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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구출

본문 / 12: 1-19

 

 

 1. 배후 세력

오늘 본문에 보면 헤롯왕이 교회를 핍박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헤롯은 예수님 탄생 시에 있었던 그 헤롯의 손자입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칼로 죽이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베드로마저 잡아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요구하는 유대인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여 사형에 해당할 만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어준 빌라도의 모습과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세계의 여러 나라를 통치하였지만 그중에 가장 골치 아픈 나라가 바로 유대지역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땅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자신들의 율법에 반대되는 정책을 펴게 되면 목숨을 걸고라도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을 다스렸던 헤롯왕은 유대인들과는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자입니다. 그래서 사이가 좋지 않은 유대인들을 통치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그중에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니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이 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로마가 자신들의 통치를 위하여 그 통치에 방해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예수님을 처형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다른 배후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로마보다 더 큰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7장에 보면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7:15-22)고 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그 꿈은 왕이 꾸고도 잊어버린 것이었는데 거대한 신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 그리고 종아리는 철, 발은 철과 진흙이 함께 섞여 있는 신상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신상이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은 뜨인 돌이 날아와 그 신상의 발을 치니 그 신상은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그 돌은 큰 태산을 이룬다는 꿈이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일들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자신이 직접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네 짐승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것도 역시 장차 나타날 왕들에 대한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나라의 이름은 바벨론과 메데-바사 그리고 헬라제국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짐승과 신상의 네 번째 부분은 로마로 보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며 영원히 망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의 피로 만드신 것으로 봅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나라들과는 다른 영원한 나라이며 그 권세가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라의 출현 자체를 세상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왕들과 나라들이 일어나면서 하나님과 그 기름 부으신 자를 대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은 이미 창세기 3장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고 예언 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을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세상의 권세와 유대인들의 합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였던 것은 결국 이 세상이 누구의 지배아래 있었던 것인가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세력들은 예수님만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여전히 핍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도들을 위하는 이

다시 다니엘서 7장을 보면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7:21-22)고 합니다. 네 번째 짐승 이후에 계속하여 뿔들이 나옵니다. 뿔이란 세상의 권세인데 그 세상의 권세가 계속하여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죽는 것은 세상의 권세가 성도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김이 영원한 이김은 아닌 것입니다. 사단이 세상의 권세와 유대인들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켰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그 깊은 경륜을 결코 다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고서는 사단의 진영에서는 환호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로서 사단의 권세는 꺾어져 버린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예언 된 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까지는 아직도 이들의 활동들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하시면 이 모든 대적들을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대적들이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것처럼 야고보를 죽일 수 있으나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그 원한을 풀어 주고 계심을 교회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 위하여 베드로는 구출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순교함으로 대적들이 성도들을 이기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 반면에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구출됨으로 주님의 성도들의 원한을 풀어 주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로서 세상은 여전히 성도들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여도 아무런 일이 없다는 착각에 빠짐으로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히려 주님의 뜻의 성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전능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대적에게서 이기게 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손을 대었다가는 손이 마비되어 버리고, 뒤에서 욕하다가는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그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것처럼 나도 멋있게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에게 다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의 기도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기도하면 능력 받아서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다고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어머니 마리의 집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기도만 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말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자신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누워 잤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평안입니다. 내일 죽는다는데도 쇠사슬에 묶여서도 이렇게 깊이 잘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보다 앞서 야고보가 죽었으니 베드로 자신도 당연히 죽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누워 잔 것입니다. 누워 자다가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옥에서 기도하거나 찬송하거나 금식하거나 철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였기에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베드로가 그 기도하는 집 앞에 왔을 때 왜 믿지 못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1:6-7)고 합니다. 의심하고 구하는 것은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하기를 전심으로 믿고 기도하였다면 계집아이가 베드로가 왔다는 말을 듣고서는 버선발로 달려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도 베드로의 천사일 것이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혹시 베드로가 탈출하도록 기도하였다고는 하여도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 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이 구출 장면은 결코 그들의 기도의 응답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겠습니까? 야고보는 이미 죽었고 또 교회의 기둥과 같이 여기는 베드로도 잡혀서 이제 처형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소서!’ 하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라고 봅니다. 우리가 무슨 목표를 정하여 놓고서 데모하듯이 하는 강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한걸음도 갈 수가 없습니다.’ 하는 고백이 진정한 주안에서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란 날마다 쉬지 말고 이러한 기도를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들의 지식으로 자기들의 목표를 설정하고 나가는 종교 사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기도 많이 하는 나라는 세계상에 없을 것입니다. 새벽기도회를 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놀랍게도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가는 교회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27-31)고 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나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핍박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당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나 자기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담대히 증거 하게 하옵소서 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죽으면서 베드로는 구출됨으로 주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를 당하든 기적적으로 구출을 당하든 주님께서 실패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일을 하고 계심을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11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11:11)고 합니다. 이런 인식을 하고나서 자기의 구출사건을 간증하러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사라집니다. 이후로 베드로가 어디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살았는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드로는 오직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위하여 살다 가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는 순간 이미 우리는 세상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리고 거의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이렇게 주 앞에 나와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부름 받은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런 주님의 통치와 간섭이 보이지 아니한다고 해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옥에 갇혀서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그 순간에도 한숨 푹 잘 수 있는 하늘의 평안으로 지배당하였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늘의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주어지는 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주께 구하여야 할 참된 기도가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기도함으로 주님의 손길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헤롯왕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또 베드로 사도를 옥에 가두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로마의 배후에 있는 세력은 무엇이며 또 그 세력이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야고보 사도의 순교와 베드로 사도의 구출 장면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가 가지고 사는 착각과 잘못된 기대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5. 베드로가 옥에서 구출 된 것이 모여 기도한 자들의 응답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오늘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들이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하나님 앞에 하는 성도 된 자의 마땅한 기도는 무엇입니까?

8. 오늘날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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