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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으로 살아나 복음을 위해 사는 이들

본문 / 1: 1- 4

 

1. 로마서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 4권이 있고 그 다음에 어떻게 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는가 하는 사도행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도행전을 통하여 바울사도가 예수님을 핍박하다가 오히려 예수님께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후에는 서신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서신서들 중에 로마서가 처음에 있는 이유는 성경을 편집할 때 로마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서신서의 맨 앞부분에 로마서를 편집한 것입니다. 로마서가 다른 서신서에 비해서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내용과 다루는 부분의 포괄성과 균형성 같은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은 바울이 자기가 세운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듣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어떤 문제를 권면하기 위하여 쓴 서신서들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서신서들은 일단 바울이 자기가 세운 교회에서 복음에 대한 모든 것들을 전하고 그 중에 문제가 됐던 어느 부분을 다루고 있다면 로마서는 바울이 세우지 않은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쓴 서신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안에 있는 복음에 관한 소개와 기독교인이 지켜야 하는 내용들은 그런 의미에서 복음에 관한 전체적인 시각과 균형감각 속에서의 중요한 부분들을 살펴보기에 적절한 서신서가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 설명하는 복음에 관한 설명을 이해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하는데 우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로마서를 오늘부터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 로마서를 빠르게 읽으면 1시간 정도면 전부 다 읽을 수 있는데 이 로마서 주석과 강해는 그 분량의 수천 배가 나와 있습니다. 특히 로이드 존스목사님의 경우에는 로마서 1장의 강해설교가 무려 5백여 페이지의 책 한권입니다. 로마서 9장까지만 이런 책 아홉 권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복음의 풍성함이 이렇게 엄청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 가운데 로마서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감당하였는지는 교회사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마르틴 루터가 1515년 로마 가톨릭의 신부요, 신학교수로서 로마서를 강해하다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말씀으로 인하여 루터 자신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온갖 종교적인 선행이나 고행을 통하여서도 얻을 수 없었던 평안과 기쁨을 로마서를 통하여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종교개혁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이 로마서의 말씀을 통하여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도 주님은 살아계셔서 바울사도를 사로잡아 돌려놓았듯이 우리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로잡아 돌려놓으시기를 기대하면서 이 말씀을 대하고자 합니다.

 

 

2. 종과 사도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라고 하여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종이라고 말합니다. 이 당시의 종이란 노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스스럼없이 자기의 주도권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자유라고 하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주인의 종이 된 것이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워 말하는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연 어떤 사람이 스스로 누구의 종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모두가 종이 되지 않으려고 또는 낮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고 있는 세상에서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왜 이렇게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전에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 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친히 자기를 불러주시고 그의 은혜를 받고 나니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종에 대한 규례가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있는데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21:1-6)고 합니다. 어떤 종이 칠년을 봉사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고서 자녀를 낳았으면 아내와 자식을 상전에게 값을 주고서 데리고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값을 치르지 못하면 자기 혼자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때 종이 상전에게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아니하겠노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전이 재판장 앞에 가서 그 종의 귀를 송곳으로 뚫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가 영영히 상전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종이 자기의 자유를 포기한 것은 왜 그렇게 한 것입니까? 자기의 상전이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종에게 아내도 주시고 살게 하셔서 자식도 낳았는데 이제 자기가 자유 할 수 있다고 해서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상전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주인이 좋아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종 된 자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통하여 자유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종교성에서 자유,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처럼 비 진리에서 자유 하는 것은 좋습니다. 바울도 이러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를 자기의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3-15)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여 주는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계속하여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고 이어서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라는 말이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종이라고 하여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만 사도의 특별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계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사도 중에 계시를 기록한 사도도 있고, 그렇지 아니한 사도도 있지만 계시를 기록하는 것은 사도로 제한된다는 의미에서 사도의 특별한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직으로 인한 반대에 부딪히면 자신이 적극 사도임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친히 사도로 부름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3. 복음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바울은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바울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름을 받은 것은 복음을 위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란 말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취업, 승진, 합격, 소원성취 이런 것만 기쁜 소식으로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성경에 증거 하는 기쁜 소식에 대하여서는 별 반응이 없습니다.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에 대해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우리 모두가 이 로마서를 통하여 다시 점검하고자 하며 또 그것이 도대체 왜 복음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복음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름을 입었다고 하면서 그 복음을 위하여 자신은 목숨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에 자기의 목숨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로마서 1장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고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능력이 복음 안에 있는데 이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것만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항상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인간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하나님처럼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은 어떤 종교나 선행이나 율법을 가지고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구원이 없고 오직 복음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린다고 하여도 이 복음을 모르고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거지 나사로처럼 살았다 하여도 복음을 알았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거지처럼 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지같이 실패한 인생으로 보이더라도 복음은 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자와 버린 자의 차이란 이만큼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고 합니다.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여 두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은 결국 아들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 아들을 믿으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들에 관하여 성경이 어떻게 증거 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4. 증거

먼저 창세기 3장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고 합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누구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아니하지만 분명히 약속의 후손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약속이 후손인 노아에게서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죄로 인하여 수고하는 자들에게 안위를 주리라는 노아입니다. 그래서 홍수의 심판에서도 노아의 방주에 탄 사람들은 살아남습니다. 그 다음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자식 중에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는데 이삭이 약속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없는데서 있게 되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모습입니다. 이런 식으로 요셉도 계시가 되고 있습니다. 유다도 다말도 결국 어떤 희생을 감당한 한 인물에 대하여 계시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시편 2편에 보면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2:12)고 합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아니하면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아니하면, 즉 그를 믿지 아니하면 진노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복, 믿지 않으면 그만이라면 믿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에 입 맞추지 아니하며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로 오시는 분이 이사야 7장에 보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7:14)하라고 이미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이 아들로 오시는 분의 이름과 하실 일에 대하여는 이사야 9장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고 합니다. 한 아기, 한 아들이 왕으로 다윗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어 내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하신 대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2-3)고 합니다.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모습으로 오셨기에 아무도 그를 환영하거나 영접하지 아니한다는 예언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멸시와 천대는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대로 신실하게 이루어 내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약속된 아들에 대한 성취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으로서 그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을 믿는 자는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이 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3-4)고 합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다윗의 혈통으로 약속대로 오신 분이시고, 거룩한 영으로는 이미 아브라함과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분을 영접한 자는 로마서 8장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는 말씀처럼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살려내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겨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알고 믿는 자라면 이 세상의 죽을 일들에 대하여 두려움도 염려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언약을 이루신 분이 남아 있는 언약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모든 내용은 이미 그 아들 안에서 다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제는 이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삶으로 꽃 피워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믿음의 삶으로 말미암아 오직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로마서를 모든 서신서들의 맨 앞에 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바울 사도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됨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대한 개념은 어떤 모습입니까?

4.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는 무엇입니까?

5.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아들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이루셨다고 합니까?

8. 하나님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셨고 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는 것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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