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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른 임금을 믿고 사는 자들

본문 / 17: 1-15

 

 

1. 말세의 삶

새해가 되면 교회는 새해의 비전과 계획을 발표하고 또 개인 적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이루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러한 꿈과 희망을 말하기 전에 오늘의 현실을 종말로 보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목록이 19가지나 되는데 이 목록 중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씀은 한 가지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고 하는 모든 말씀이 다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말세의 고통 하는 때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말세에 이 땅의 꿈과 희망을 말하기 전에 오늘밤에 내 영혼은?” 이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때마다 전하는 저는 이 설교가 저의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하고, 듣는 여러분은 마지막 설교를 듣는 마음으로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오늘 말씀을 나누고 제가 죽을 수도 있고 또는 여러분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마다 어떤 인간적인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거나 또는 교회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성공하는 비법까지 배워서 기분 좋게만 살다가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어 버릴 수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13-21)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무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모은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란 언제나 종말론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말세의 고통 하는 때에 예수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고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 예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하신 것입니까?

 

 

2. 예수 믿는 큰 복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17:1-3)고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후에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한 후에 데살로니가로 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일에 걸쳐서 성경을 가르치고 강론하였습니다. 그 주제는 성경의 뜻을 풀어서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언하고 자신이 전하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나시고 공생애 3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후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 이 분이 바로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 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뭐 그 정도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우리가 다 알고 믿는다고 하는 이 말씀에 우리의 생명을 거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를 죄에서 사하시고, 부활하게 하실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슴 뛸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말씀에 관심이 없이 시큰둥한 반응이라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든지 아니면 심각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러한 말씀을 동일하게 들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를 따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여 몰아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말씀을 들었는데 이렇게 두 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 4절부터 보면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17:4-7)라고 합니다.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바울과 실라는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아 바울과 실라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은 오히려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발의 내용이 6절과 7절의 내용입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든 자들이 이곳에서 와서도 소동을 일으킨다고 하며 고발하는 내용이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한다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세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만이 왕인데 어떻게 로마의 식민지에서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왕이 있을 때에 만약 다른 임금이 추대하려고 하다가 발각되면 역모 죄로 삼족을 멸하는 것이 국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로마의 황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임금 곧 예수라는 임금이 있다고 하니 이런 자들은 로마의 황제를 거역하는 자들이기에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유대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으실 때 이미 빌라도는 예수님에게는 정치적인 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적인 죄라면 유대인들에게 너희의 법이 있으니 너희 법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법대로 하면 사형에 해당되는데 자기들이 로마의 통치하에서 사형권이 없으니 허락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여론에 못이긴 것입니다. 만약 민란이라도 일어나면 로마에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니 자신은 책임이 없다하면서 손을 씻고 사형에 처하도록 넘겨준 것입니다. 이때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 하는 중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27:11)고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고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네 말이 옳도다”(27:11)고 대답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빌라도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8:36)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를 그렇게 고발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임금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시편 2편에 보면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2:1-12)고 합니다. 여기서 두 종류의 왕이 나옵니다. 세상의 왕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따로 세우시는 왕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이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은 자 즉 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따로 세우신 왕이 철장권세를 가지고 세상의 왕들을 질그릇 같이 부수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아 너희가 그 아들에 입 맞추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이 급하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요, 주이심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말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아시기를 바랍니다.

 

 

3. 누가 왕이신가

사단은 이러한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간에 예수만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왕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과 왕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결단코 주님을 의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1-3)라고 합니다. 여기서 권세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는 공중의 권세인 이 세상의 신, 즉 마귀가 왕 노릇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과 방향이란 오직 이 세상의 임금에 속한 내용이었습니다. 즉 땅의 것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있는 자들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고 합니다. 정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왕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 이루어내신 일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것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의 임금이 누구인 것입니까? 우리는 말씀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제대로 알게 되면 결국 두 편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어디를 가더라도 두 편이 나누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씀을 인하여 시기하고 배척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과연 그러한가 하고서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17:10-15)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실라를 밤중에 베뢰아로 보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니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많이 믿었다고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며 따르는 무리들입니다. 그런 반면에 이러한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이 또다시 이곳까지 와서 소동을 일으키자 바울을 또다시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세상 임금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두 편으로 나누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어지듯이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분명하게 나누는 능력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말씀에 대한 관심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어떤 자들인가를 알아 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참으로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갈수록 다른 것에 관심이 덜하여 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의 임금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 임금이신 예수님만을 믿고 섬긴다면 우리 모두 함께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의 임금이 아닌 다른 임금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서 섬기며 또 그 왕 되신 주의 뜻과 소원을 나의 소원으로 삼아 매일 그 말씀으로 시비 걸며 소동케 하는 유대인들이 아닌 항상 그 말씀이 그런가 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는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생각과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2. 우리가 듣고 또 아는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 동일한 복음을 듣고도 바울을 고발한 자들의 고발 내용은 무엇입니까?

4. 바울을 고발한 자들의 고발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우리가 이 종말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큰 복이 되는 것입니까?

6. 세상의 왕들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떤 자들이었으며, 믿은 후에는 어떤 자들이 되었습니까?

8. 바울과 실라의 복음 선포를 통해 두 왕을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나누어집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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