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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심

본문 / 18: 1-11

 

 

1. 후원과 동역자

우리는 지난주에 바울사도가 아덴에서 전도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서양사상의 발원지라고 하는 아테네에서 얼마나 종교성이 대단한지 이름 모를 신에게까지 단을 쌓아서 신을 위하는 모습을 보고서 바울사도는 참되신 신을 소개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신에게 무엇을 먼저 드려서 신으로부터 보답을 받는 그러한 신은 우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이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 주시고 또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와 복음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온 세상에 분명한 증거를 주셨는데 그 증거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신 살아나신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한 날을 정하셨기에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에 대하여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다시 듣겠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바울사도가 그곳에서 떠나자 바울을 가까이하여 믿는 자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사도가 가는 곳마다 핍박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바울사도를 영접하며 그의 전하는 복음을 믿는 자들도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핍박하고 조롱하는데 어떻게 믿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나오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본문에 보면 바울사도가 아덴에서 고린도로 갔는데 바로 그 고린도에서 있었던 일들입니다.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아가야 주의 수도이며, 총독의 거주지였습니다. 고린도는 부유한 상업 도시이며, 부도덕성 때문에 악명을 떨치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들이 세상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도착한 바울사도는 외롭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후원하는 자가 없어서 스스로 일을 해야 했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입니다. 이들은 주후 49년에 로마에서 추방당한 자들로 보여 집니다. 성경에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한 내용이 없이 함께 동역한 것으로 보면 이들은 이미 로마에서 복음을 듣고서 믿는 자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울사도와 이들 부부의 만남을 보시면 둘 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바울사도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지 않고 마게도니아 지역으로 왔는데 가는 곳마다 핍박이 심하여 이제는 고린도지역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역시 로마의 본토에서 추방이 되어 왔으니 어렵기는 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복음을 증거 하는데 이들 부부는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18:24-26)고 합니다. 이들 부부가 저 유명한 아볼로에게 성경을 풀어 해석하여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6장에도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16:3-4)고 합니다. 바울은 이들 부부를 자신의 동역자로 소개하며 이들 부부와 함께 일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들과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러는 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바울에게 옵니다. 이들이 빌립보 교회에서 연보한 것을 가지고 바울사도에게 왔기에 이제부터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후11:9)고 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연보를 받지 않고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바울의 부족을 보충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장에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4:15-16)고 하여 바울의 사역에 후원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5절에 보시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18:5)라고 합니다. 이제 물질적으로 후원도 되었고 복음만 증거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믿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군대도 전쟁 중에 보급품이 떨어지면 사기가 떨어지지만 그러다가 보급품이 들어오면 사기가 진작이 됩니다. 그런데 복음이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복음의 증거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열심

지금까지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이 가는 곳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 일행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죽을 고비를 당하고 감옥에도 갇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골라내시는 일에는 실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감옥에서 간수장을 만나게 하시고, 아덴에서는 관리인 디오누시오가 믿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증거 되는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13:10-17)고 합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너희와 그들을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제자들을 말씀하고, 그들이란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 자들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말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눈뜨고, 스스로 알아들어서 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있을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어서 보고 듣고 깨달아 온 사람이 있다며 그런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쌍하지 않으니 긍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도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들어 올수 없기에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하여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전도는 스스로 도를 깨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택하신 자에게, 복음전하는 자를 보내어 십자가의 도를 듣게 하시고, 그 듣는 자의 귀와 마음을 열어 믿게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지 못하는 자는 철저하게 듣지 못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전도 방법인 것입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18:6)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밝히 유대인들에게 증거를 하자 유대인들이 대적하여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듭니까? 더 오래참고, 겸손하게 기다리며 복음을 더 잘 전해야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믿을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어떻게 합니까? 옷을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갑니다. 옷이나 발에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은 분리와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가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마지막 종말의 심판에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또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고 또 믿지 않고를 결정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이 아니라 누가 주의 백성인가를 골라내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을 훈련시켜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주의 백성인가를 골라내는 것이 복음의 기능인 것입니다. 정말 그러한지 다음 말씀인 7절부터 보면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18:7-8)고 합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옷을 털어버리고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 거합니다. 이 사람은 회당 바로 옆에 사는 사람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기에 바울을 영접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대적하며 반대하는데 오히려 회당장은 온 집안사람과 함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믿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적대해야 할 회당장이 믿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따로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9절부터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18:9-10)고 합니다. 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격려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도 대적들의 훼방이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을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지금 고린도에 있으면서 약하며 두려워 심히 떨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바울사도에게 두려워말라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바울에게 두려워말고 잠잠하지 말고 전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유대인들의 대적을 인하여 옷을 털어버렸지만 고린도 지역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바울에게 지금 이 주의 일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3. 믿는 자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아니 이것을 묻기 전에 과연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까? 또 믿는 자라면 어떤 예수를 믿으십니까? 내가 무언가 갖다 바치면 복을 주는 그런 예수입니까? 아니면 나의 시간과 재산과 생명까지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 예수를 믿으십니까? 만약에 후자라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시라고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내 인생을 내가 쥐고서 가려하고 있다면 내가 과연 주 예수를 믿는가 아니면 내가 주인이고 예수를 종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인지를 한 번 더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속에 선한 것이 없음을 인정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처럼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인 줄 인정하십니까?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소화가 되고 뒤로 배설되기에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작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사람의 속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15:19)라고 합니다. 다른 말씀에 비추어보면 남을 미워하여도 살인, 음욕을 품어도 간음, 도적질해서가 아니라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이러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의롭다하여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백성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달리 소망이 없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할 틈이 없습니다. 주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세상에서 그럴듯한 존재로 사는 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주님께 개 취급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래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는 그런 주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이 예수님께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평가를 받은 것처럼 우리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평가 받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과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는 비록 못났지만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사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 이야기 할뿐입니다.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것임을 알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오직 주님만 자랑할 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아직도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하지 아니한 것은 아직 하나님의 백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제는 바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와 기쁨으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또는 못 얻든지 항상 그런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께서는 그런 우리의 입술을 사용하시고 또 우리의 손짓 발짓 하나까지도 들어 쓰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님의 거룩한 도구와 통로 되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일에 아름다운 동역자로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종교와 복음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인 아굴라와 브르스길라가 만날 때에 그들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3.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전도라는 방법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5. 바울이 고린도에서 대적 하는 자들 앞에서 옷의 먼지를 떨어 버리고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내가 진정으로 주 예수를 믿는 자인가를 무엇으로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것입니까?

7.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합니까?

8.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은 어떠했으며 그 신앙의 믿음이 크다 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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