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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의 일을 위하여 성령이 이르시되

본문 / 13: 1- 3

 

 

1. 썩어질 것과 영원한 것

우리는 지난주에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도 감옥에 잡아넣었던 헤롯의 최후를 보았습니다. 헤롯이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함으로 벌레가 먹어서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은 계속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핍박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도행전 122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핍박을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고 할 때에는 누가 감히 헤롯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벌레가 먹어 죽어간 것입니다. 유대의 온 땅을 벌벌 떨게 하던 헤롯이 벌레에 먹혀 죽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 가운데서 추구하는 것이 벌레가 먹어 버릴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19-21)고 합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교회에 헌금 많이 하면 하늘에 쌓여져서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부자로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옛날 사람들도 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땅에 묻으면서 세간을 함께 매장하기도 하였고, 부자들은 돈도 넣고 심지어 권력자들은 자기의 종들을 함께 묻어 순장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저승에 가서도 이 땅에서처럼 편하게 살라고 입안에 보물을 넣어 장사 지내기도 한 것입니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 같은 경우에는 그 무덤이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무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하에 흙으로 만든 사람 모형의 인형과 말과 병거가 얼마나 많은지 흙으로 된 인형만 발견된 것이 7,000개랍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 사람이 죽은 후에 보물을 쌓아두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 역시 썩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사람이 스스로 보물로 생각하는 것들은 다 벌레가 먹는 것입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자기 몸도 다 벌레에 먹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썩지 아니할 보물,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나라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이 모두 "성령이 이르시되"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비록 사람의 손으로 기록이 되었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지금도 이 성경을 읽고 듣는 것이 성령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하셨지만 이제는 교회에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13:2)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한 것을 전달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지시를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을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만 먼저 이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들을 보고자 합니다.

 

 

2. 성령의 인도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13:1)고 합니다. 바나바는 이미 아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자기의 밭을 팔아 바친 사람이며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울을 추천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니게르라는 말의 뜻 자체가 검다라는 뜻이므로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으로 보여집니다. 루기오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로 보기도 하고 또는 바울의 친척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등장하는데 헤롯의 젖동생이라면 왕궁에서 함께 자란 자일 텐데 그 왕궁을 마다하고 예수 믿고서 이들과 함께 한 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모임이란 모두 자기들의 취향 따라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기도 하고 흔히 끼리끼리 논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학연을 따라 모이든, 지연을 따라 모이든, 혈통을 따라 모이든, 같은 취미라서 모이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입니다. 흑인도 함께 있고, 헤롯의 젖동생도 함께 있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울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인종도 국가도 신분도 모두 뛰어 넘는 모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모인 것입니다. 그런 이들의 공통적인 고백들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들이 다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자기의 과거가 문제가 안 되는 곳입니다. 과거의 자랑스러운 이력도 소용없고, 과거의 어떤 잘못도 허물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는 그런 모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주의 이름으로 모였다는 우리에게도 과연 이런 모습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어떠한 과거의 이력과 업적과 대다한 선행들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뿐이며, 어떠한 죄악이라도 용서 받았기에 허물이 되지 않는 그런 모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 성령으로 인하여 모인 자들이 모임인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복음이 본격적으로 이방으로 향하게 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2절을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13:2)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금식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마치 기도를 들어 줄 때까지 부모 앞에 떼를 쓰는 아이처럼 밥을 굶는 것이 아니라 금식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하였기에 금식기도의 능력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의지하는 모습의 표현으로 하는 것이 이 금식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선교사로 지원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불러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시키실 일이 있어 따로 불러 세우는데 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선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미리 열두 제자들처럼 불러서 훈련을 시키시지 않으시고 왜 그렇게 핍박하도록 내버려 두시고 이제야 부르시는 것입니까? 디모데전서 1장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2-17)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역자를 부르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름을 받은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늘 성경의 위대하다고 보여 지는 인물들 앞에서는 항상 기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인물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 은혜의 부름은 부름 받은 이들의 잘남이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부르신 분이 얼마나 은혜가 풍성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지를 드러내시는 차원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증인의 모습이며 삶인 것입니다. 그런 주의 부르심을 아는 증인은 삶 가운데서 어떤 일을 만나도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 가운데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불만과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능력이 많아서, 열심이 특별나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자를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세움을 입은 것은 오직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에 자신이 딱 맞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은혜를 입고 보니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이 얼마나 좋았던지 자기가 죄인중의 괴수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의인을 구원하려 온 줄 알았을 때에는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였는데 이제 자신이 주님을 만나서 죄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자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드러내기 위하여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불러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증거 하는 일에 늘 자신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이런 꼴을 해가지고 예수님을 증거 한다는 말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데, 내가 무슨 예수를 전한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성령의 인도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아직도 세상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로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조건과 자격이 없어도 주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그래도 주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냥 복음 전파의 통로일 뿐이고, 복음의 나팔수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성령을 거스르고 근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성령을 받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방향과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또 본성적으로 세상의 것들을 더 좋아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이러한 우리를 결국 주님의 뒤를 따르게 만들고 마시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살아야 되는 방향으로만 나갔었는데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간섭하게 되시면 나를 죽이는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면 성령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께로 인도함을 받고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방향과 목표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일하심

그런 성령께서 일하시는 사도행전에서의 모습을 보면, 사도행전 1장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지금 사도행전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님이 증거 되도록 성령께서 적절하게 조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기 힘들었던 이방인의 경계를 어떻게 넘었습니까?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사마리아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 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에게 전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본성을 거슬러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성령께서 그들을 강권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이르시되 하는 말씀 안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이런 일들이 사도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내가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방향으로 삶이 인도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 자랑하는 재미로 살았다면 이제는 자기는 죄인임을 알기에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재미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남을 죽이면서도 자기는 살려고 했다면 이제는 자기는 죽을지라도 남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으로 간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을 따로 불러 세워서 일을 시키시는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서라도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은 은혜만을 붙들고 살게 하시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일하심이 우리를 살리고 또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주님의 일하심만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또 그런 주님의 통치만을 사모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범사가 오직 주님으로만 인도함 받고, 다스림 받는 사람이 삶이 되어서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고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헤롯왕이 벌레에게 먹혀 죽은 내용을 통해 우리가 항상 점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 합니까?

2. 오늘날 성령께서는 교회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신다고 합니까?

3. 안디옥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 된 교회라 하는 것과 그런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생각하는 금식과 주를 섬겨 금식하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은혜로 부르셔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6. 복음을 전할 때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어떻게 보여 지고 나타납니까?

7.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이 무엇이며 또 사도행전에서는 어떻게 드러났습니까?

8. 오늘날 우리에게 합력하여 선을 만드시는 성령의 일하심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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