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4,628
오늘 : 31
어제 : 373

페이지뷰

전체 : 78,757,670
오늘 : 190
어제 : 1,144

제목 /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로 믿노라

본문 / 15: 1-21

 

 

1. 율법과 은혜

우리가 얻은 구원은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 그러면 구원받는 사람은 믿어서 구원을 받고, 구원받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게 되면 이 믿음이라는 것 역시 믿어 구원 얻은 자들의 행함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어서라는 나의 행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구원 얻을 믿음이라는 것은 나의 의지적 결단이거나 또는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거나 하는 나의 조건적인 선행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의 믿음이란 우리의 행함과 대비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19-22)고 합니다. 율법이란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의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기에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율법의 행위와 대비가 되어야 그 의미가 분명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이 로마서에서 이것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이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큰 논란거리인 것입니다. 자신들과 이방인들이 구원에 대하여 그 어떤 차별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큰 충격인 것입니다. 자신들이 자부하던 율법과 제사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과 할례라는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기에 대단한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논란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오늘 말씀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일어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교회 안에 몇 대째 신앙의 가정으로 믿는 집안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흔히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예배당에 다녔다고 하는 그래서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그런 신앙은 없습니다. 어떻든 그런 분위기에서 태어나고 어려서부터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웃에 사는 어떤 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대대로 우상을 섬기던 집안의 사람이 인생의 황혼기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중직자를 세우기 위해 투표를 할 때가 되어서 투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표를 주겠습니까? 만약에 뒤에 온 사람이 교회 중직자가 되고, 먼저 있었던 사람이 그 중직자 투표에서 떨어졌다면 누가 제일 분노하겠습니까? 아마도 모태신앙으로 그 교회를 어릴 적부터 다니고 섬겼다고 하는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과연 그런데도 불구하고 감사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그 교회를 동일하게 섬기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15:1-3)고 합니다. 지금 안디옥 교회에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 몇 사람 내려왔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말이 예수를 믿어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으로 부족하니 모세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이들을 반박합니다. 그래서 여러 형제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요즈음도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노회나 총회로 상소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에서 어떻게 결정하는지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중요한 회의가 되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 총회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베니게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올라갑니다. 이 교회들은 예루살렘에서 핍박이 일어나자 추방당한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전통 유대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은 이방인들이 돌아왔다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4절부터 다시 보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15:4-5)고 합니다. 바리새파 중에서 믿는 자들이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들이 모여서 이 일을 의논합니다. 그리고 많은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먼저 이 일에 대하여 결론적인 말을 합니다. 7절부터 보면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15:7-11)고 합니다. 베드로 자신이 이미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성령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시는 것을 자신이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자기들이 받은 것과 동일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미 베드로에게 미리 이방인이 예수를 믿고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거 하면서 그들이나 우리나 주님께서 분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차별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와 우리 조상이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 그들이나 간에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고 합니다.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간에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말에 무리가 잠잠하여 집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하신 일을 이렇게 증거 하니 잠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의 하신 일을 증거 합니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보고하자 최종적인 결론을 야고보가 내립니다.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15:13-18)고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베드로가 이방인이 복음을 받는 것은 이미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것과 일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예수를 믿고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더 이상의 반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결국 예루살렘 회의에서 최종적인 결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계속하여 돌아다니면서 예수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니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언가 자신이 해야만 속이 시원한 것입니다. 그냥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마치 무능력한 것처럼 보이기에 그냥 싫은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 얻을만한 무엇인가를 하고 그 대가로 구원을 얻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만 뭔가 큰 소리도 칠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입니다.

 

 

