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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울이 이르되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본문 / 26:24-29

 

 

1. 믿음의 사람

오늘 본문은 바울사도가 가이사랴에서 최종심문을 받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바울 사도가 지금 유대인 왕 아그립바와 로마의 총독 베스도 앞에서 심문을 받는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거로 갇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로마법에 저촉이 되는 사항이 아님을 최종 심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0절부터 보면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26:30-32)라고 합니다.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당할 만한 행사가 없기에 풀어줄 수가 있었으나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였기에 가이사에게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내용은 오늘 본문 29절의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9) 라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사도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와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기처럼 이렇게 결박이 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얼마나 자신이 처지가 감사하고 행복하였으면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누구를 닮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영웅적인 위인들을 예로 들어 말합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들었던지 아니면 위인전을 읽었든지 간에 그 안에 닮고 싶고, 되고 싶은 인물들을 마음에 그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물들은 전쟁영웅이거나 남을 위해 희생을 한 사람이거나 간에 인류에게 감동을 줄만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아이들은 그런 영웅을 그리지도 아니합니다. 더욱 현실적이 되어서 아주 구체적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든가 연예인이라든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사는 우리들은 성경의 인물 중에 누구를 닮고 싶으십니까? 우리 역시 어려서부터 위인전을 읽으며 꿈꾸어 왔던 영웅적인 사람들을 닮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성경에서도 그런 뭔가 영웅적인 모습이 담긴 아브라함이나 모세 또는 다윗과 솔로몬 등등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물들 역시 우리가 세상의 위인을 보듯이 그들도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기에 우리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결코 영웅이나 위인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피상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구체적으로 그 생애를 살펴보면 모두가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32-40)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의 영웅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영웅적인 모습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고 하고, 불의 세력을 멸하기고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고,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고 하며, 전쟁에 이방 사람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부활로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영웅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을 과연 우리가 환영하고 따라갈 만한 내용인가 하는 것입니다. 조롱, 채찍질, 결박, 옥에 갇힘, 돌로 침, 톱으로 잘림, 시험, 칼에 죽는 것,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모습을 닮고 싶은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처음에는 고생하여도 나중에 성공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적인 영웅이나 성공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이 약속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사람들이 구약의 증인들입니다. 이들이 다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실체는 받지 못하였지만 모형과 그림자의 증거만을 받고서도 환영하며 죽음도 불사하고 그 약속을 기다린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문하여 보십시오. 나는 과연 이런 믿음의 선배들을 닮아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를 말입니다.

 

 

2. 바울의 전도

오늘 본문 앞에 보면 이런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6절부터 보면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26:6-7)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밤낮으로 연구하고 살펴서 기다려온 그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못 믿을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질 때 그 사람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는 형편이 좋을 때가 아니라 정말 어려움에 처하여 보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사도는 자신이 심문을 받고 있는 자리, 즉 자신이 처한 곤란한 자리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자신이 처한 그 곤란한 자리에서 어떻게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그렇게 기다리던 약속의 실체인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말하는 이 약속,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무슨 일을 이루신 것입니까? 그 내용을 18절에 보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26:18)라고 합니다. 22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26:22-23)라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것은 이미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 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여기까지 증거 하자 베스도가 무어라고 합니까? 바울을 미쳤다고 합니다. 네 많은 학문이 너로 미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러 가지 많은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돌아가지고 미쳐서 이야기를 한다고 베스도가 말 합니다. 로마의 총독으로 있는 베스도가 세계를 보는 시각에서는 미친 소리로 들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때 바울사도가 베스도에게 내가 미친 것이 아니고 참되고 온전한 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베스도가 볼 때 바울은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볼 때는 베스도가 마귀에게 사로잡혀 어두움 안에 있는 불쌍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6절부터 보면 옆에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를 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의 왕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한쪽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주 한쪽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적어도 유대 땅 안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이렇게 분명한 일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 바울사도는 다시 선지자를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이라면 선지자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증거를 들면서 왜 믿지 못하나이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을 보고서 네가 말 몇 마디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성경도 알고, 선지자도 알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감히 나에게 말 몇 마디로 이 짧은 시간에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런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도 어린 것이 인생에 대해 뭘 안다는 말이냐?’ ‘너는 천국과 지옥을 네가 봤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전도하는 그 말 몇 마디로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추구하여온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수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사도가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9)라고 말합니다. 자신처럼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당신들 모두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3. 나와 같이 되기를

오늘 우리는 과연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전도를 하며 예수 믿으라고 해야 한다고 하면, 뭐라고들 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내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믿으라고 하는가?’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조금 더 떳떳하고 완벽하게 되고 나면 예수 믿으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고, 내 형편도 어려우니 내가 모든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에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몰라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예수님을 증거 하겠다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형편이 나아진 것을 증거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단지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당신들이 왕이고 총독이고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 아니라 내가 만난 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행복이요 자유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성공할 만큼 성공한 그 사람들이 부럽기는커녕 너무나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옥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바울사도의 형편이 어떤 지경입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아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형편에서 입을 벌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핑계 대고 있는 그 형편의 이야기와 너무나 다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여기서 바울의 고생이 얼마나 심하였는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9-13)고 합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그 고난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 자기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된 빛이 오자 그동안 빛이라고 여긴 것이 모두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동안 진리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며 속아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생명을 얻었기에 자기가 지금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수로 고발되어 있고, 결박되어 있으면서 오히려 나처럼 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인한 생명 얻음이, 죄 사함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오게 됨이 얼마나 좋은지 자기를 욕하는 자를 향하여 축복하고, 핍박을 하면 참고, 비방을 당하면 오히려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사도가 증거한 이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잠시 잠간 지나가는 것입니다.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다 얻은 것입니다. 천하를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천하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참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며 다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14)에 보면 에 보면 예수 믿는 다는 것이 어떤 복이 주어졌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 복이란 창세전에 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로 흠이 없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알아가는 것이 에베소서 3(14-21)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감옥에서도 기뻐하라고 하며, 왕에게 죄수가 하는 말이 당신도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바울과 같은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면, 이제 이 세상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보고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가르침을 받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주님과 천국의 가치를 알면 되어질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증상임을 알아 매일의 삶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며 주안에서 바르게 세워져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신앙의 길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들이 닮고 싶어 하는 성경의 인물들과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릅니까?

2. 어려울 때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무엇이며, 오늘 본문의 바울은 어떻게 다릅니까?

3. 오늘 심문 중에 바울이 전하는 약속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4. 바울의 전도를 받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5. 전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6. 오늘 바울이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7.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복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본문의 바울과 같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고백은 누가 할 수 있는 것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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