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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염병에 전염된 자들의 삶

본문 / 24: 1- 9

 

 

 

1. 전염병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끝은 아닙니다. 끝은 아니지만 끝을 예고하는 사인이기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 끝은 천국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제야 끝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눈에 보이는 이런 세상이 아님을 알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여전히 내 사는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을 알고 준비하며 깨어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이 세상의 난리의 소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쟁이고, 하나는 전염병입니다. 사람들에게 전염이 되는 어떤 병에 대하여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사람들이 아파하고 죽어나가면 괴질이라고 하다가 그 원인이 밝혀지면 병의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타격은 전쟁보다 이러한 전염병이 더 심각하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라에서 온 힘을 기울여서 이러한 전염병을 막기 위해 예방에 힘쓰고 또한 언론에서도 건강에 대한 내용들을 많이 방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도 전염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울을 보고서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전염이 되는 괴질을 힘써 막아보려고 예방하고 하는 것처럼 바울을 그렇게 막아 내어야 할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바울이 무엇을 증거 하였기에 전염병이라고 하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지경에 로마의 수비대에 의하여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계속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천부장이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보냅니다. 무려 470명의 군인으로 하여금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데려가게 합니다. 벨릭스 총독에게 천부장이 바울을 보내는 이유를 편지로 써서 보냅니다. 그 내용을 사도행전 23장에 보면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23:25-30)고 합니다. 그리고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 더둘로를 데리고 바울을 고소하기 위하여 가이사랴에 옵니다. 이 당시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나니아 대제사장은 매우 교활하고 거만하며 성직을 이용하여 축재를 한 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자리도 자객을 보내서 전임 대제사장을 암살하고 차지한 그런 사람이기에 경멸받아야 마땅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벨릭스는 로마인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노예출신으로서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로마의 역사상 가장 타락한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와 정치권력이 가장 타락한 자들에 의하여 바울사도가 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벨릭스 총독 앞에서 송사를 합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데리고 온 변호사 더둘로가 온갖 아첨을 다하면서 벨릭스 앞에 바울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 아첨의 말이 오늘 본문에 보면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24:3)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자존심이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처단하기 위하여서는 온갖 아부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전체적인 제목이 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왜 전염병인가 하는 것을 세 가지 죄목으로 고소하는 것입니다. 이 고소가 사실로 입증이 되면 로마의 형법으로도 처벌을 받아야 할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2. 고소 내용

그들이 바울을 힘써 막아내야 하는 전염병으로 고소하는 세 가지 내용이 오늘 본문 5절부터 보면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24:5-6)라고 합니다. 바울은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국가권력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게 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며, 두 번째는 바울은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사렛 이단의 창설자인 예수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위험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려고 시도한 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에 관한 것은 로마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자료가 되지 못함을 저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간략하게만 끝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기가 유대교 법정이었다면 가장 먼저 중요하게 고발해야 할 제목이 바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록으로 바울을 고소하자 여기에 참가한 유대인들도 다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소에 대하여 바울사도가 대답을 합니다. 10절부터 보면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24:10-23)고 합니다. 그들의 고소가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재판을 연기하여 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내용은 왜 바울을 전염병이라고 고발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이 증거한 복음을 듣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전염병에 전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 복음을 싫어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 왜 전염병처럼 들리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더둘로가 바울을 고발하는 송사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 없어도 평안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예수,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를 메시아라고 증거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안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온 천하를 소란스럽게 하고,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이런 놈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에 도움도 안 되고 국가에도 도움이 안 되기에 전염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에 정말 좋은 소식으로 들립니까? 아니면 전염병의 소식으로 들리는 것입니까? 변질된(다른) 복음은 사람들에게 좋게 들립니다. 신이 우리를 도와준다는 것을 다 좋아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질서를 더 안전하고 평안하게 해주고, 내 삶의 목표, 내 자아의 실현을 더 잘 도와주는 신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종교성입니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종교가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래서 호국불교가 나오고, 호국 기독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안정과 발전을 주는 그런 종교라면 환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도 하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들을 때나 또 하실 때에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된다고 듣고 말하십니까?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하십니까? 그리고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우리가 다 외우다시피 하는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을 동원하여 한 부분만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지 아니하면 멸망이라는 이야기는 감추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멸망이니 심판이니 이러한 말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에서 분명하게 선포하는 멸망과 심판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것은 반쪽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쪽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는 왜 멸망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들어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나서의 본성이란 자기 보호본능에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삶의 목표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죄를 범하고 나니 주님은 간곳없고 자신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어서 그 어떤 신이라도 나의 생존과 번영과 영생을 주어야 좋은 신으로 대접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주인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싫은 것입니다. 더더구나 우리의 욕심과 죄가 그 주인을 죽여 버렸다는 사실이 증거 되어야 이 세상이 왜 심판의 대상인지가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제대로 증거 되면 반드시 전염병이라고 막아야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습니까? 자기를 그저 예뻐하고 긍정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누군가의 종이 되고자 하겠습니까? 더 잘살고, 더 멋있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니 죽고 싶은 심정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 전염병 걸린 자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정말 좋습니까? 아니면 전염병으로 들립니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였으면 복음이란 전염병으로 들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 어느 한 구절인들 우리의 본성에 좋아할 만한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좋아한다는 말씀도 그 앞뒤를 함께 보면 결코 좋아할 그런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얼마나 싫었으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그를 증거 하는 사도들까지도 죽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염병으로 들리지 아니하고 복음으로 들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무엇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까? 멸망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 함으로 멸망 받아야 마땅함이 노아 홍수로 또 소돔과 고모라의 성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내신 것입니다. 홍수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 속에서는 노아와 롯이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멸망이라니, 하며 외면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있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보면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21:33-40)질문을 하니 그 비유를 들은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21:41)고 대답합니다.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할 것이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같은 내용인 누가복음 20장에 보면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20:16 )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하는 말씀이 성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서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의 이 비유가 자기들에게 말하는 것인 줄 알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임을 알고 하나님의 진노와 그 멸망을 아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진멸당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죄를 인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그야말로 이 세상에 그 어떤 소식보다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재미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란 전염병인 것입니다. 전염되지 아니하도록 철저하게 차단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멸망 받을 세상에서 주의 구원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름이 왔으니 새 옷도 장만하고, 휴가 계획을 세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까? 성도란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구하고 찾는 것들과 다른 것을 찾고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염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마땅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만 많고, 이기적이고, 세상에 더 악착같다는 것으로 인하여 전염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세계를 말하는 모습으로서의 전염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마지막으로 디도서 2장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2:11-14)고 합니다. 이 복스러운 소망 때문에 전염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 전염병에 전염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대단한 영광의 자리인가를 알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존귀한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본문에 바울을 고소하는 세 가지 죄목은 무엇입니까?

2. 바울을 고소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염병으로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변질 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좋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반쪽 복음이란 무엇이며, 복음에는 반쪽 복음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5. 복음이 전염병으로 들리지 아니하고 복음으로 들리는 사람은 어떤 자들이라고 합니까?

6. 하나님의 바른 복음은 반드시 무엇이 전제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7.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복음인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하나님의 복음이 오늘 본문의 사람들처럼 전염병처럼 들리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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