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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직 주의 말씀대로, 오직 은혜로

본문 / 28:23-31

 

 

 

1. 하나님의 일하심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지난 1년여 시간이 넘게 사도행전 강해를 해 왔는데 오늘 마무리를 하면서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해 온 사도행전을 한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주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어내셨고 그리고 지금도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가고 계신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사도행전 강해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여 사도행전의 전체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나눴던 말씀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의 약속한 것들을 이루어 내시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하십니다. 우리 주께서 성령이 임하시면 이라고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 날에 성량이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권능을 받았습니다. 방언을 하고 병 고침이 일어나고 권세와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증인이 되기 시작하는데 누구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까? 바로 성령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이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도들의 권세나 능력을 가지고 자기들을 증거 하지 아니합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보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3:12)고 이야기하면서 자기를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6)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증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증거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자기의 권세와 능력을 증거 하거나 또는 자기의 열심을 증거 하거나, 자기의 교회를 증거 하는 것이라면 참된 증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며 이 증거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의 약속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인데 유대인들인 사도들은 사마리아와 땅 끝인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핍박의 주동자 중의 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인 사울인 것입니다. 그 핍박으로 인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 핍박의 결과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들어가게 되고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가?’ 하면서 의아해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인 자신들이 개같이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에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니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하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인 자신들에게 임하였던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것과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다르게 나타난 것은 사도들로 하여금 복음이 사마리아에도 증거 되는 것임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조치인 것입니다. 이들이 이처럼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이 임하는 것에 놀랐다면 사마리아보다도 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로 여긴 이방인이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을 유대인인 사도들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이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툼과 요란함과 회의를 통하여 겨우 결론을 내게 되었는데, 이방인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것을 드디어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도록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사도들로 하여금 목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 사람들의 중심에 누가 있었습니까? 바로 바울인 사울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보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였는지 스데반 순교 시에 스데반이 죽어야 마땅하다고 하였고 그 현장의 증인이 되었던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가다가 오히려 예수님께 사로잡혀 버린 것입니다. 전에는 핍박하다가 이제는 증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바울사도로 하여금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는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셔서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의 지역을 돌면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한 고난도 많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온갖 불치병이 고침을 받고,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 위에 가져다 놓아도 병자가 낳고 악귀가 떠나버리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우리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 앞에서 항복을 하고 모두가 예수 믿겠다고 나오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이 사사로운 욕심을 따라 일하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걸고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셔서 계속 기적을 일으키시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사도행전 초반에서도 성령이 임하고 사도들이 능력을 행할 때 그런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가 순교 할 때를 보게 되면 그냥 돌 맞아 죽습니다. 야고보가 그냥 맥없이 순교를 합니다.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갈수록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기 보다는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왜 복음이 이렇게 증거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칠만한 사회적인 체면과 권위가 세워지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 우리 속담에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 덕분에 큰 소리 한번 쳐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이 세상에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세상에 오실 때에도 마구간에 오신 것입니다. 집안도 학벌도 그 어떤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도 무엇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까?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2-3)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실제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오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죄를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처럼 살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어떻게 생각하고 사는가 하면, 모두가 자기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이 고난당하신 주님 앞에서 우리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가 모두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으셨음을 아는 사람은 그 입을 닫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제대로 알고 동시에 주님의 십자가의 위력이 모든 죄를 이기고도 남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들에 의하여 복음이 증거 되는데 세상의 영광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모습으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셨고 또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의 것들이 방해할 수 없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의 유혹이나 반대로 세상 그 어떤 위협과 고난과 죽음까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협하고 고문하고 죽이는데도 무엇이 좋다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죽어 가는가, 하는 것을 보이는 것이 바로 증인의 삶이며 모습인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사는 목적이 눈에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을 마다하고 사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사는가? 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이며, 겨자씨이며, 가루 속에 들어있는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모두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만 찾아내시기 위하여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복음이 세상의 영광을 전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환영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란 이 세상에서 분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인류가 대동단결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휴머니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사도행전에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28장까지 진행이 되면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성취가 되는 과정에서 바울이 로마에 도착을 합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잡혀가지만 그러나 복음은 막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어나 배가 깨어져도, 뱀에게 물려도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드디어 로마에 도착합니다. 무려 2년 정도를 가택 연금 상태로 있으면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먼저 유대인들의 지도자를 초청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러자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믿는 자들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사도가 하는 말이 이사야 선지자의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6:9-10)는 예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결론인 것입니다.

 

 

3. 오직 은혜로

그리고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23-28)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복음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전도, 즉 십자가의 도로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는 것이기에 감옥에 있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지하에 있어도 상관이 없고,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자라도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아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 바울을 세상은 예수님처럼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선포되어진 복음처럼 땅 끝까지 증거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에 약 이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똑하거나 잘나서 복음을 알아들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가능성이나 행함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럼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한 생명을 선물로 얻었기에 다 얻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하거나 주눅 들지 아니합니다. 믿음의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가상현실입니다. 오직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현실이기에 말씀대로 성취될 뿐인 것입니다. 그 세계를 보는 자만이 눈 뜬 자요, 그 세계의 소리를 듣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자인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지만 존재하는 그 세계를 바라보며 언제나 순례자로서 또 나그네로서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복음서에서 말씀하는 내용과 사도행전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사도들에게 주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시게 되자 누구의 증인이 되었습니까?

3. 령 받은 자들에게 있는 자기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조치는 무엇입니까?

4. 주의 증인 된 자들이 그 따르는 능력으로 가는 곳마다 환영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와 천 대를 받는 모습으로 증인 되게 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방식은 무엇이라고 하며,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6. 바울이 주의 뜻대로 로마에서의 복음 전도를 통해 내린 사도행전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7. 오늘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하는 복음의 능력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자의 모습과 삶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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