 이야기하자면 우리 주님의 일하심을 누가 금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자신들의 조상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래적 이방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당시 유대교의 회당 예배에 참여하면서 부분적으로 회당 공동체에 가담한 친유대교적인 이방인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그러한 종류의 이방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함으로 유대인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제만이 아니라 기도에도 힘쓴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구시 기도시간, 즉 우리 시간으로 하면 오후 세시인 유대인들이 정한 기도 시간에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지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욥바에 가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와 기도에 힘을 쓰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이라고 하나님의 사자가 말씀하였다면, 베드로를 부르라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직접 너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라그러시면 되실 텐데 왜 복잡하게 베드로를 부르게 하시는가 하는 겁니다. 또 베드로를 부르러 보내지도 말고 베드로에게 너는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가서 전도하라고 명령하시면 되실 텐데 왜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이시는가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9절 이하를 보시면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유하고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베드로가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제 육시면 우리 시간으로는 정오 때입니다. 점심때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시장하여 무엇을 먹고자 하고 사람들은 식사를 준비하는 때에 잠시 잠이 들었는지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를 메고 내려오는데 그 안에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때 소리가 있기를 잡아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두 번째 소리가 들리며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세 번이나 있었던 것은 확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짐승들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니 어안이 벙벙한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혹시 유혹인가 하면서 속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 베드로를 찾는 사람들이 와서 고넬료가 어떻게 해서 자기를 보낸 것인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저들을 따라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을 불러들여 함께 유숙합니다. 이것도 큰 변화입니다. 이방인과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자는 것입니다. 다음날 가이사랴에 갑니다.

 

 

2. 하나님의 일하심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이미 말씀 들을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가니 고넬료가 맞이하면서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식민지 백성에게 지배자의 군대 백부장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미군이 우리나라 여학생을 전차로 치여 죽여 놓고 큰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오늘 모습에 비추어 보면 그런 미군의 장교가 시골의 조그마한 개척교회 목사에게 엎드려 큰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고넬로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오는 자에 대하여 고넬료가 어떤 자세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이런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고넬료를 일으키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초점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그러나 이러한 부분도 한번쯤은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어떤 자세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3장에 보면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33:30-33)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오는데 어떤 자세로 오는가 하니, 말씀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나 마음으로는 자기의 이익을 따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을 연예인들이 쇼하는 것처럼 보러 오는 것입니다. ‘참 노래 잘한다. 그런데 춤은 별로다하는 식으로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 가를 돌아 보셔야만 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28절에 보면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10:28)라고 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유대교의 영향을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잡하게 상황을 만드시면서 일하시는 것은 그런 베드로를 키우시는 것입니다. 물론 고넬료도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십니다만 베드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조금씩 더 넓고 깊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어떤 식인가 생각하는가 하면 '베드로는 능력이 많다 그래서 기적도 행하였다. 그러니 나도 전도를 하려면 그런 능력을 받아야 되겠다', 하면서 능력을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그런 능력이 없으니 나는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셔야 할 것은 목사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서 설교하고, 성도는 아직 부족하기에 앉아서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설교 시간에 가장 훈련되는 사람은 목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편에서 보신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말씀을 준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장 크게 느끼며 감사하는 시간을 누리면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시면서 어디에 가장 중요한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전도를 통하여 이방인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복음이 증거 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은 베드로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게 되었는지를 다 듣고 나서 하는 말이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10:34-35)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서 이 고백이 나오도록 지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취하지 아니하심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유대민족의 선민의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세 번씩이나 거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고넬료를 만나면서 그 사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얼마든지 주님께서 받으시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의 선민의식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것임을 갈수록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설득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항복의 결과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고넬료 가정에 증거한 복음의 내용이 36절부터 보면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10:36-43)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복음의 핵심을 그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로부터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람들이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3일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옳으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기를 저를 믿는 자는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3. 성장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바로 구원하시지 않으시고 베드로를 보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키우시는 것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구제나 선행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만 구원에 이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이 사실이 고넬료에게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의미를 새겨보아야 합니다. 고넬료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와 기도를 하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는데도 왜 또 따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직통으로 통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혼동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우리의 조상들도 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름이나 조금씩 다르게 말할지라도 하느님이라고 하였던 조물주라고 하였던, 옥황상제라고 하였던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1장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섬긴 것은 온갖 우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참된 하나님을 드러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상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상상의 하나님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상의 우상의 하나님의 부수어 버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죽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우상 하나님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모두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일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참 하나님을 죽인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시고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10:47)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입니다. 베드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주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더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섰다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5-19)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3장에도 보면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4-19)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가야 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풍성하심을 알아가라는 것입니다. 알아갈수록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누가 금하리요 하면서 주님께 항복하는 것이며 이로써 베드로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더 아름답고 존귀하게 성장하여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동일하게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일 시키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목표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 세워져 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신부된 자로서의 아름다움임을 기억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인하며 누르며 그럼으로 세워져 가는 예원 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이달리야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어떠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2.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고넬료의 태도와 또 그를 맞이하는 베드로는 모습은 어떠합니까?

3. 에스겔서에서 이야기하는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는 어떻게 보여집니까?

4.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베드로를 부르라 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5. 고넬료를 만남으로 깨어진 베드로의 생각은 무엇이며 또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6.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시며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일은 무엇입니까?

7.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 안에서 무엇을 이루었다고 합니까?

8.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이제 예수 믿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주안에서의 일은 무엇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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