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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본문 / 16:25-34

 

 

1. 주 예수

2015년 새 해가 밝은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이라는 것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그 달을 첫 달이 되게 하셨습니다(12:2). 기존의 달력이 있음에도 유대인들만의 새로운 달력을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출애굽 한 것을 새로운 출발로 보는 것입니다. 출애굽 전에는 바로가 주인이었으나 출애굽 후에는 그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날짜가 바뀐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뀐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유명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기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만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라.’ 하면 하는 말이 믿으면 무얼 주는데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예수 믿으라고 또는 교회오라고 하면 노골적으로 그 교회 가면 뭘 주는데요?’라고 묻습니다. 요즈음은 워낙 교회들이 선물공세를 하니까 더 좋은 선물 주는 곳으로 골라 가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름성경학교 같은 행사를 하면 치열하게 선물 공세를 합니다. 그리고 몇 명 이상 정도하면 어떤 선물로 주겠다고 하며 그 선물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교회 출석이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처럼 노골적으로 뭘 주는 데요?’라고 말하지는 않아도 내가 교회 나가서 무슨 덕이 되는가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기에 교회에서도 행복한 가정생활 세미나, 지역주민을 위한 예식장 개방, 도서관 운영, 공부방 운영, 영어 주일학교 등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런 일들이 나쁘다 또는 좋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런 것을 안 해줘도 주를 찾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이런 것을 해도 주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것이 목적인 자들이 아니라 주를 믿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가정도, 자기의 직장도 부인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나의 행복을 위한 가정, 내가 살기 위한 직장, 나에게 이익을 주는 종교였다면 이제는 그러한 옛 주인이 심판 받았기에 참된 주인이신 예수님을 모셔야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우주의 주인이 오셨기에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는 것은 참된 주인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씀은 주인을 바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어오든 것들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정생활도 하지 말고, 직장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그러한 삶은 결국 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바뀜으로 거기에 우리의 삶의 목표와 가치가 없고, 그런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온 모든 삶의 형태를 회개하고서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인간 스스로 주인을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주인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 어떻게 주 예수를 믿는 기적이 일어나는지 지난주와 연결하여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주인 바꾸기

지난 시간의 말씀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아시아에 복음을 증거 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와서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데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의 일행을 괴롭게 하므로 귀신을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이 자기의 이익이 끊어져 버린 것을 알고서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매로 치고 감옥에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이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자기의 이익이 진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면서 무어라고 하면서 고소하는 것입니까? 본문 앞 20절부터 보면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16:20-21)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고발은 우리가 지금 잘 먹고 잘살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와서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들의 고발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장에 보면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24:5)고 합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데 나오는 반응들입니다. 물론 복음 전파로 예수를 주로 믿는 자들도 나왔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복음이란 걸림돌이요, 받지도 행하지도 못할 풍습이요, 극히 위험해서 걸리면 죽고 마는 전염병과 같은 것이라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바뀌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믿고 살아왔던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가 다 나의 뜻대로, 나의 이익대로 움직여져야 진리로 인정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내 자신과 가정과 직장과 나라가 더 안정되게 발전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예수를 믿어 왔고 또 거기다가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고 믿어 왔는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렇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반발이 우리들에게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반발이 일어나는 또 한편으로는 당신은 그런 말해서 먹고 사는 목사니까 그렇지 만약에 당신도 교회에서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분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숨 줄을 여러분의 직장이나 가정이나 국가에 두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면, 목사는 목사의 목숨 줄을 교회나 교회의 월급에 두지 말아야하는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여도 그 모든 수익이 주님의 은혜로 고백되는 자가 신자이고, 목사가 교회에서 월급을 받아도 교인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직장상사가 우리의 주인이 되어 버리고, 목사는 목사에게 월급 주는 교인이 주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주인이 아니라 직장 상사가 또는 교인들이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과연 받고 행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의 마음이 우리들에게도 들지 않습니까? 나의 이익과 소망을 끊어버리려 하는 저 원수를 물리치자는 마음이 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장래에 대하여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면 혹 성도님들 중에 목사 당신의 장래는 교회에서 보장해주니 그런 말 하지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음을 듣게 되면 돌로 치든지 회개하든지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 들으면 돌을 들어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돌로 치고 싶어도 어찌 치겠습니까? 그러니 잠깐 돌을 내려놓으시고 가만히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교회에서 위임을 받아 노년의 생활을 보장받아 놓고서 성도들에게 예수 믿고 삽시다.’고 하면 무언가 목사는 다른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실까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이런 말씀을 전해야 할지 생각도 하게 되지만 그래도 주의 종이니 전해야만 하는 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제가 주의 종이 아닌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씀을 전하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 또한 성도들의 기분을 맞추면 쫓겨나지 않을 것이기에 잘 보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나저러나 간에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있고, 기도하고 정성을 바치면 알라딘의 램프의 지니 처럼 주인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면서 나오는 그런 예수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죽는 것도 주님의 은혜임을 알아 사나 죽으나 이제는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하고 사는 것이 주 예수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주인이 죽으라면 죽는 것이고, 살라면 사는 것입니다. 하게 하시면 하고, 막으시면 안하고, 아시아로 막으면 가지 않고, 마게도냐로 열리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예수를 믿는 자세요, 모습인 것입니다.

