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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 믿어짐

본문 / 13:32-42

 

 

1. 복음의 내용

스데반과 베드로의 설교나 바울의 설교의 핵심주제를 한 마디로 하면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본문의 끝에 보시면 이러한 일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는 뜻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나는 예수를 믿는데 너는 왜 믿지 못하는가 하면서 의아해 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믿으면 되는데 왜 그리 믿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믿어도 어떤 손해가 없으니 일단 한 번 믿어 보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바울의 설교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13절에서 31절까지는 아브라함의 선택과 출애굽, 가나안 정복과 사사시대 그리고 사울 왕과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요한이 증거 하였고, 성경에서 증거 한 대로 죄 없이 죽임 당하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간 자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증거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32절에서 바울 자신이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들이 증거 한 것과 같은 것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32절을 보면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13:32)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도 라고 하는 것은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가서 전하니 우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 하는 내용은 자신들, 즉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33절에 보면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13:33 )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성경을 근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의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2:7)는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인용을 보고서 말씀 드리겠습니다.오늘 본문 34절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13:34 )는 말씀은 이사야 55장의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55:3)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대로 인용을 하지 않습니다. 인용한 이사야서 앞의 말씀을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고 하여 값없이 나와서 먹고 마시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는데 이것이 확실한 은혜,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을 만민의 인도자, 즉 왕으로 세우신다는 것과 그리고 그 왕위에 대한 확실하고 견고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죽었습니다. 다윗의 무덤이 있는데 어떻게 영원한 언약이 되고, 만민의 왕과 인도자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윗에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다윗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 35절에 시편 16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6:10)는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의 이 시편이 예수님을 예언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어서 썩음을 당하였으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38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13:38-39)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이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죄 사람과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2. 믿지 못할 일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구약의 내용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구약의 내용에 예수라는 이름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본문을 바울사도가 메시아를 증거 하는 본문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우리가 시편 2편과 이사야 55장 그리고 시편 16편을 읽으면서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고 보여 지고 알게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증거 하고 우리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듣게 되어 알게 되는 것이지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그 내용이 예수님의 대한 내용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2편을 보면 1절부터 3절까지는 사단의 일이란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이 일어나서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는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면서 자기의 일을 이루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부터는 그 하나님의 일이란 한 아들을 보내심으로 모든 권세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장 권세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12절에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아니하면 망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을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망한다고 하는 내용으로 인용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바울이 말하는 시편의 이 말씀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말씀으로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참으로 이상합니다. 평생토록 성경을 외우다시피 하며 또 하나님을 잘 섬긴다던 그 유대인들은 왜 우리처럼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누구를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는 거부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하나님 그러면 옥황상제로 생각하든지, 조물주로 생각하든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그런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들마다 창조신화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 한다, 그러면 크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내일 교회가면 우리 회사를 위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모두가 우상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상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의 세계에서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개념이 마귀에게 속고 있었음을 참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심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참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평소에 상상하던 하나님과 너무나 다른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잘 되게 해주고, 우리 회사를 잘 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을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내 나라는 이곳에, 이 땅에,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은 좋아해도 예수님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에서 선전되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수님으로 선전된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들이 평소에 상상하던 그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와주신다는 그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그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믿는다는 자들에게 기쁨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던 것들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으신다고 하여도 과연 예수님이 주신다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서 영원토록 감사하며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치료받기 원하는 병은 낫지도 않고, 비염은 계절만 되면 돌아오고, 회사에서 승진은 되지 않고, 자식은 공부도 못하고, 무엇하나 나의 삶과 형편이 나아지는 것이 없어도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은 것으로 기뻐하며 사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고 는 하지만 과연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그 예수님을 제대로 소개하면 과연 좋아하면서 따라 갈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1절에서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이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13:41)고 합니다.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도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나왔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어떻게 믿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설교하던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설교하는 예수가 어떤 사람입니까? 얼마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나무에 달려 죽은 것은 성경에서 저주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성경이 아니라도 그 당시에 십자가 처형은 가장 처참한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로마를 반역하거나 살인 강도하던 자들의 처형방법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그렇게 힘없이 매달려 죽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것도 모든 사람에게 다 보여 주시지도 않고 제자들과 수백 명에게만 보이시고는 하늘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런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를 죽인 자들이 모든 권세를 쥐고서 예수를 믿으면 잡아 가두고 죽이겠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도 죽임을 당했고, 초대 교회 집사인 스데반도 순교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정말 믿지 못할 일인 것입니다.

 

3. 우리의 신앙

오늘날 우리에게는 믿지 못할 일이 없습니까? 그러나 복음이란 믿지 못할 일로 들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걸림돌을 제거하려고만 합니다. 믿지 못할 만한 내용은 빼 놓고 믿을 수 있는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주고 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 주는 그런 예수님으로만 소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예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 올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 순전히 간증들로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를 믿어서 어떻게 잘 되었다더라, 나도 예수를 믿고서 이렇게 잘 되었단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이신 말씀이 중심이 아닌 사람들의 개인 적인 체험이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근거로 무엇이라고 하면, 겪어 보지도 않고, 체험해 보지도 않고 그런다고 면박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꼭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저런 말 한다고 하는 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여도 내가 예수님을 따름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는 자기 사랑에서 예수님을 따라 나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전부 우상이요, 죄라고 우리가 머리로는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다 알고 또 말로는 다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사랑에 매달려 사는 것이 우리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가끔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사랑하고 살던 사람이 그것이 죄임을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나를 사랑하고 살았기에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죽으신 것이군요.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살고자 하는 것이 죄임을 알아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하는 생각이 아주 가끔 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은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내 실력이 아니며, 내 잘남도 아닙니다.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인데, 도무지 나를 부인하고 따를 수 없는 길인데, 도무지 하늘이라는 곳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땅에 것에만 관심이 가 있는 존재들인데도 아주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을 생각하고, 주를 따라 순종하고자 하는 생각을 들었다면 오로지 주의 은혜인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20)는 것이며,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대신 죽으심이 나의 의로움이 되시고 또 그것이 나를 붙들고 인도하고 살게 하는 은혜가 됨을 안다면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할 이유도 또 나의 삶에 가치를 둘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 알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이제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고백이 말과 혀끝으로 만의 고백이 아닌 믿음과 진실함의 고백으로 선포되어지는 날이 오늘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믿지 못할 일들이 오늘도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그 하나님의 열심히 일하시며 조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주님을 믿고 사는 예원가족들 되시어서 그런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수 믿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성경을 통해 알게 될 때 가지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드러내신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을 믿는 것을 왜 도무지 믿지 못할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6. 오늘날 우리의 잘못 된 복음과 또 바른 복음을 전할 때의 그들의 반응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7.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그래도 주의 은혜라고 느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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