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4,467
오늘 : 243
어제 : 339

페이지뷰

전체 : 78,757,029
오늘 : 693
어제 : 1,15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짐 지우지 말고 구원을 받게 하라

본문 / 15:22-29

 

 

1. 주를 믿는 자

우리는 지난주에 예루살렘 회의를 보았습니다. 이 회의는 아주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하여 율법적인 조건을 지키라고 하여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논란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베드로 사도와 야고보 사도에 의하여 오직 주 예수의 은혜(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에 가서 이방인 형제들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자들을 책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15:24-25)고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자들은 사도들이 보낸 자들이 아니라 임의로 나가서 믿는 자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기들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을 너희에게 보내기로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모든 이방인들이 오직 예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해결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이 나기까지 빌립의 전도와 베드로의 전도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인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커다란 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어떠한 벽이라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라도 결국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결정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15:28)라고 하여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다 성령을 받은 자들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결정한 것입니다. 이제 그 회의의 결론에 따라 이방인들에게 공식적인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다시 19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15:19-21)고 합니다. 이방인이 아무런 율법적 조건이 없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최종결론으로 내립니다. 그래서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듣고서 주 예수에게만 소망을 두고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것은 예수를 믿어서 자신에게 무언가 유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기웃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던 바울사도가 돌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나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다른 짐을 지워서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주 예수의 공로만이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듣고서 믿고 나온 자들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요긴한 몇 가지만 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른다고 해 놓고서 왜 몇 가지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2. 덕을 위해

사도들이 세 가지 규례를 말하며 삼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구원을 얻지만 그래도 신자라면 이 세 가지 정도는 행하면 안 된다는 의도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삼가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형제가 꺼려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삼가 함으로써 교회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위를 구원 또는 복과 연결 지어서 통제하려고 합니다. 즉 이렇게 하면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거나 이것을 안해야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게 되고 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것은 형제를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형제를 유익하게 하는 것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시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인가는 사도들을 세워서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하는 것처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시킨 대로 사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전하고 나누기 위해서 형제에게 나아가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께서 시키지도 않은 것을 제멋대로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 오늘 본문에 지키라고 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의 율법을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 때 유대인 성인 10명이면 회당을 하나 지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그곳에서 모세의 율법을 낭독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도 그것을 지키고 있는 것인데 반하여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한 공동체가 되었지만 그들은 우상의 더러운 것에 참여하는 것과 음행과 피 채 고기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만 금하도록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금령은 율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지켜야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금하라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이란 이방의 신들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신은 거짓이요 헛것인데 이러한 곳에 참예를 하면 그 우상도 신으로 인정하게 되기에 그런 곳에 참예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행이란 역시 그러한 이방인의 제사 후에 일어나는 음행들입니다. 그러한 음행이란 근친상간까지 있기에 그러한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매어 죽인 것과 피란, 유대인들의 짐승 잡으면 칼로 목을 쳐서 피를 흘리게 되지만 목을 매어 죽이면 피가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 피가 그 목을 매어 죽은 짐승의 몸에 배어 드는 것입니다. 레위기 17장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하시며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결국 피를 마시는 행위는 사실상 생명을 삼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며 또 피로서 상징된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 영역에 속하였으므로, 피를 마시는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신성 모독죄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피를 마시는 행위는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즐겨 행한 그들의 극악한 제사 의식이었기 때문에 그 피를 먹는 것 또한 그 신을 인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고린도전서 8장에도 보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8:1-13)고 합니다. 방금 예루살렘 회의의 결론은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런 것을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자를 위하여 금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시험에 들고, 실족케 될까봐 금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판매 되어지는 고기는 이방신에게 제사한 후에 나오는 고기이지만 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임을 알고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지식과 믿음이 자기에게 있다고 하여도 그러한 자유를 약한 자의 걸림이 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나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언가 좀 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좀 안다고 말한 그것이 약한 자로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으로 품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 앞에서 스스로 잘 점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주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형제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내 자유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행이나 목매어 죽인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에 서로가 배려하는 차원에서 서로 교제하기 위한 조치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 무엇을 주로 금하였습니까? 술과 담배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담배피우지 말라는 말씀은 없는데 마치 율법처럼 담배 피우지 않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표시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담배 끊고, 술 끊고 나서 예수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교사들이 처음에 왜 그런 것을 금하였을까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올 때만 하여도 조혼이 있어서 열 살 어린아이가 장가를 가면 상투 틀고 곰방대 물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이란 한두 잔이 아니라 말로 마시는 것을 보고서 이것을 금하여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중국에 들어간 선교사들이 중국에서는 아편을 금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어떤 식이 되어 버렸습니까? 율법보다 더한 금령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교회도 건물 내에 흡연실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라는 말이 아니라 담배 피운다고 교회도 못나오게 되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느 집사의 주머니에 담배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면 당장 그 날 안에 소문이 다 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이 교회에서 무엇을 해도 아직 담배도 못 끊은 주제에 하면서 아니꼬운 눈길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믿는 자의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것이 오늘 본문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이 나오면 또 어떻게 나옵니까? 나는 우상에 함께 참예하지 않는다, 너는 아직 제사를 거부 못한다면서, 하며 또 자기 의로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가면무도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의 약함과 실수가 노출되어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고 있습니다. 만약에 무슨 낌새만 있어도 누가 어떻더라는 말이 얼마나 빠르게 도는지 마음 놓고 말한 마디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속내를 털어놓지는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삶 가운데서 심각한 문제를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만 한숨을 쉬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누가 예배 중에 살짝 한숨을 내 쉬거나 또는 기도 중에 눈물 흘리며 기도를 하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하나님 앞에 저질렀기에 저럴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붙잡고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고 또 따져 묻는 물음에 마지못해 그 사람이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으면, 한다는 말이 그것 봐라, 내가 기도하라 그랬지,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심정을 털어 놓은 사람이 교회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외모를 따라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 수준에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상대방을 섬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상대방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요,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물론 진리와 비 진리는 날카롭게 분별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연약한 죄인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섬기라고 우리를 먼저 세우신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23-33)고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무엇을 먹든지 입든지 말하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성경에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된 자라면 나중 된 자 보기에 덕이 되는 사람을 사시고, 우리가 나중 된 자라면 언제나 우리의 주께만 소망을 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얹혀 주는 신앙이 아닌 짐을 나눠지고 함께 세워져 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라 믿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예원가족들 가운데 충만하여 매일의 삶이 주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루살렘 회의의 안건과 결론은 무엇이며, 그 결정은 누구의 뜻이라고 합니까?

