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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울을 통하여 보게 되는 성도의 삶

본문 / 28: 1-15

 

 

1. 세상 속의 성도

성경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도란 거룩한 무리로서 세상에서 구별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로서의 그 구별의 기준은 세상의 그 어떤 조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경제력이나 가문이나 착함이나 사람됨을 가지고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이미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고 그 뜻이 때가 되어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인 것입니다. 이런 성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3:20)고 하여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성도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1-2)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권면을 받은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입니까? 놀랍게도 오늘날 성도라는 하는 우리는 이런 권면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 좋은 자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차지하여서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른 말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속마음이 다 있으니 예수 믿는 것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마음에 거슬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접하였는가를 보시면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무엇을 유혹하였습니까?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다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다 거절하시자 세상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배척하였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세상은 어떤 대접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8-19)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이 싫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환영받고 대접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의 마음에 들고 또는 들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이 이루어 질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바울에게서 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하심

바울사도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고 산다고 하는 삶이 오히려 하나님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돌이켜 세운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바울 마음대로 살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어 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바울의 삶 자체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일들이 모두 죽은 자의 일임을 알았기에 참된 생명이요, 참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죄수로 몸으로 잡혀서 로마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죄수가 된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 하고, 하늘의 소망을 증거 하였기에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결코 환영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입을 막아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기에, 사단의 권세아래 있기에 그저 눈에 보이는 세상만이 다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다른 세상이 있음을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빛을 본 자들을 죽여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가 어디입니까? 바로 북한입니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신문도 인터넷도 전부 나라에서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외국의 정보를 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들일 줄 아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모든 것을 검열하고 통제하니 자신들이 사는 나라밖의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혼자서는 살수가 없으니 외국에 나가고 새로운 세계를 접한 사람들은 자꾸만 그 북한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씩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단속을 강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렇게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 밖의(하늘나라) 소식을 듣지 못하니 자신들이 사는 이 세상이 전부인양 알고 살아갑니다. 사단이 그 외부 소식을 듣지 못하도록 막아서며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아선다고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주님 재림하시면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사단과 그 부하들은 다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귀신들이 먼저 알고서 벌써 때가 되었나이까 하면서 벌벌 떤 것입니다. 마귀들은 자기들이 망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망하는 것을 결코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지 온갖 핍박을 가하고 죽여서라도 복음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 세상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교묘함이 사람의 지혜보다 뛰어나기에 핍박 일변도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으면 세상의 영광을 다 준다는 식으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그 마귀가 지금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간증하는 많은 내용들을 들어 보면 대부분이 이 세상에서 성공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스코리아도, 가수도, 영화배우도, 운동선수도 무슨 시상식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이란 이 세상이나 또 세상에 속한 것으로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이란 언제나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시상식에서 한 번도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그들의 영광과 얼마나 어울리지 아니하는가를 아셔야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으로는 절대로 영광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씀을 모르면 자기가 마귀에게 속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작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고생하고 죽는 것으로 비추어지게 하여서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헛된 세상 영광을 구하게 함으로 가짜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계획하신고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19-20)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자이시고 또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그 목적을 완성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선택하는 자들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들에게 믿게 함으로 아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진실로 그렇습니다.’ 또는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성도들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헌신적인 사도적 수행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아멘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고서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 살았던 바울의 삶을 보면서 성도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살고, 무엇이 증거 되는지를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도란 자기 고집과 자기 뜻대로 살수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신분이 되어 버린 사람입니다. 바울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까지 복음이 증거 되리라는 그 말씀 때문에 바울이 로마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는 길이 늘 꽃가마 타고 환영받고 영광을 받으며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죄수로 잡혀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모양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의 찌기 같은 대접을 받고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도하심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할 수가 없음을 보이시면서 동시에 세상의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님도 보이시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삶

처음 로마로 항해할 때 죄수인 바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광풍 속에서 다 죽게 되었을 때에 바울의 말을 믿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나타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배와 화물은 잃었지만 생명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멜리데 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섬에서 원주민들이 이들을 영접하여 줍니다. 그곳에서 비가 오고 날이 차서 불을 피우는데 나뭇가지를 집어넣다가 바울이 뱀에게 물리게 됩니다. 아주 독한 독사였기에 원주민들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진실로 살인한 자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으나 뱀에 물린 것을 보니 공의로 심판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곧 죽거나 몸이 부어오를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아니하니 바울을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난과 핍박과 죽음의 위험과 풍랑과 뱀에게 물릴지라도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주님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고난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께 부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님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더욱더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소망이 뚜렷하여 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멜리데 섬에서 그 원주민 추장의 아버지를 고침으로 더욱 사람들이 바울과 그 일행에게 잘 대접하여 주고 3개월이나 지나서 배를 타고 가는데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배에 오르는 순간 바울은 어떤 신세가 되는 것입니까? 여전히 죄수의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외로운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의 위로와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받은 자들의 위로와 격려와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멜리데 섬에서 로마로 향하여 로마의 수도에 들어가기 전 보디올이라는 항구에서 일주일간 머물게 되는데 이곳에 예수 믿는 형제들이 바울의 소문을 듣고 와서 교제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예수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압비오 저자와 삼관 지역에 있는 성도들도 바울에게 오자 바울사도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담대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성도가 가는 길에 외롭고 두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약속을 받은 자들이 서로 교제하면서 함께 격려하고 세워가는 것입니다. 목사만 일방적으로 격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차 권면하고 서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영원한 나라가 따로 있음을 증거 하면서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러한 성도의 삶을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18-31)고 합니다. 세상의 부족하고 못난 것들을 택하여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아무도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예수님만 자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서 성도인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인가를 잘 분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의 길을 걸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서 믿는 자를 무엇이라 하며, 어떻게 구분 되는 것입니까?

2. 오늘날 성도라 이름 하는 우리들의 속마음과 성경에서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릅니까?

3. 바울이 주를 만남으로 알게 된 것은 무엇이며, 세상은 그를 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4. 오늘날 마귀가 하는 일은 무엇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예수 믿는 자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6.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성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인도하시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오늘 본문의 바울의 모습을 통해 보게 되는 성도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8. 상의 부족하고 못난 것들을 택하여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을 증거 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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