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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소동

본문 / 19:21-41

 

 

1. 소동과 요란함의 현장

우리는 교회가 부흥하려면 은혜롭고 평안하여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교회는 부흥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에는 언제나 분리가 일어나고 소동과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에서도 에베소의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데 마음이 굳어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을 비방하니 바울사도가 복음을 듣는 자들을 따로 세워 증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선 이러한 소동과 요란함과 소요들이 일어나는 상황을 먼저 보고서 왜 그런 소동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도 틀림없이 이러한 소동이 일어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먼저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2:1-3)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유대의 왕으로 헤롯이 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였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것입니다. 헤롯의 아들이 태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구족을 멸할 모반이요 반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소동은 이미 구약에서 다 예언이 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특히 시편 2편에 보면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2:2)라고 하여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심 자체가 가장 큰 소동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건과 소동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러한 일을 아주 작고 미미한 사건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외에는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와 사역에 관하여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분명 역사가들이 있었습니다마는 그들의 역사의 중심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황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식민지인 유다의 왕으로 있는 헤롯과 그의 부하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소식을 듣고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났겠느냐고 물어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들이 그렇게 알고자 하는 이유는 그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경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세상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물론 더 넓게는 구약에서도 끊임없이 메시아의 오심을 방해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은 파기될 수가 없기에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부패하고 반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들을 통하여 언약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가 온통 소동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올무에 걸어 죽일까 하면서 여러 가지 애매한 질문들을 하며 그 대답에서 책을 잡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질문하고,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자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문제를 들고 나와서 올무에 걸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잡아 죽일 도리가 없게 되자 이제는 성전을 파괴하려고 한다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처형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빌라도에 의하여 거부당하자 민중들을 동원하여 소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소동과 소란을 일으켜서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하는 수 없이 민란이 날까 두려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동이 복음이 증거 되는 모든 현장에서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소동이 일어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는 소식을 증거 하는 곳곳마다 이러한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회개하는 소동으로, 어떤 자들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복음 전하는 자들을 죽이려고 소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보아오면서 그러한 내용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분리가 일어나고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현장인 것입니다.

 

 

2. 무지한 무리들

그러면 왜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 것인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21절부터 보면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19:21-22)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면서 연보한 것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그리고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합니다. 이 로마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서도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으로 사도행전의 끝이 됩니다. 그러나 아직은 에베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곳에서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여러 직공들을 거느리고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파는 사람입니다. 아데미란 신은 헬라어이고, 라틴어로는 다이아나입니다. 다이아나는 수렵의 처녀신인데 비하여 에베소서에서 다이아나 즉 아데미라고 섬기는 신은 소아시아 지역의 다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모든 여신의 어머니 신으로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신상들은 주로 가슴이나 배가 풍만합니다. 그래서 다산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자식도 잘 낳고, 짐승들도 새끼를 잘 낳고, 모든 생산물이 많이 나오도록 한다는 신입니다. 이런 신의 형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데메드리오입니다. 이 사람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23절부터 보면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19:25-29)라고 합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아데미 신으로 인하여 우리가 부자가 되어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난데없이 이상한 놈들이 와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니 우리의 직업이 천하게 될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가 이렇게 사람들은 선동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기의 이익문제입니다. 자기들에게 손해가 오는 일이라면 막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움직임은 자기들의 신들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신의 뜻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종교심까지 엮어서 이야기하면 이것은 말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자 사람들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는 구호까지 외쳐가며 소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꼭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영문도 모르고 그냥 따라나서는 자들이 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그냥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중심리인 것입니다. 그냥 휩싸여 가는 것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 보면 주인공은 아이들의 놀림을 피하여 달리다가 자신이 달리기를 잘 하는걸 알게 되고 나중에 공허함과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3년간을 달리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여기며 함께 뛰며 따라 달리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냥 뛰는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사람들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오늘 본문에도 있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19:32)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소동하는 이유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태반의 무리는 그 소동이 왜 일어나는 지도 모르고 따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냥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신앙을 가진 것도 없는 것 보다는 나으니 믿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이 배웠다고 하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연예인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하는 그냥 따라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이익에만 또 자기 목적과 소원에만 관심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 신앙의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소동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디로 휩쓸러 가고 있습니까? 어떤 소동에 요동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거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소란하고 난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이 있고,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온갖 재난과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소동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것이 신이 아닌데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쫒아 가느라고 소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을 섬기지 않는다고 안심하시겠습니까? 절에 나가는 사람이나, 성당에 나가는 사람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는 것이지, 나는 교회 다니니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들이나 신부님들도 그런 형상물이 우상인줄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없애지 아니하는가 하면, 심신이 부족한 대중들의 심신을 도와주기 위한 방편으로 있는 것이지 그것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형상물에 절하지 아니한다고 우상숭배자가 아니라고 장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1-5)고 합니다.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탐심을 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만이 땅의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것이 있습니다. 땅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뿐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란 단지 형상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관 사고방식 윤리와 도덕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람들의 이익과 편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 지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익에 조금이라고 손해가 온다면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올 때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연 이러한 소동들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벌써 이 모든 것들이 다 토착화 된 것입니다. 이 땅의 민중들이 소동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 타협되어진 것입니다. 불자이든, 천주신자이든, 기독교인이든 그저 나의 이익을 보장하여 주고, 적당하게 종교생활 하면 극락도 천국도 보장하여 주는 그렇고 그런 종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되고, 죽어서도 좋은 곳에도 가고 이 정도라면 보험 드는 셈치고 한번 종교 가져보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인기 있는 연예인이나 훌륭한 운동선수들 그리고 정부의 높으신 분들도 집사니 장로라고 하니 교양도 있어 보이고, 사회적인 신분도 있어 보이니 기독교도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에 소요가 일어나 모인 군중들의 태반이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따라 나선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예배당에 이렇게 모이는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따라 나서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을 추구하고 원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눈에 보이는 것이든지 아니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옳다고 하는 가치관이든지간에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셨다면 우리 안에 소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자 하고 목표와 방향으로 잡은 모든 것이 사실 나의 손으로 만들고 또 나의 손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나도 모르게 나의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점검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17장에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17:24-25)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심을 분명하게 아셔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 되신 주의 말씀이, 주의 복음이 우리 가운데 선포 되어 진다면 우리 안에 날마다 소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이해득실을 따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참된 생명을 주는 복음을 배척하기 위하여 데모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거룩하신 주 앞에 매 순간 돌이켜 회개하는 소동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과 소동은 무엇이며 마귀는 그 일을 어떻게 처리 하였다고 합니까?

2.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는 하나님이 역사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동은 무엇입니까?

3. 데메드리오가 하는 일은 무엇이며, 그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목적은 무 엇입니까?

4.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현실이 어떠하다고 이야기 합니까?

5. 우리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상숭배와 상관이 없다고 말 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 진 것입니까?

7. 오늘날 믿음과 복음으로 말미암은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날 우리가 바른 복음을 들었다면 우리 안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소동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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