2. 오늘날 주께로 나오는 자들과 당시에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3.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고서는 여전히 몇 가지 금령을 두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사도들이 정한 세 가지 금령에 대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5. 울이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나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 뜻은 무엇입니가?

6.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당시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오늘날 교회가 가면무도회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8.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 4월 26일 / 사도행전65. (행20:1-12) 위로가 필요한 세상에 나타난 하늘의 위로 관리자 2015.04.25 785
236 4월 19일 / 사도행전64. (행19:21-41) 복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소동 관리자 2015.04.18 557
235 4월 12일 / 사도행전63. (행19:8-20) 복음으로 인해 따로 세워진제자들 관리자 2015.04.11 416
234 4월 5일 / 부활주일 / 에스겔 37:1-14 골짜기에서 살아난 마른 뼈와 부활 신앙 관리자 2015.04.04 803
233 3월 29일 / 사도행전62. (행19:1-7)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관리자 2015.03.28 611
232 3월 22일 / 사도행전61. (행18:18-28)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관리자 2015.03.21 545
231 3월 15일 / 사도행전60. (행18:1-11) 내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심 관리자 2015.03.14 510
230 3월 8일 / 사도행전59. (행17:16-34) 인간의 철학과 하나님의 복음 관리자 2015.03.07 463
229 3월 1일 / 사도행전58. (행17:1-15) 다른 임금을 믿고 사는 자들 관리자 2015.02.28 405
228 2월 22일 / 사도행전57. (행16:25-34)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관리자 2015.02.17 826
227 2월 15일 / 사도행전56. (행16:6-15) 성령의인도함으로 나타나는 두 모습 관리자 2015.02.14 586
226 2월 8일 / 사도행전55.(행16:1-5) 주를 위한 바울의 자기 부인 관리자 2015.02.08 511
» 2월 1일 / 사도행전54. (행15:22-29) 짐 지우지 말고 구원을 받게 하라 관리자 2015.01.31 532
224 1월 25일/ 사도행전53. (행15:1-2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로 믿노라 관리자 2015.01.31 519
223 1월 18일 / 사도행전52. (행14:19-2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환난 관리자 2015.01.17 623
222 1월 11일 / 사도행전51. (행14:8-18) 구원 얻을 만한 믿음과 우상숭배의 믿음 관리자 2015.01.10 487
221 2015년 1월 4일 / 사도행전50. (행14:1-7) 두 사도를 따르는 자와 유대인을 따르는 자 관리자 2015.01.03 507
220 12월 28일 / 사도행전49 (행13:42-52)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관리자 2014.12.27 660
219 12월 21일 / 사도행전48. (행13:32-42)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 믿어짐 관리자 2014.12.20 650
218 12월 14일 / 사도행전47. (행13:13-31)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 관리자 2014.12.13 714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