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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게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믿노라

본문 / 27:20-26

 

 

1.인도하심

다윗이 쓴 시편 23편에 보면 주님은 우리의 목자요, 우리는 양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노래하는 것은 실제로 양은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자기를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이라고 하면 목자가 떠오를 정도로 양과 목자는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성도를 양으로 비유하는 것은 한시도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도들도 자기 자신을 악한 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이 없음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양 같은 우리가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다니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에서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53:6)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의 양떼를 마음대로 가도록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도하시는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시편 23편에 보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3)고 하여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하시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기 마음대로 목표를 정하여 놓고서는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께 그 목표를 이루는 일에 성공적인 인도를 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목적과 우리가 인도되었으면 하는 것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 본성상 하나님에게 잘 보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만사형통한 길로 인도되지만 그러나 불순종하면 모든 일들이 잘 풀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하였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서의 가르침도 주로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우리의 종교적 본성에서 더 나아가 어리석은 확신까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로 모인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고 고난이 있는 것은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나가면 자기의 자존심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말들과 눈초리들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교회에서는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어떻게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죄수의 모습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사도는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을 낸 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한 결과가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과거의 모든 잘난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며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아 왔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로마로 가는 길은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죄수의 신세로 잡혀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방법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바울처럼 인도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는 하여도 결코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방법으로 인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자기 영광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인도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생을 하더라고 나중에는 영광을 누린다면 초반 고생은 감수하겠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도를 받아간 사람들의 모습은 한 결 같이 세상 사람들이 환영하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이렇게 인도하시는지를 오늘 본문의 바울사도를 통하여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의 일하심

오늘 본문은 바울사도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최종 심문을 마치고 이제 로마로 압송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배에 탄 사람들이 276명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제법 큰 무역을 하는 상선으로서 곡식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화물도 싣고 가는 배로 보여 집니다. 여기에 로마의 백부장이 바울과 다른 죄수들도 압송하여 가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항구에 들릴 때는 바울의 친구들에게 대접을 받도록 허락도 합니다. 그러나 항해가 어려워서 겨우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다고 뵈닉스로 가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사도가 말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부터 보면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27:9-11)고 합니다. 바울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서 항해를 고집한 것입니다. 겨울철에는 아예 항해를 하지 않는데 아직은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보고서 간 것입니다. 마침내 남풍이 순하게 불자 저희가 때를 만났다면서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면서 항해를 합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갑자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쳐서 갈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배가 바람에 밀려 가는대로 두는 것입니다. 풍랑으로 심히 애를 쓰고 이튿날에는 배의 짐을 바다에 버리고 배의기구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풍랑이 계속되고 해와 별도 보이지 않게 되자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자기 욕심과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항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처럼 불순종해서 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도행전 23장에서 보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로마로 향하고 있는 중인데 풍랑을 만나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것이라고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바울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니 죽지 아니하라는 마음으로 담대하여졌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로마로 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도 담대하라고 하셨고, 이 풍랑가운데서도 담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도 두려웠기에 주님께서 담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말씀을 분명하게 다시 하십니다. 그것은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27:21-26)고 합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을 것이라고 하자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라고 합니다. 생명은 한 사람도 잃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나타나 말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래도 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곧 한 섬에 배가 걸리게 될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배에는 여러 사람들이 타고 갑니다. 장사를 하여 이익을 보고, 여러 가지 사업을 위하여 가는 사람들이 그 배에 타고 갈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꿈들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 가운데 바울사도는 죄수의 모습으로 끌려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보이는 희망을 가지고 꿈에 부풀어 떠나는 중에 바울을 보았을 때에 어떤 모습으로 보였겠습니까?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죄수로 끌려가는지,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고 죽게 될 불쌍한 인생이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꿈을 가진 사람들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을 가지고 가는 바울이 보이는 세계에서는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풍이 몰아쳐서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게 되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서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들의 목숨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믿고 가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살고 죽는 일이 바울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광풍이 몰아치기 전에는 바울은 한낮 죄수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광풍을 만나고 죽게 생기게 되자 아무것도 없는 사람, 보통사람보다 더 비천한 죄수로 가는 바울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위대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모습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바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자기들만 살려고 도망가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계속하여 배가 이리 저러 쫓겨 가는 중에 사공들이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하고 줄을 재어보니 점점 얕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초에 걸릴까봐서 배를 정지시키는데 일부 사공들이 닻을 내리는 체 하면서 거룻배를 내려서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이 이 배에 있지 않으면 죽으리라고 하자 그 거룻배의 줄을 군사들이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 바울이 기도하고 음식을 먹게 합니다. 그러자 이제 안심하고 음식을 먹고 나서 배에 있던 밀들을 모두 바다에 버리고 배를 가볍게 하고 섬으로 가까이 가는데 배가 모래톱에 걸려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죄수들이 도망갈까 봐 죄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고 저희의 뜻을 막아서 헤엄치는 사람은 헤엄치게 하고 물에 떠는 것을 잡고서 섬으로 가게 합니다. 그리하여 한명도 남김없이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3. 우리의 구원

여기에서 바울사도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배에서 선장이나 선주나 백부장처럼 대접받으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수의 모습으로 갑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살려내고 있는 것입니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죄수, 비천한 죄수의 모습을 가던 바울이 그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잡혀가던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에 더욱 미움을 받아서 형들의 손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그의 형들과 부모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이끌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만나는 순간 자신들의 죄와 은혜를 동시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모두가 고개를 흔들며 침 뱉고 돌아선 그 십자가로, 저주 받아 죽었다는 그 십자가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의 시각으로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것에 붙들려 살아가는 자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영광들이 헛된 것임을 보이기 위함이며 또한 그런 일들이 사람의 잘남과 위대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의 헛된 영광과 자기 자랑의 길을 따라 인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이 없는 길로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몰라서 그렇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아름다운 꽃밭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의의 길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고난과 어려움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보다 더합니다. 그래서 골짜기를 눈물로 더듬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붙들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들지 않게 하시고 분명히 붙들어야 할 것을 붙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은 광풍이 몰아치는 곳입니다.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과 실업과 경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어떤 인도를 받고서 사시겠습니까? 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이 세상에서 안전지대란 없습니다. 광풍이 몰아치듯이 몰아치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들을 스스로 내어 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18:15-20)고 합니다. 광풍정도가 아니라 바벨론 자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무역으로 인하여 치부한 모든 것이 망하는 그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헛된 것을 생명처럼 여기지 마시고, 예수님만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의 항해하는 배에는 무엇이 가득합니까? 혹 오늘 본문에 광풍을 만나 죽게 되었음에도 그 목숨을 건질 수 없는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실어 놓으신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필요 없게 될 때가옵니다. 죽음 앞에 아무 소용이 없기에 버릴 수밖에 없는 때가옵니다. 그러나 그 때를 죽음 앞에서 보며 어리석은 삶을 살다가는 자가 아닌 지금 오늘 본문 앞에서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나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모습처럼 오직 주님의 약속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려내는 것임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런 자들에게 약속된 영원한 세계가 펼쳐질 것임을 알아 오늘도 우리의 인생의 배에 생명 되신 되신 주님의 말씀만을 가득 채워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서 성도를 양으로,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우리의 목자이신 주의 인도하심의 목적과 우리가 바라는 목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바울과 함께 배를 탄 자들이 바울의 말 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들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4. 배에 탄 자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소망의 모습은 어떻게 나눠집니까?

5. 배에 탄 자들이 광풍을 만남으로 나타난 결과는 어떤 것입니까?

6.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과 어려움의 길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본문의 말씀과 우리의 삶의 모습을 비교하여 얻게 되는 주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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