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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흉년의 때에 힘대로 부조하는 교회

본문 / 11:27-30

 

 

1. 종교성과 신앙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여러 가지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 종교적 본능과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17:22)고 하여 사람들에게 종교성이라는 본능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능 중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라면 나에게 닥치는 재앙과 화는 멀리하고 복은 불러들인다.”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무슨 환난과 재앙을 만나면 내가 신에게 무슨 잘못을 하여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같이 이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앙이 닥치면 점치는 사람이나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물어보면 조상신을 섭섭하게 하였다 하며, 제사상 한번 거나하게 차려서 굿을 하여 그들의 노여움을 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무슨 좋은 일이 닥치면 자기들이 조상신에게 또는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지극 정성을 바쳐서 이런 복이 주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없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되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며 무슨 복 받을 짓을 했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하여 이런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러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를 믿으면서 재앙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면 무언가 하나님께 잘못하여 그렇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처럼 아직도 교회 안에는 이런 분위기가 팽배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올 여름에도 폭우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를 입은 분들 가운데는 예배당도 있고, 기도원도 있으며, 목사도 있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의 집과 논밭도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집만 피하여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당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이러는 겁니까? 그래도 내가 교회에서 하라는 것은 빠지지 않고 다 했습니다. 십일조도 하고 주일 성수도 하고 봉사도 하였는데 그러면 하나님도 나의 재산을 지켜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하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 된 교회된 자들은 항상 그 신앙과 삶이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야만 합니다. 즉 내세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전도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진다는 목표, 즉 이 땅에서 잘 된다는 목표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나 이제 예수 믿었으니 빨리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투정만 하는 신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교회가 내세를 준비하는 곳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방향과 목표를 상실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와 방향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있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11-13)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하는 것인데 그저 교회 나와서 내 행복이나 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세상의 종교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관심

이방인들인 안디옥에 복음이 증거 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사람들이 부르게 되고,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이방인에게로 복음이 증거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안디옥이 선교기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가는 중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왔는데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성령으로 말하기를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것이라고 합니다. 그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때에 천하가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글라우디오는 주후 41-54년에 재위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로 보여 집니다. 그러자 안디옥의 교회가 흉년으로 말미암아 힘들어 하는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부조를 하여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지금 사도행전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비록 핍박이 있고 순교가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평안하고 순조롭게 열어주셔서 복음이 잘 증거 되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온갖 핍박과 환난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만이 아니라 12장에 보면 요한의 형제 야고보도 순교하고, 베드로도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난 중에 흉년까지 닥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이 현재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교회에 환난과 핍박이 닥치는 것은 불행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영원을 준비하게 하고, 내세를 준비하기 위함이라면 환난이나 핍박이나 고난은 우리의 생각처럼 불행이 아니라 복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내세를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언제 주님을 부르고 주님께 메어 달립니까? 배부르고 등 따실 때입니까? 아니면 어렵고 힘들 때 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로 하여금 영적이 감각이 무뎌지고, 내세에 대한 관심과 영원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하여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사는 재미에 빠지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돈 모으는 재미, 시집가고 장가가는 재미, 자식 낳고 기르는 재미, 사업 확장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다른 것에 눈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혹에 빠져 세상의 이러한 것에 만족하여 자기 영혼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 불행이고 어리석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13-21)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 형이 아버지의 유산을 다 가로챘기에 나누어 주라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온 목적은 하늘의 것이 아닌 땅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가 너희의 재산이나 나누어 주는 재판장인줄 아느냐고 하시면서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요구가 땅의 기준으로 해서는 정당한 요구일 수 있지만, 하늘의 이야기하며, 하늘을 기준으로 사는 예수님의 관심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람은 영혼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어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12:22)고 하시는 것입니다. 까마귀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33절부터 보면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12:33-34)고 합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에 헌금 많이 하면 하늘에 상급이 많다는 식으로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탐욕만 죄가 되고 교회의 탐욕은 죄가 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교회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너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탐심은 자기 관심사에만 관심케 합니다. 너희의 보물과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물이 땅에 있는 사람이라면 땅의 것만을 생각할 것이요, 보물이 하늘에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의 것을 생각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보물이 하늘에 있는 사람은 땅에 있는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소망 두고 사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사도행전에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그들의 형제의 환난에 힘을 다하여 연보한 것입니다. 부조라는 말씀이 봉사인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연보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형편이 좋아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것을 확보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물가만 오른다고 하여도 사재기를 하는 것이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흉년이 든다는데 힘을 다해 부조를 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3. 우리의 신앙

이런 종말론적인 성도의 자세에 대해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1-5)고 권면합니다. 이런 권면의 말씀을 들으면 틀림없이 우리 가운데 부담을 가지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축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보험도 들지 말라는 말인가, 노후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사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우리의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무어라고 하시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부담을 가지고 주 앞에 선다면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믿음이 없는 자들아, 까마귀와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목표를 알기는 하여도 갈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날아감으로 새롭게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환난과 시련을 당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불순물을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쓸모없는 것들을 빼내시는데 고난의 풀무를 통하여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환난을 면하고 고난을 피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세상에서 담대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오늘밤 내 영혼은이라는 생각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음을 막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오늘도 성도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 환난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식하며 감사할 수 있는 신앙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0-39) 아멘!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주의 은혜로 성도의 이름과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수준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연단을 위해 환난과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과 칼이 성도에게 허락됩니다. 그러나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내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란 세상의 난리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지 아니함이 복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성도로 세워지기 위해 오늘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예원가족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헤롯왕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또 베드로 사도를 옥에 가두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로마의 배후에 있는 세력은 무엇이며 또 그 세력이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야고보 사도의 순교와 베드로 사도의 구출 장면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가 가지고 사는 착각과 잘못된 기대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5. 베드로가 옥에서 구출 된 것이 모여 기도한 자들의 응답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오늘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들이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하나님 앞에 하는 성도 된 자의 마땅한 기도는 무엇입니까?

8. 오늘날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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