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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명자 바울과 그 사명의 내용

본문 / 20:17-27

 

 

1. 바른 목적과 방향

오늘 본문은 바울사도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이르기 위하여 서둘러 가는 중에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부탁을 하는 내용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 사도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한 교회입니다. 이제 바울사도가 다시는 에베소에 들리지 못할 것을 알고서는 마지막 유언처럼 장로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 중에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사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듣다가 보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허무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왜 허무하게 여겨지는가 하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고 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여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즉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의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이지만 그러나 이 세상도 또 정욕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안개와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음으로서 세상이 허무하게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말씀하는 그 세상이 허무하게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에게 믿는 자로서의 사명을 말하기 전에 믿는 자는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사명에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나 또는 세상이 속한 것들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며 또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고 논하게 되면 벌써 그 방향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에게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4-27)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절제와 노력이 필요함을 권면하기 위하여 운동 경기를 비유로 들어 말씀합니다. 당시에는 운동 경기에서 승리하면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수여했는데, 그런 면류관은 경기자들에게 최고의 영예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면류관은 금방 시드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쓴 우승자의 영예 역시 덧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 운동 경기자가 목표하는 면류관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면류관은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 못지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절제하며, 분명하고 바른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처럼 신앙생활 또한 하나님의 목표와 방향을 확고하고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 중에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라는 말씀의 전파한의 헬라어 케뤽사스는 전달자라고 하는 케뤽스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뜻은 운동 경기에서 경기규칙을 설명하고, 선수들을 소집시키며, 나팔을 불어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일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달자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그 전달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 그 경기에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으면 땅에 속한 것들을 받는다고 간증들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잘하니 무병장수하고 만사형통하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약속하신 것들을 바라고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도행전 1장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우리는 너무나 좁게 해석하여 늘 사용하는 것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개념도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무슨 세상의 단체에 회원 모집하듯이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 교회 교인 늘이기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교회 증인이 되거나, 자기교회 목사 증인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증인이라면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증거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명자와 그 사명

그러면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임하여 증인이 되는데 이것은 특정한 사람에 한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한 모든 자에게 그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나 선교사처럼 다른 직업이 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만의 사명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모든 사람이 다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직업을 가지고 일하든지, 어디에 종사하든지 이 세상보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세상이 더 좋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한 것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기초인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면서 땅에서 보이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면 전도의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10)고 합니다. 성도라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를 덧입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장막이란 우리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탄식하며 새 몸을 덧입기를 원하는 자는 고린도후서 416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 된 자는,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도 죽을 몸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닌 하늘의 생명에 그 죽을 몸이 다스림 받기를 원하는 자가 성도며 그러므로 당연히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땅만 바라보고 살았는지,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았는지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다 전도인 것입니다.

 

 

3. 신자의 삶

이제 본문에서 바울사도가 전도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20:17-21)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과 핍박을 에베소 장로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음모로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을 말하면서 성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공중 앞에서나 개인에게서나 무엇이나 다 전하여 가르쳤다고 합니다. 성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비전이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를 전하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기들이 평소에 생각한 하나님이 아님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섬겼지만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이었습니다.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 것입니다. 그들이 신이라고 섬긴 것들이 모두 피조물인 것입니다. 썩어질 사람과 짐승과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을 또는 가치관들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면 전부 우상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소경이었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이 세상이 창조주를 몰라보고 죽여 버렸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의 포도원 농부 비유를 보면, 포도원을 만들고 주인이 세를 주었는데 세를 바치기는커녕 세를 받으러 보낸 종들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죽여 버린 자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이러한 죄의 지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도할 때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죽인 사람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 앞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전도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과연 우리가 전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까? 이 세상의 부귀과 명예 그리고 행복과 즐거움보다 예수님이 더 귀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내용입니다. 과연 전도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방향과 목표가 이렇게 정하여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짐 다 내려놓고 주님이 만드신 그 나라를 사모하고 소망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전도가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전도가 싫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싫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약속을 믿는 것인데, 그런 믿음은 없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 소원하고 있으니 얼마나 이런 전도가 싫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전도하는 사도들에게 환난과 핍박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20:22-27)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무슨 일을 만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증거 하시기를 결박과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기에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복음을 증거한 곳의 모든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도가 꺼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좋아하는 것만 전하자, 하는 것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이면 모두가 이러한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의 목숨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무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하여서는 허무하여 지더라도, 그러면 무엇을 하라는 말입니까? 라는 질문에는 오늘 말씀이 대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인이 되어서는 자기 교회와 목사를 우상으로 만들어 예수님보다 자기가 속한 교회나 목사가 더 커보이도록 만들지 말고, 눈에 보이는 교회보다 또 목사보다 주님의 나라가 더 좋습니다,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며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잘 살아남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드신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하는 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몫을 다 행하였습니다. 이제 이 복음의 소식을 지키는 것, 그것에 따라 살며 가감 없이 그것을 계속 전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며, 성령이 임한 모든 자의 몫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제는 허무하여지지 마시고 분명한 사명이 있음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부름 받아 이 세상보다 주님의 나라가 더 좋다는 것을 증거 하시면서,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또한 영원한 삶과 영원한 죽음에 관계되는 말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은 우리의 목숨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사명이 오늘 복음 앞에 선 나에게 충만하니 점검하시며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복음을 들으면 왜 세상에 사는 것이 허무해 진다고 합니까?

2. 하나님의 사명자로서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바울이 운동 경기의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4. 신앙의 목표와 방향을 잘못 가질 때 나타나는 전도자로서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5. 오늘날 사명 자는 누구를 말하며 또 그 사명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은 어떤 삶이라고 말씀 합니까?

7.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8. 우리의 전도의 내용이 어떠해야 한다고 하며 또 그런 전도를 하는 자가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9. 사명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며 또 그 사명자가 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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