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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두 사도를 따르는 자와 유대인을 따르는 자

본문 / 14: 1- 7

 

 

 

1. 선택에 대한 개념

사도행전 후반부는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본격적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오늘 보고자 합니다. 우선 지난주에 보았던 말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증거 하였는데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믿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계속 핍박하자 바울과 바나바가 발에 티끌을 털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고니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두 사도가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 합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을 것이요,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함에도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음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은 그 복음을 듣고는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구원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란,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인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해 택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나 자랑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택함을 입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택함을 입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택함을 유대인들은 율법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명기 7장을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7:6-8)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작다는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하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택함을 받을 만한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들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복음이란 그야말로 자기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기에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하여 얼마나 이를 갈며 미워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14:2)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복음을 믿지 않으면 그만일 텐데 왜 믿는 않는 이방인들의 마음까지 선동하여 악한 감정을 품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복음이 좋습니까? 나의 공로나 나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하여 평생토록 감사하고 기뻐하시겠습니까? 그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지금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2. 복음의 현장의 모습

복음은 좋지만 그러나 복음이 복음 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다 부수어 버리고, 우리의 자랑거리를 다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래도 정말 복음이 좋은가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내가 개 같은 취급을 받아도 마땅하게 여겨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처럼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좋사오니 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과연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배불러 있는 자들입니다. 그 배부름이 세상 것에 배가 불렀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배가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배가 불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배가 불러졌다면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할 텐데 우리에게서 그런 모습도 없는 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배가 부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미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상상임신과 같이 헛배가 부른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실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련하고 불쌍한 처지임에도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보고는 복음도 모르는 것들이 잘난 체 한다며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참으로 자기의 어리석고 무지한 모습을 모르는 그래서 아직도 교만과 자존심들이 펄펄 살아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복음을 좋다고 합니다. 그저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과 악함을 지적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복음의 능력이란 죄가 무엇인지도 함께 드러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가 말씀을 통하여 고발을 받으면 우리의 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고양시킬만한 디딤돌이 필요한데 복음이란 먹는 것과 입는 것으로 족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며,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며, 날마다 그 입을 닫고, 죽으라고 합니다. 처음에 복음이니 뭐니 할 때는 안식일은 예수님이 완성하셨고, 모든 율법을 예수님이 완성하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 만으로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라고 하니 좋았습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증거된 죄의 지적들은 하나도 자기에게 적용하지 않고, 자기가 편하고 유리한 것들만 우리의 것으로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부담되지 않는 말씀들만을 챙겨 듣습니다. 그러나 부담이 되는 것은 밀쳐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내가 이해하고 해석하고 내 수준에 맞추어 변질시켜 합리화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진리의 기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이미 우리 자신이 진리의 기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리냐 아니냐를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란 나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익의 기준은 물론 경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것과 정신적인 이익까지도 다 계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당시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발들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합리화 시키며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여기며 살고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복음을 듣고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으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다니면서 핍박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면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14:5)라고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선동을 받아서 바울과 바나바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이들이 돌로 치려는 것은 율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24:16)고 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예수가 한다고 하니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한 참람 된 죄로 여기기에 돌로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도망을 갑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14:3)라고 합니다. 그 성에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서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였는데도 돌로 치려고 하는 상황에서 표적과 기사는 없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부터 보면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14:6-7)고 합니다. 도망하여 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작정된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에 대하여 두 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14:4)고 합니다. 결국 바울의 설교를 듣고 두 무리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 곳에는 늘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이러한 분리가 일어나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현장인 이고니온에서도 그렇게 쫓겨납니다. 그래서 루스더라와 더베로 갑니다.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자 성안의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섬기려고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그렇게 대적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14:19)고 합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사람들을 끌고 와서는 바울을 돌로 칩니다. 그리고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리니 형제들이 둘러서 있으니 다시 일어나서 그 성으로 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극명한 대조와 분리가 일어나는 것이 복음이 선포되는 현장인 것입니다.

 

 

 

3. 분리

오늘 우리 안에 이러한 분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늘 이야기와 땅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어떻게 다른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이란 말은 구별됨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복음으로 구별하여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이방인 중에서도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길,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 종말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복음으로 불러낸, 종말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이란 결단코 자기의 자랑이나 공로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 되듯이 또 양과 염소를 분리시키듯이 주님께서 지금 자기 백성들을 불러내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양이고 염소이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31-46)고 합니다. 염소는 자기가 행한 일이 있다는 자들입니다. 언제 자기들이 하지 않았는가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양들은 자기들이 행한 것이라고는 없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한 것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행한 것이란 참으로 주님의 은혜로 행한 것들이기에 자기들의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과연 주 앞에 내 놓을만한 것이 있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주 앞에 내 놓을 것이 없는 자들입니까? 우리가 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주 앞에 어떤 공로나 자랑도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감사와 찬양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창세기의 궁창 위의 말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듯이 내 안에 살아계셔서 철저하게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을 나누고 계십니다. 나는 어느 쪽 편에 서 있는가를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내 안에 세상에 속한 것들은 모두 진멸하고 하나님의 것으로만 채워 가는 예원가족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의 택함이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까?

2. 대인들이 복음을 듣고도 싫어하며 이방인들에게까지 악감정을 품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우리는 무엇에 배불러 있으며 그 배부름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4. 복음 앞에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유대인들의 모습이 같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참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에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하시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나누어진 자들(양과 염소)은 어떻게 다른 반응이 보여집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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