 

 

3. 주인이 바뀐 자의 삶

이런 주 예수를 믿는 자의 자세가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산상수인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오셔서 세우시는 천국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그런 천국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모습이 산상수훈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둥병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 마음의 상태는 예수님이 말씀한 복 있는 자와 너무나 달랐고, 우리가 소원하고 구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천국 백성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 취해 살아가는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산상수훈에 의하면 모든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들조차 모두 부정한 자가 되어 버리는 말씀입니다.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지적하셨기에 아무리 완벽한 율법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문제는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문둥병자처럼 부정한 자임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8:1-3)고 합니다. 문둥병자는 그 몸 자체가 더럽고 부정한 자입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는 만질 수도 없습니다. 같이 부정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둥병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야만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더러움이기 때문에 깨끗함은 나올 수 없는 저주의 자식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날마다 내 속에서 삐져나오는 것이 사랑과 용서와 겸손이 아니라 분노와 시기와 보복과 미움뿐이라는 것을 바라보며 나에 대해 절망해야 합니다. 나의 그 어떤 실천과 행함으로도 의에 다가갈 수 없고, 조금이라도 깨끗해 질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문둥병자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이런 문둥병자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의를 향한 간절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나를 깨끗케 해주십시오.’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문둥병자는 자신이 예수님께 어떤 요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둥병자로서 깨끗케 된다는 것은 감히 기대할 수 없는 과분한 것이기에 다만 주님의뜻에 맡길 뿐이라는 것이 예수님께 나온 문둥병자의 태도였습니다. 바로 주님의 주권, 즉 주인으로 인정하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이라고는 하지만 죄인으로서의 이런 마음 자세가 없으며, 예수님을 주라 부르면서도 이와 같이 주인으로 대접하는 모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부르면서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란 원하는 것을 모두 구할 수 있고, 구하면 받는 것이 특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사단에게 속하여 살아가는 세상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주어져 있습니다. 즉 자녀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좇는 것을 좇지 않는 것이고, 세상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둥병자는 자신의 원함이 아닌 주님의 원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인을 아는 자의 삶입니다. 오직 주님의 뜻에 맡길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둥병자의 놀라운 믿음입니다. 자신을 알고 주인을 알기에 나올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백부장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8:5-13)고 합니다. 이 백부장도 예수님을 주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님을 주로 알아보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둠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이방인이 들어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면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전히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있다면 유대인들이 받은 책망을 동일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와 의와 심판관에 대하여 책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주님 내가 정말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어찌 하여야 합니까?”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고 그럴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이 바른 신앙생활 하고 있다고 여기고, 그 안정된 생활을 좀 더 확실하게 보장하여 줄 그러한 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결코 주인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정말 자기 자신에게 절망할 대로 절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사는 것이 죄 뿐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여 어찌 하여야 합니까.’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간수입니다. 지켜야 할 죄인들을 다 놓쳐 버리고 이제 자신이 사형을 당해야 하는 입장에서 깨끗하게 자결하겠다고 칼을 빼드는 순간 바울이 말리는 것입니다. 이때 엎드려 간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고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예수를 주로 믿고서 자기 온 집안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죽음의 상황에서 예수를 믿고 나니 그 구원으로 인하여 온 집안이 크게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의 간수와 그 가족들처럼 그동안 내가 주인 되어 살아 온 모든 삶의 피곤함에서 예수를 주로 믿는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주 앞에서의 우리의 본질을 깨닫고 또 그런 우리에게 오신 주의 은혜를 알아 남은 삶에서 오직 주의 은혜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여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존귀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출애굽과 우리의 구원의 새 출발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2. 구원의 새 출발이 가지는 참 의미를 모를 때 나타나는 모습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3.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뜻과 그것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복음을 듣고 고발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5. 주 예수를 믿는 자의 자세와 모습은 어떠해야 한다고 합니까?

6. 태복음 7장까지의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마태복음 8장의 문둥병자의 등장의 연관성은 무엇입니까?

7. 문둥병자와 같이 주인을 바르게 아는 자로서의 신앙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본문의 간수와 같은 모습이 되기 위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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