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 로마서 5. (롬 1 : 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y 관리자 posted Sep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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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본문 / 1:17

 

 

1. 삶의 고백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의로워야만 합니다. 의로워야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는 거룩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난 자들의 한결같은 고백이 죽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도 인간이 직접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러하였고, 그 사랑받던 제자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주님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우리 또한 거룩하고 의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에게서는 그 어떤 의도 나오지 아니한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면 그런 인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59:1-8) 이처럼 사람들끼리 선한 것이라고, 좋은 생각이라고 만들어 내어 놓아도 그것은 독사의 알을 품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러한 의로 만들어 입는 옷이란 거미줄로 짜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입니다. 혹시 만들어 입었다고 하여도 더러운 옷에 불과한 것이어서 주님의 의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오직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주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지난 한 주간을 살면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으니 나 또한 의롭고 바르게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니어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어차피 죄인인데 내 마음대로 살았다.’입니까? 아니면 정말 인간에게서 선한 것이 나오지 아니함을 절감하면서 오직 주님께서 주신 의가 아니고서는 달리 소망이 없다.’라는 것을 느끼며 사셨습니까? 우리의 삶의 고백은 도대체 어느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소망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이 바울사도의 고백이었음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울의 고백이 이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성령이 충만하다면 이러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고 또 이 고백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주간을 어떻게 사셨습니까?’라는 질문 앞에 우리의 고백이 이와 같이 고백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단지 배워서 머릿속의 지식으로 말미암은 고백이 아닌 우리의 믿음과 삶의 고백이기를 원합니다.

 

 

2.

오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본문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그러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로마서 117절의 말씀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말씀입니다. 중세 천년의 세월 동안 절대 권력을 누리던 가톨릭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이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교수로서 로마서를 강해하다가 오늘 본문인 로마서 117절의 말씀을 보고서 절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오늘 본문의 말씀인 복음 안에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속성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의가 갖추어 져야 하는데 그 의가 복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구약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이었지만,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시니 구약보다 더 나은 의가 나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런 절망 가운데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의를 하나님께서 따로 마련하여 두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로운 행실이나 율법 지킴이나 그 무엇으로도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그 아들에 관한 것인데 이 아들이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으며 그리고 이후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것은 여자에게서 나셨고 율법 아래 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면 나오는 그 의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홀로 율법을 다 완성하심으로 의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오는 저주도 또한 대신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19-28)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고린도전서 1장에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26-31)고 합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보게 됩니다. 인간은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율법 지킴이나, 의롭고 선한 것이나, 어떤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조건 때문에 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는 오히려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의롭게 될 인간은 없다는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그러한 조건들이 없는 사람, 즉 지혜나 문벌이 없는 사람, 미련하고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신 것은 어떤 인간의 자랑도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주어진 자들에게는 자기의 육체를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고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인간의 행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인간이 행위로는 불가한 것이기에 인간이 믿어 주는 것을 말하는 믿음은 아닙니다. 그러한 믿음이란 또다시 인간의 행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믿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음식을 먹거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불안하고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라는 것은 확률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사고가 나고, 음식도 배탈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인간의 의지적인 행위나 확률이 아니기에 믿음은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는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의인이 되었기에 예수님과 상관없이 내 스스로 의를 지키고 유지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주어지지 전에는 자기 의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고 나서는 이제부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자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는 최초의 말씀은 하박국서에 있습니다. 하박국서 2장에 보면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1-4)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이 무엇인가 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택한 나라가 세상의 악한 나라에 의하여 짓밟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 안에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학대받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더딜 찌라도 기다리라고 합니다. 지체되지 아니하고 정녕 응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속히 나타나지 않으니 율법이 해이하여지고 공의가 굽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믿음과 대조되는 말이 교만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힘과 권력을 자기 힘으로 사는 자들은 교만한 자들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교만이란 자기들의 종교적인 열심과 그들의 율법 행함을 자기 의로 여기면 사는 것 역시 교만이 되어서 주님의 의를 모르고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란, 자기들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된 자들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며 이들이 의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란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살아가고 있더라도 그러나 주님의 약속을 믿는 의인들은 주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하는 내용이 3장에 나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부흥이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여 달라는 내용입니다. 갈대아 사람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부흥이 심판의 말씀이기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면 이스라엘 가운데서라도 남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 즉 의인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자라는 것을 듣고 믿는 의인들이 믿음으로 사는 자세에 대해서는 16절부터 보게 되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 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3:16-19)고 합니다. 심판의 소식이 얼마나 두려운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오고, 몸이 처소에서 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이러한 상황에서라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 아무런 소유가 없다고 하여도 구원의 하나님, 즉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런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자기의 좋은 이력과 경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집안이나,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무언가 더 나은 점들을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용지물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배설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삶, 이것이 의인의 삶이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기에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 한결 같이 죽음을 경험케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주의 은혜를 알고 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 앞에 드리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3. 중세 시대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절망적으로 듣게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복음은 무엇이며 또 그 복음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5. 인간들이 생각하는 믿음과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어떻게 다릅니까?

6. 하박국서에 나타난 의인들은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7. 의인들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8. 믿음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의 증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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