3. 율법과 할례 그리고 믿음

그러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할례와 모세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할례가 먼저입니까? 율법이 먼저입니까? 할례가 먼저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은 430년 이후에 주어진 내용입니다. 그러면 할례가 먼저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먼저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먼저입니다. 믿음에 대해서는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라고 합니다. 그러나 할례에 대해서는 그 뒤에 창세기 17장에 보면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17:10-11)고 합니다. 다시 말해 율법보다는 할례가 먼저이고, 할례보다는 믿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이란 후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권고를 받아 하갈과 동침하여 86세 때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으시다가 아브라함 99세에 나타나셔서 할례를 행하고 또 행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례라는 것은 남자의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것이지만, 상징적으로는 남자의 생식기 전체를 잘라 내는 것입니다. 즉 할례를 행한 자는 생육이 안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고 이삭을 주시는 그 의미는 결국 아브라함 너희 혈통이나, 너의 육정이나, 너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시는 것을 보이시고자 할례를 행하시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할례를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된 자격이라고 믿고 또 이방인이 아무리 믿는다 할지라도 할례를 받아야만 유대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또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 사람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조건을 보시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무언가 잘 할 것 같아서 구원하신 것도 아닌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두면 나중에 갚아 줄 거라는 식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물을 하고 또 잔치에 초대하여도 누구를 초대합니까? 내가 은혜를 입었거나 아니면 나중에 무언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계산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미 은혜는 은혜가 아니라 삯이고 대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14:13-14)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잔치를 베풀고 사람을 접대 하고자 하면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을 초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언가 갚아 낼 것을 기대하고 대접하는 것은 이미 은혜의 대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의 식탁에 초대된 자들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들 자신들로서는 무언가 갚아낼 능력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인이었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가 주님의 잔치 자리에 부름을 받았다면 우리는 무언가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어느 누구도 잘난 사람이 없습니다. 은혜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개인이 자랑되지 않는 곳입니다. 어떤 공로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이것 하나가 교회의 하나 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편이 갈라지고 파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분리가 일어나고 하는 내용을 들여 다 보면 모두가 자기 잘났다고 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은혜를 입은 자라면 자기의 못남을 아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못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바울 사도와 십자가의 강도가, 베드로와 거지 나사로가, 바리새인과 이방인이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들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차별을 갖고 살고 있다면 우리는 세례 요한의 말처럼 독사의 자식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이 은혜가 우리를 지배하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우리의 삶에서 감사와 찬양에 넘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는 길임을 알아 우리의 매일이 주님께 이런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에 대해 가지는 잘못된 생각은 무엇입니까?

2.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큰 논란거리가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안디옥 교회에서 예루살렘 총회에 상정한 안건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4. 베드로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인간들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나님께서 아브라함과 13년간 교제를 끊고 후에 오셔서 할례를 행하신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주님이 베푸신 잔치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는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8. 주의 잔치에 초대된 자들의 특징과 자신의 본분을 잊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된다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 4월 26일 / 사도행전65. (행20:1-12) 위로가 필요한 세상에 나타난 하늘의 위로 관리자 2015.04.25 785
236 4월 19일 / 사도행전64. (행19:21-41) 복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소동 관리자 2015.04.18 557
235 4월 12일 / 사도행전63. (행19:8-20) 복음으로 인해 따로 세워진제자들 관리자 2015.04.11 416
234 4월 5일 / 부활주일 / 에스겔 37:1-14 골짜기에서 살아난 마른 뼈와 부활 신앙 관리자 2015.04.04 803
233 3월 29일 / 사도행전62. (행19:1-7)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관리자 2015.03.28 611
232 3월 22일 / 사도행전61. (행18:18-28)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관리자 2015.03.21 545
231 3월 15일 / 사도행전60. (행18:1-11) 내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심 관리자 2015.03.14 510
230 3월 8일 / 사도행전59. (행17:16-34) 인간의 철학과 하나님의 복음 관리자 2015.03.07 463
229 3월 1일 / 사도행전58. (행17:1-15) 다른 임금을 믿고 사는 자들 관리자 2015.02.28 405
228 2월 22일 / 사도행전57. (행16:25-34)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관리자 2015.02.17 826
227 2월 15일 / 사도행전56. (행16:6-15) 성령의인도함으로 나타나는 두 모습 관리자 2015.02.14 586
226 2월 8일 / 사도행전55.(행16:1-5) 주를 위한 바울의 자기 부인 관리자 2015.02.08 511
225 2월 1일 / 사도행전54. (행15:22-29) 짐 지우지 말고 구원을 받게 하라 관리자 2015.01.31 532
» 1월 25일/ 사도행전53. (행15:1-2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로 믿노라 관리자 2015.01.31 519
223 1월 18일 / 사도행전52. (행14:19-2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환난 관리자 2015.01.17 623
222 1월 11일 / 사도행전51. (행14:8-18) 구원 얻을 만한 믿음과 우상숭배의 믿음 관리자 2015.01.10 487
221 2015년 1월 4일 / 사도행전50. (행14:1-7) 두 사도를 따르는 자와 유대인을 따르는 자 관리자 2015.01.03 507
220 12월 28일 / 사도행전49 (행13:42-52)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관리자 2014.12.27 660
219 12월 21일 / 사도행전48. (행13:32-42)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 믿어짐 관리자 2014.12.20 650
218 12월 14일 / 사도행전47. (행13:13-31)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 관리자 2014.12.13 714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