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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본문 / 1:14-17

 

 

1. 죄 그리고 복음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후에 예수님이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6:27)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6:28) 라며 묻습니다. 사람들은 영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인간의 가능성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믿어준 행위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내용이 기쁜 소식이 아닌 기분 나쁜 소식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자신이 죄인인줄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이 됩니다만 그러나 자기의 가능성을 가지고 무언가 할 수 있다거나 또는 무언가 안다는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언제나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배척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복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족하고 못났으면 하나님께서 대신 일을 다 하셔야 되는가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복음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계시로 받은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자신은 헬라인이나 야만(미개)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14)고 합니다. 자신이 복음을 받았고 또 복음 증거자로서 부름을 받았기에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동일하게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다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표현으로 더 강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말씀과 같이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표현보다 더 강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에 복음에 빚진 자요 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고 하여 바로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복음이 무엇인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 문제를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도대체 인간이 왜 구원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복음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들은 구원을 여러 가지로 말하게 됩니다. 병이 든 사람은 병 고침을,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 종은 자유자가 되는 것, 지배받는 나라는 해방되는 것, 싸움이 있는 곳에는 평화를, 미움이 있는 곳에는 용서를, 이러한 내용들을 구원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서로 어울려 사이좋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후에 내세에서 좋은 곳에 가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구원이란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죄란 윤리에 어긋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주체적(자기가 주인)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자아라는 것은 생각과 감정 등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는 행동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고,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중심에 자신이 주인 되고, 왕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바로 이러한 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선하고 착하고 고상하다고 하여도 결국 인간이란 자아를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남들이 몰라주어도 스스로의 자아에 도취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면 자아실현(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충실하게 발전시켜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완벽하게 이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과 뜻과 영광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기에 자신들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하여 애를 쓰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들의 종교 활동 역시 사실은 자아실현의 폭을 조금 넓힌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우리가 피조물의 위치를 떠나서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이런 모습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에서 구원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속하여 지고 의롭다 함을 주시는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입니다.

 

 

2. 자기 의로 사는 인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복음이란 그 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미리 약속하신 것인데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분입니다. 이 아들을 믿는 것이 곧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시고, 삼십 세쯤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삼년간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라는 분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까? 왜 다른 것, 즉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안 되고 오직 이 복음 만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의로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인은 그 앞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지 그래서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의가 나올 수 없는 것임을 구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 계시하시는 방법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시고 이 율법을 지키면 의가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으므로 결국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행함으로는 의를 이루지 못함을 율법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기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지자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능력이 없기에 아예 주시지 않은 것이고, 자신들은 능력이 있기에 자신들에게만 율법을 주어 지키게 함으로서 의로운 백성, 의로운 나라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통하여 얼마나 인간들이 죄인인가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여실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하자 마자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았지만 가나안땅에 들어간 사람은 겨우 두 사람뿐입니다. 가나안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데도 이들은 계속하여 우상숭배를 하면서 자기들의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왕을 세워도, 제사장이 있어도, 선지자가 외쳐도 이들의 악함은 계속하여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의롭다면서 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겉으로는 지키는데 마음으로는 먼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29:13)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오직 사람들에게서 배운 관습만 따를 뿐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지키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의가 어떤 상태인지 외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64장에 보면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4:6)라고 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의라는 것이 냄새나는 더러운 옷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거듭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만큼 모든 율법을 지키는 열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율법을 열심히 지켜나갔음에도 그 결론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바로 인간의 죄, 즉 인간이 자기 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율법을 다 지켜 스스로 의롭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에는 전혀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1:20-32)고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실상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우상의 모양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전부 자기를 위한 신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내어버린 결과 그 죄악의 모습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어 버려두시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그대로 버려두시니 온갖 죄악의 열매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을 미워함,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 부모 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이러한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고 하여도 과연 시기나 자랑이 없습니까? 결국 인간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의를 이루고자 하였지만 의를 이루기는커녕 하나님의 진노만 가득 쌓아 놓은 것입니다. 인간들이 아담의 범죄 이후로 저질러 놓은 일들이 이런 내용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불로서 심판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무언가 자기는 바르게 산다고 하는 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의를 몰랐던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15)고 합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그러나 바른 지식(하나님의 말씀)을 좇은 것이 아니어서 결국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따로 있는데 자기들이 의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인간 안에 이것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이나 남과 비교하여 자기의 나은 점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여도, 전도를 하여도, 복음을 전하여도, 노래를 하여도, 무엇이나 간에 인간은 자기의 의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는 결국 복음을 듣고서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고백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고 입으로만 시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만이 아실 일이지만 그러나 제대로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한 사람이라면 자기 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달리 소망이 없기에 주님께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3:1-14)고 합니다.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함과 믿음을 대비시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복음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부정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의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지 아니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오늘 우리를 살리고 또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흔들릴 수는 있으나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내가 주인 되어 사는 삶이 아닌 주님이 주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이, 이 말씀이, 이 믿음이 나를 통치하고 다스림으로 주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람들이 원하는 복음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복음이 배척 받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어 알게 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의는 어떠하다고 합니까?

6.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행하는 일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7. 오늘 말씀하는 인간의 의()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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