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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진 자들의 삶

본문 / 1: 8-13

 

 

1. 같은 믿음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자기가 가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산다는 것도 하나의 방향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인 방향성이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 올 자가 없음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된 자로서 때가 되어 주님께서 불러내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주님과 원수 된 길로 가다가 이제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은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이 복음은 성경에 미리 약속이 된 것으로 곧 그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아들에 관한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좋게 봐준다고 하여도 그저 한때 잠간 반짝하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뛰어난 선생이나 아니면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아들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시고, 장차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분이시라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미련하고 거리끼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으로 믿는다는 것이 참으로 기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1:8)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에서 믿는 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아직 로마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지만 이름 없는 누군가가 로마에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미 사도행전 18절에서 약속하신 바대로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일하신 결과로 믿는 자가 나왔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는 로마에 예수 믿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었는지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여 왔으나 믿는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믿는다고 따라 나섰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기도 하고, 바울을 버리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장에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딤후1:15)고 기록하고 있고 또 디모데후서 4장에도 보면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4: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에서 믿는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막혀서 가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꼭 만나보기를 기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출신도 지역도 성격도 취미도 다 다르지만 오직 하나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보고 싶어 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과 핍박을 보았습니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복음을 듣고서 믿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바울과 같은 이러한 마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나마 일주일에 이렇게 한 번씩 만나는 것이라도 기대가 되고 기다려지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그 형제를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같은 믿음이라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가 그렇지 아니하다면 이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부르심을 입었다면 분명히 같은 믿음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서로 믿음 안에서 교제가 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도 그 안에서 바울을 반대하여 여러 파당이 생기게 되고 바울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울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관심사가 말씀에 있지 아니하고 다른데 관심사가 있다면,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싫어서 떠나든지 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같은 믿음이라면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바울의 갈망

에베소서 4장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1-6)라고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이 하나 됨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몸도, 성령도, 소망도,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직접 복음을 전하지는 아니하였지만 로마에 있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서 무엇을 하고자 한 것입니까? 첫째로,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1)라고 합니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은사란 신비한 것을 말하는 것보다 영적인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더욱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바울사도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14-21)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알게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믿음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믿는다는 그 믿음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이며 기적이며 복인지를 알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모든 하늘의 신령한 복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바울은 이미 다 보고 온 사람입니다. 그 은혜의 영광에 대하여 사람들은 무시하고 핍박하고 발로 밟아 버렸는데 로마에도 이런 믿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감격 하였겠습니까?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사도가 로마로 가면서 에베소의 감독들에게 부탁을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20:29-32)고 합니다.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능히 든든히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 보고자 한 것도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든든히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보내는 것입니다. 성도란 남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슨 신령한 것들을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을 주었습니까?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고 합니다. 다른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또한 사람들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며 사는 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사람들을 만나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까? 방금 예배를 마치고 돌아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 나누었던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벌써 가물가물하여 져 있습니다. 이러고서도 과연 우리가 믿는 자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친구가 암으로 입원하여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금과 은은 없으니 줄 것이라고는 복음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예수를 믿도록 권면하는 것이 전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함께 갔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법 성공했다고 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에게도 제가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 친구에게도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예수 믿으라는 이야기 외에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지금 죽어 가는 사람에게도, 세상에서 권세와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나는 세상이 볼 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에게 자기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처럼 성도란 세상 사람들에 줄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10)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으로 부요하게 하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부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복음의 풍성함을 나누기 위하여 로마의 믿는 형제들을 만나 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3. 안위와 열매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 하고자 하는 두 번째는 12절에 보면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12)고 합니다. 너희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이었기에 한 번도 낙심이나 좌절이 없이, 사람들의 위로도 없이 복음을 힘 있게 증거 하였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두렵고 떨렸습니다. 바울도 약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자주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에게도 성도들의 위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도의 위로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었습니다. 나도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렀고, 당신도 그러하다는 바울의 복음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이것이 바울 사도에게는 안위인 것입니다. 이들 안에서 서로 교제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주고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피차 안위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13)고 합니다.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원한 열매는 결국 그 아들의 복음으로 인하여 성령의 열매들이 맺히기를 바란 것입니다. 한 믿음으로 부름을 받았기에 인종과 신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성도란 서로 교제할 수가 있으며 그 교제가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교회에 세우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저를 이곳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성도님들은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그리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도 처음 그때의 마음이 있으신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예원교회에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증거 하셨고 또 동시에 우리의 죄악의 뿌리 깊은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란 인간의 죄악의 중심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 복음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들이 나온다면 이것이 목사의 안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모습을 돌아보면 과연 제대로 복음을 전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동안 우리 모두가 죄인으로 주님 외에 소망이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이니까 의례히 그런 말씀을 전하여야만 하고, 듣는 성도들은 전하는 말씀과는 달리 성도들 마음대로 산다면 어떻게 피차 위로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한 믿음을 받았고 또 한 소망을 받았다면 우리의 나눔과 교제에는 세상에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언제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로마서를 통하여 다시 복음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의 바울의 마음이 저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부요함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같은 믿음을 받았기에 서로에게 안위가 되고 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사도가 말한, 복음 안에서 형제를 만나는 기쁨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본문에 바울이 감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은 어떠하며,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는 어떤 마음입니까?

3.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서 하고자 하는 첫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4.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의 그 누구를 만나도 줄 것이 있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5.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서 하고자 하는 두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6.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서 하고자 하는 세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7. 우리가 한 믿음과 한 소망을 가졌다면 어떠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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